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통치하는 세계의 규칙
엄마는 내가 어떤 것에 집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내가 그런 태도나 행동을 보여 나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면, 나를 불러 집중을 깼다.
엄마의 부름에 엄마 앞으로 가면, 엄마는 정말 별일 아닌 이유를 붙이며 나를 자신의 앞에 붙들어 놓았다.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설명한다거나, 어린 나의 도움 없이도 엄마 혼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거나.
가끔은 앞뒤 맞지 않는 말을 내뱉는 엄마를 보며, 도대체 엄마가 원하는 게 뭘까? 하는 의문과 함께 엄마가 나를 부른 정답이 없는 이유를 추리해야 했다.
어느 정도라면 이런 상황이 엄마와 딸이라는 ‘일상적인 소통’ 안에 속할 수 있겠지만, 엄마는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나를 불렀다. 내가 화장실에서 씻고 있더라도, 집에 돌아와 급하게 화장실을 가거나,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거나, 공부나 숙제를 하거나, 비가 오는 날 집에 돌아와 젖은 몸과 옷을 정리하고 있더라도,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나의 상황을 무시하고 나를 불렀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엄마에게 온 신경을 쏟아야 했다. 엄마가 부를 때 몇 초 안에 엄마 앞으로 가지 않으면 온갖 욕을 들었고, 조금만 늦어도 ‘이기적인 년’, ‘맨날 지 일만 중요하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암묵적으로 정해진 일과가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엄마는 나를 부른다. 가방을 던져 놓다시피 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있는 곳으로 나는 교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부엌으로 간다. 식탁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보고 ‘엄마, 왜?’하고 물으면, 엄마는 ‘여기 앉아봐라.’라고 하며 나를 식탁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준비가 끝난다. 엄마는 말을 시작한다.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학교 잘 갔다 왔어?’라고.
여기서 나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적당히 ‘응’이라고 하면 된다. 나의 대답이 나오든 안 나오든 그때부터 엄마는 말을 쏟아낸다. 저녁 시간 전까지.
친가 욕, 아빠 욕,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욕, 며칠간 나의 행적을 끄집어내서 욕을 했다. 이렇게 말을 쏟아내면서 얼마나 자신이 불쌍한 사람인지, 억울한 사람인지, 그 사람들 혹은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교복을 입은 나에게 호소한다.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됐다. 말의 끝에는 줄기차게 욕하던 사람들과 나를 한꺼번에 욕하면서 ‘니가 이러니까 내가 힘든 거야.’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 분기별로 성적표가 나오는 날엔, ‘니가 멍청해서 성적이 이 모양인가 봐?’, ‘성적이 왜 이래? 너 멍청이야? 이런 것도 못 해?’로 끝이 났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때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다. 몇 시간 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결국 마지막에는 나를 비난하고 엄마의 말은 끝이 난다. 마지막 말은 항상 똑같았다. “이때까지 교복도 안 갈아입고 뭐 했어?”라고 말하면서 혼을 냈다.
“당장 씻고 옷부터 갈아입고 와.”라는 말에, 빨리 씻고 교복을 부랴부랴 갈아입고 나면, “내가 밥 준비할 때까지(혹은 밥 준비하는데) 밥 차리는 거 안 도와주고 뭐 했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매일 혼이 났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 년… 교복을 입는 동안 매일 같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빠릿빠릿하게 할 줄 아는 게 없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매일 혼나지. 같은 말을 들어도 나아지는 것 없는 멍청이.
이런 식으로 하루의 일과 자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 먹기 전까지 엄마의 쏟아내는 말과 감정을 덮어쓰는 쓰레기통이 되는 거였다.
언제부터 이런 일과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알아낸 정답이 있다면, 엄마가 물어보더라도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그건 말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찾은 정답 중 하나였다. 고요히 침잠하며 가라앉는 닻처럼. 무슨 말을 쏟아내든 말의 무덤에 갇힌 사람처럼 그저 엄마가 쏟아내는 모든 말을 받아내야 끝나는 일과였다.
엄마의 말 중간에 너무 급해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겠다고 용기 내서 말하면, 엄마는 나에게 핀잔을 주고 비난을 했다. 지금 자기가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라거나, ‘그렇게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내 말은 하나도 안 들렸겠네?’라거나. ‘저거 봐, 엄마 말에는 관심도 없지?’라거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생리현상을 무시하고 엄마의 말이 끝나기 전까지 참았다. 어차피 나는 교복을 빨리 갈아입지도 못하는 멍청이고,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도와주지 못해서 혼나는 멍청이니까. 매일 똑같은 걸로 혼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멍청이.
가만히 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어야 했다. 쏟아내는 엄마의 말을 듣는 일상 속에서 참고 인내하고 가만히 견디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 일과는 교복을 입기 전에도, 교복을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어서도 있었던 암묵적인 일과였다.
대학생 때, 나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는 ‘방해’라는 말을 언급하기 애매하게 나의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아 갔다. 평소에는 아무 말 없다가, 시험 날짜를 알려주면(시험 날 엄마 마음대로 다른 일정을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과 자격증 시험 비용을 엄마에게 청구해야 했다) 매주 장을 보러 가자고 하고, 어디 놀러 가자고 하고, 자꾸 나를 불러내어 ‘이번 주에 이거 하자, 이거 해줘, 이거 어떻게 해?’라며 내가 나를 위해 집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나 시험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 빼고 가면 안 돼? 아니면 며칠만 미루고 가면 안 돼? 라고 말하면 엄마는 ‘공부하는 게 아주 유세야?’, ‘가족들이랑 오랜만에 나들이도 좀 가고 그래야지. 어떻게 너만 쏙 빠지려고 하니.’라며 핀잔하고 비아냥거렸다.
나는 그런 시간들 속에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쳤다. 엄마는 “이번에 너 자격증 못 붙으면 한 달 내내 잔소리할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떨어졌고, “그러게, 매사 열심히 안 하더니.”, “매사 열심히 하지도 않는 사람이네.”, “그딴 식으로 (공부)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래서 앞으로 뭐 하고 살 거냐?”,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래?”. 라는 말로 엄마는 한 달이 넘게 자격증에 붙지 못한 나를 핀잔하고 비난했다.
엄마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나의 모든 시간을 쓰길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갓난아이가 언제 울까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나는 엄마가 부르면 곧장 달려가야 했고, 엄마의 부름에 대답해야 했다. 나의 모든 시간을 엄마에게 쏟고, 자기도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엄마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서 파악하고, 그걸 들어줘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