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로 받은 시집 한 권에서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과 감정들이 떠올랐
어릴 적부터 생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시크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 한 그릇이면 충분했으니 생일선물은 더욱이 기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감정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보통날과 같은 내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친구가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친해지는 여러 가지 계기가 있다. 짝꿍을 한다든지, 같은 학원을 다닌 다든지, 좋아하는 가수가 같다든지 등등... 수많은 계기 중에 친구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등하굣길을 같이 다니면서 사소했던 끝이 없던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던 친구와 나. 백지 같은 시간에 시시콜콜한 대화로 서로를 채워가며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가 잘 맞았던 것은 저녁에 라디오를 청취하는 것이었다. 학원을 다녀와 숙제를 하기 위해 앉은 책상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라디오를 켜는 것이었다. 눈은 책을 향해있지만 귀는 DJ의 음성과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재미있는 사연과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기억해두었다가 다음날 공감했던 감정들을 공유하였다.
우리가 좋아했던 음악과 라디오는 당시 아이돌을 좋아했던 친구들의 취향과는 달랐다. 다수의 친구들과는 다른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특별함을 느꼈던 중학생의 소녀감성이었다.
(토이, 김연우, 성시경, 이소라, 박효신은 사실 그 당시에도 유명했던 가수였지만 중학생들이 찾아 듣는 노래의 가수들이 아니어서 착각에 빠졌던 것 같기도 하다)
8월의 어느 날, 나의 생일 찾아왔다. 중학생 소녀의 감성을 공유하며 지낸 친구가 생일선물로 건네준 것은 정지영 아나운서가 DJ로 하는 프로그램 코너에서 소개된 시를 엮어 낸 시집이었다. 첫 페이지에는 짤막한 손글씨로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사랑과 삶을 주제로 펼쳐진 시집을 읽으며 타 오르는 마음을 그려보았다가, 그리워도 해보고, 기다려도 보면서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연습을 해보았다. 시련과 고난 뒤에는 희망과 결실이 있다는 삶의 태도도 느껴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 역시 좋아했으면 한다는 당시 14살이었던 친구의 예쁜 마음은 20년이 지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집을 향하는 나의 마음이 깊어짐을 느낀다. 그 시절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고, 생일선물의 행복 도 같이 선물해준 친구
친구를 닮은 시 한 구절을 옮겨본다.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 벗하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