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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님 Jun 02. 2018

센서티브, 포지티브

세이프, 1995

세이프. 캐롤이 거울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암흑의 이글루. 캐롤이 방에 들어섰지만 잠시 동안 불은 켜지지 않는다. 천장에 넓적하게 달린 기이한 조명이 켜지면 캐롤의 공간에 얕은 깊이가 든다. 죄수의 방 같다. 겉옷을 벗은 캐롤은 익숙하게 산소통을 들이켠다. 그러다 거울을 응시한다. 관객과 캐롤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친애하는 환우의 조언을 따르기로 한다. 거울-카메라에 눈을 맞추며. "난 널 사랑해. 난 널 사랑해. 난 널 정말 사랑해. 난 널 사랑해."



[세이프]는 교외 탈주극이다. [아이 엠 러브]가 떠오른다. 두 영화 모두 퀴어 감독이 연출해 퀴어 페르소나를 가진 배우가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으로 등장해 탈주한다. 하지만 후자가 성적 욕망으로 과잉할 때 전자는 거세의 과정을 보여준다. 부부의 성생활로 영화를 시작하지만 종착점은 금욕을 강요하는 재활시설이다. 크리스는 비로소 캐롤에게 성적 긴장으로 교외의 정적을 깨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캐롤은 거세된 삶을 받아들인다. 혼자만의 철제 침대로도 충분한 삶이다.


[세이프]는 에이즈를 다룬다. 캐롤을 통해 20세기 교외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 성분으로 병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케미컬-센서티브'라는 말로 증상을 설명한다. 뚜렷한 원인조차 없고 독성은 우리 주변에 현저하고 어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증상에 더욱 취약하다. 1980년대 초 에이즈 유행이다. 주변부의 공포감이 내면으로 파고든다. 질병의 은유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재활시설의 영적 리더인 피터는 케미컬-센서티브인 동시에 HIV-포지티브다. 캐롤이 방으로 들어가기 전 횡설수설 남기는 연설은 노골적이다.


이제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이요. 예컨대 가르침이라거나. 그리고 에이즈, 혹은 다른 질병이든. 왜냐면, 왜냐면 이건 질병이고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우린 그냥 좀 더 깨달을 필요가 있어요. 사람들을 좀 더 깨닫게 해야 해요.


그래서 [세이프]의 마지막 장면은 양가적이다. 캐롤의 자기주문은 자기파괴적이다. 캐롤은 조금도 낫고 있지 않다. 그녀는 이 세계 존재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 있다. 우주선 같은 이글루에 들어간다. 깡마른 그녀의 외관도, 그녀를 빨아들일 것 같은 외딴 조명도, 우주인에 어울리는 산소통도 외계의 것 같다. 캐롤은 숨 쉬는 것조차 두려워 우주인이 달 위를 걷듯 재활센터를 기이하게 걸어 다니는 레스터처럼 되어갈 뿐이다. 그녀는 20세기라는 시간에 이질적인 존재다. 필시 망가진다.


동시에 유일한 안도다. 자기 자신조차 구제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에 매달린다. 육체적 쇠락에도 영적 구원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오직 중요한 것이다. 기적의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캐롤의 카메라 응시를 통해 캐롤의 '너'는 관객이 되기도 한다. 관객은 질병 커뮤니티로서의 세계를 구성한다. 극장은 질병의 재활센터다. 캐롤의 주문은 영화를 떠나기 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내린다. 영화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영화에서 (케미컬-)센서티브는 (HIV-)포지티브와 거의 동의어다. 동시에 센서티비티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포지티비티다. 마지막 장면은 두 명제를 이어 줄 해석의 영역이다. 캐롤의 붕괴인지, 대안인지 관객은 극장 안팎에서 반드시 답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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