한국나이로는 서른하나에서 둘 사이지만,
다행히 정부가 아직 내가 서른이라고 인정해줬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석사까지 졸업했지만 나는 더이상 심리학으로 돈을 벌고 살 수 없었다.
심리학과 가장 연관이 있어보이는 HR 컨설팅 회사에 입사해서 약 4년동안 미친듯이 일했다.
거의 27살이 다 되어갈 때까지 학교에서 공부만 했었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갈 때 내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아 나도 사회 구성원으로 독립해서 살 수 있는 존재이긴 할까?'
라는 의문을 품으며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정말 모든지 다 했다.
이런 나에게 회사는 옳다구나 하고 마구잡이로 일을 맡겼다.
'숫자는 좀 좋아하니?' 라고 물으면서 전표 처리부터 시작해서 매출관리와 나중에는 전사 재무 보고와 전략 의사결정까지 했고, 심리학을 전공해서 어떻게든 HR 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채용부터 선발, 온보딩 교육, 승진, 평가, 연봉협의, 급여계산에서 퇴사처리까지 아주 잘게잘게 쪼개서 HR의 거의 모든 파트를 다 경험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무실 건물이 2개, 3개, 나중에는 5개까지 늘어났는데, 마땅히 건물관리와 총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 일도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하게 되었다.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인터넷 연결이 안되요. 화장실이 막혔어요..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요. 커피가 다 떨어졌어요. 제빙기에서 얼음이 안 나와요. 모기가 너무 많이 들어와요.. 복도에서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4년이 지나자 딱 서른이 되었고,
이제 더는 못하겠다..!
그렇게 작년 11월에 퇴사의 마음을 품고 버티고 버티다 드디어 올해 8월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물론 4년의 시간동안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몰라도 부딪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생각보다 세상은 그렇게 어렵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이 자신감이 생겨서 자유의 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ㅎㅎ
처음에는 뭐라도 다음 스텝을 준비해두고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뭔가 준비를 하고 나서 퇴사를 하면 후회할 거 같은 마음도 들었다.
급하게 결정하기 보다는 시가을 가지고 앞으로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부터 10년이면 나이가 마흔이 된다.
지금부터 10년 동안 새로운 것을 한다 해도, 마흔이 되어서 어떤 전문가가 된다고 해도,
이제 100세 시대라던데 60년 정도는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심리학을 살려볼까?
HR을 다시 파볼까?
데이터분석을 해볼까?
해외로 이민을 가볼까?
커피를 배워볼까?
음식점을 차려볼까?
매일 매일 팝업되는 질문들 속에서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