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선수인 아재의 축쎄이]
보통 주말에 축구를 하지만, 가끔씩 평일에 팀 매칭이 잡힐 때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운영진의 의지요 노고의 산물. 누군가가 매칭할 구장과 상대팀을 구한 후, 우리 팀에서 최소 11명 이상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야근과 육아로 시달리는 이 나이대 아재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힘든 매칭이 잡힌다? 그날은 출근할 때조차 발걸음이 가볍다. 점심은 최대한 기름진 것을 피하고, 오후 4시쯤엔 일하면서 틈틈이 라이트한 저녁을 먹는다. 6시에 퇴근하면서 바나나까지 먹어주면 경기 준비는 대충 끝난다. 갈아입을 유니폼과 축구화는 차에 살뜰하게 실어놨다. 마치 바쁜 일이 있는 것처럼 칼퇴를 하고 축구장으로 향한다.
어느 여름날, 그렇게 그날도 설레는 마음으로 구장으로 향했다.
상대팀은 실력이 '하하하'인 팀이라고 했다. 보통 실력을 따질 때 상-중-하로 많이 얘기를 하지만, 여기 조축 세상에선 그렇지 않다. 실력이 '하'만 되어도 아주 상위급에 드는 팀이다. 축구팀들끼리 매치를 잡는 온라인 카페가 있는데, 거기에선 대부분 아마추어팀은 '하하', '하하하' 또는 '하하하하'로 분류된다. 아마도 내 팀이 차마 '상'이나 '중'이라고 할 수는 없어 '하'라고 표기해 놨다가, 그보다 잘하는 팀과 매치한 이후로 '하하'로 변경,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연유로 실력이 '하'라고 적혀있을 때 느껴지는 웅장함(?)도 있다. '아 저 팀엔 선수 출신도 몇 명 있고 팀플레이가 잘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이나 '상'이라고 적힌 팀은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조축팀들은 '하'의 세상에만 살고 있다
실력 하하하인 우리 팀에게 딱 맞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경기 시작은 저녁 8시. 시작 전까지 몸을 충분히 풀고 긴장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파이팅 넘치게 함성 한 번 질러주고 킥오프를 했다.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골키퍼 포지션을 담당하는 형님이 나오지 못해 우리들끼리 돌아가면서 키퍼를 했어야 했는데 첫 번째 쿼터 키퍼가 키퍼 포지션에 익숙하지 않은 팀원이었다. 그래도 수비가 잘해주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나도 수비를 좀 더 단단하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아뿔싸... 그런데 우리 팀은 연이어 실점을 하고 말았다. 상대팀은 툭툭 패스하며 가볍게 공격을 했는데, 우리 팀이 몸이 덜 풀린 것 같았다. 공을 처리하는 데 조급해 보였다. 조급하면 패스가 부정확해지고 그 공은 다시 상대에게, 우리는 상대가 볼을 돌리는 템포에 따라갈 수밖에 없어 체력적으로도 더 부담이 되게 된다. 그렇게 한골, 두골 그리고 세 골까지 먹었다. 단지 첫 번째 쿼터일 뿐인데.
세 번째 골은 키퍼의 키를 살짝 넘기는, 어떻게 보면 처리하기 쉬운 슛이기도 했다. 하지만 키퍼가 미처 몸이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탓에 실점을 했다. 매우 아쉬웠다. 이렇게 골을 많이 먹을 경기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스스로 실수가 반복돼 상대에게 골을 헌납하는 것 같았다. 1쿼터 경기가 끝나고 팀원들에게 손뼉을 치면서 얘기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거 보여주면 돼! 해보자!
심기일전한 우리 팀은 보다 더 비장하게 2쿼터 경기에 들어갔다. 좀 더 우리 플레이를 맞춰보고, 좀 더 상대를 괴롭히자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그제야 상대팀의 본 실력이 드러났다. 그들은 절대 하하하의 실력이 아니었다. 적어도 하하, 좀 더 쳐주면 하 수준으로도 볼 수 있는 팀이었다. 개개인의 볼 간수 능력이 뛰어났고, 볼을 가진 선수 주위로 볼을 받으려는 움직임, 그들에게 찔러주는 패스, 그리고 낮은 볼 높은 볼 가릴 것 없이 안정적으로 받아 땅으로 떨어뜨려놓는 컨트롤까지. 이런 선수들이 2~3명만 팀에 있어도 경기 운영이 수월해지는데 11명 중 적어도 7~8명은 그러한 수준이었다.
갑자기 속에 짜증이 밀려왔다. '이건 실력을 속인 거 아니야? 이러면 자기들도 재밌나?'
경기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고, 점점 더 그 정도가 심해졌다. 2쿼터에도 2~3골, 3쿼터에도 2~3골을 먹었다. 우리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나마 수비가 공을 뺏어 공격 쪽으로 전달하려고 하면 금방 상대팀에게 뺏겼다. 중앙선을 넘기가 굉장히 버거웠다.
조축을 하면서 이런 일은 가끔씩 일어난다. 반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 새벽 경기였는데, 그 팀도 팀플레이가 너무 좋고 개개인의 능력들이 뛰어나서 우리 진영을 못 벗어날 정도였다. 그래도 한 골은 넣을 수 있었다. 상대가 방심을 한 틈을 타 발이 빠른 팀원이 역습으로 골을 넣었다. 하지만 우리의 득점은 그뿐이었고, 경기가 끝나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마지막 쿼터 땐 종아리가 올라왔다. 그래도 축구를 오래 한 덕에 체력은 좋은 편이었고, 허벅지나 종아리가 땅기거나 쥐 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때만큼은 달랐다. 힘에 부쳤고 상대를 따라다니느라 헉헉댔다.
그래도 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점은, 공을 한번 더 찰 수 있었던 평일 경기라는 점? 지면 어떤가. 잔디를 뛰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 그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마지막에 들면서 경기야 어떻게 되든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해보자고 가뿐한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다리에 점점 힘은 들어갔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주말 아침과는 다르게 지금은 경기 이후에 씻고 바로 잘 수도 있는데. 얼마나 좋은 상황인가. 하하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최종 스코어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8대 0 아니면 9대 0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 점수차가 나면 화가 나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곰곰이 경기를 되돌아본다. 상대방이 어떻게 플레이를 했었지. 우리 팀이 뭐가 잘 안 됐었지. 저 정도로 하려면 얼마나 연습을 더 해야 하지. 침대에 누워 온갖 상상과 분석들을 한다.
매칭을 잡은 운영진 친구에게 톡을 하나 보내고 잠에 들었다.
다음엔 진짜 찐 하하하 팀으로 구해줘. 너무 힘들었다ㅠㅠ
그래도 매칭 잡아줘서 고맙다. 덕분에 즐거운 수요일 저녁이었어.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