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감각으로 기록하는 명상✨

눈 위의 발자국: 드뷔시의 배음이 싱잉볼의 진동이 될 때

by 사라는 요가 중

대전 예술의 전당에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러 가는 날. 오늘도 고속버스에 올랐다. 통영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서 점점 눈발이 보이더니 함양쯤 갔을 땐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 아닌 해가 머리 위에 있는 오후라 그런지 마냥 쌓여있는 건 아니었고, 산마다 나무들은 흰 옷을 벗었지만 땅은 아직 하얗게 쌓여있는. 누군가 바닥만 하얗게 칠 해 놓은 것 같은 불균한 풍경이었다. 눈 구경을 하다 오늘 짐머만의 연주 주제는 전주곡(Préludes)이었기에 나는 눈과 잘 어울리는 음색의 드뷔시 프렐류드 전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덕유산 휴게소에 잠시 내려 눈을 밟으며 드뷔시 전주곡(Préludes) 1권의 6번, 눈 위의 발자국(Des pas sur la neige)을 듣고 있자니 어디선가부터 외로운 느낌이 밀려왔다. 멜로디가 나오다가 지속되지 못하고 끊어지고, 다른 사람이 밟은 발자국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매서운 추위에 입이 얼어 말을 끝까지 끝맺지 못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바깥의 한기를 머금고 다시금 고속버스에 올랐을 때 이어서 8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La fille aux cheveux de lin)가 들렸다. 8번의 첫 단선율은 외롭지만 눈물 나게 따뜻했다. 6번과 8번은 마치 빛이 투과하는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지만, 그 위로 겨울 햇살이 비치며 투명하게 반짝이는 듯했다. 이 미묘한 공존은 아마 드뷔시가 설계한 공감각적 음영일 것이다.


왜 8번이 이렇게 외로우면서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곰곰이 악보를 들여다보면, 첫 외로움의 정체는 Gb Major의 팬타토닉(5음음계)의 반음이 제거된 단순한 선율이 아무런 화성적 지지 없이 홀로 나올 때, 나는 일종의 정적을 느낀다. 6번 곡에서 이미 느꼈던 외로움의 잔향이 이 곡까지 투영되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이 그리는 선율과 이내 나오는 화성은 매우 따뜻한 Gb계열의 장조이다. 차가운 눈(6번)을 지나 드디어 만난 햇살 같은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에 이 고독은 포근한 명상에 가깝게 느껴진다.


8번은 드뷔시가 르콩트 드 릴(Leconte de Lisle)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으로, 드뷔시가 가졌던 마음은 지나간 순수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내용은 이른 아침, 노란 아마꽃이 피어 있는 들판에서 아마빛 머리를 한 소녀가 사랑을 노래하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고 있다. 드뷔시는 이 소녀를 손에 잡히지 않는 멀고 아련한 존재로 표현해, 내가 곡을 듣고 느끼는 이 외로움은 사실은 아스라함일지도 모른다. 6번 눈 위의 발자국이 무거운 현실의 고독이라면, 8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그 고독 끝에 꾸는 달콤하고 따뜻한 꿈같은 존재다.


사실 내가 8번 도입부에서 느낀 이질적인 감정은 대중적인 감상이 아니라 화성학적인 설계에서 나온다. 드뷔시는 전통적인 기능화성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8번의 첫 선율이 Gb Major라고는 하지만, 마디의 시작이 으뜸음(근음)이 아닌 버금딸림음이나 딸림음의 뉘앙스를 풍기며 공중에 떠있다. 보통 근음이 단단하게 박히면 소리가 지상에 발을 붙인 것처럼 안정적이지만, 근음을 약하게 터치하고 상부 배음(Overtones) 위주로 소리를 내면 음악은 붕 뜬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배음들이 겹겹이 중첩되어 하나의 명확한 음정보다 확산된 음향 덩어리로 인지된다. 배음은 눈 위에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하나하나 세지 않아도 전체가 하나의 풍경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싱잉볼을 떠올렸다. 싱잉볼을 쳤을 때 나타나는 진동과 드뷔시의 설계에는 같은 원리가 있다. 이 배음의 진동은 우리 귀에 특정음으로 들리기보다 소리의 뭉치나 온기처럼 느껴진다.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소리가 나를 감싸기 때문에 포근함을 느끼는 것이다. 싱잉볼 역시 타격음 보다 그 이후에 남는 지속적인 배음의 공명이 핵심이다. 특히 페달링을 사용해 앞선 음들의 잔향을 지우지 않고 다음 음과 섞어버린다면 그 배음의 층(Layers)이 싱잉볼의 긴 여운과 같은 이완효과를 불러온다. 이처럼 근음이 생략되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사이 공간을 배음들이 채우게 되고 이 빈 공간이 주는 여백이 우리 인지 체계에서는 휴식처럼 인식될 수 있다.


결국 드뷔시가 설계한 이 배음의 층은 현실의 차가운 눈 위를 걷던 나의 발을 붕 띄워, 따뜻한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이제 버스는 대전으로 가까워지고, 창밖의 불균형했던 눈 풍경도 서서히 물러난다. 잠시 후 짐머만이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그가 만들어낸 공명은 또 어떤 색의 배음으로 나의 명상을 채워줄까. 이질적인 공존이 기다려지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