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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Aug 22. 2021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2021)> 리뷰

시간 속에서 아웅다웅, 정情은 그렇게 쌓이고

《박강아름 결혼하다(2021)》는 정직한 이름표를 단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 우리는 제목으로부터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주인공이 박강아름이라는 사람이라는 것, 그가 결혼을 했다는 것, 이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테마는 ‘결혼’이라는 점. 그런데 재미있는 건, 결혼 생활에서 나타나는 일을 기반으로 하하호호 예쁜 프랑스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3유로 커피를 사치라고 부르는) 적나라한 삶의 단편을 엮어낸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게 감독이자 출연진인 박강아름은 자신만의 방식과 시각으로 왜 자신이 결혼을 했는지를 추적해보고, 결혼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거대한 시놉시스가 있는 것은 아니나,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매분 매 초를 관객이 관람하며 함께 겪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작 몇 마디 문장으로 다큐멘터리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이겠으나,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영화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감독인 박강아름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학업을 이어간다. 부부 중 불어에 더 능통한 사람인 그가 행정과 경제를 담당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남편인 정성만은 가사를 (그리고 훗날 육아가 추가된다) 맡는다. 성만에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나는 식모입니다, 식몬데 무슨 이름이 있어요, 정도로 대답하는 건 코믹하게 보이나 분명 유의미한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위해 프랑스 이주에 참여하였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성만의 세계는 자꾸만 좁아지며, 이것이 안쓰러운 아름은 그에게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여는 ‘외길 식당’ 운영을 제안한다. 이 외길 식당은 이사를 비롯한 기타 여러 사유로 인해 시즌제로 운영된지라 두 사람이 프랑스에 있는 내내 운영된 것은 아님에도, 성만에게 분명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아름은 임신한다. 아이가 생겼다. 보리는 귀여운 두 사람의 아이이지만 여전히 성만이 독박 가사와 독박 육아를 지속한다. 이따금 부침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굳이 엄청난 통계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일들이 앞으로 펼쳐지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가부장적 제도 하에서 정상 가족이라 불렸던 시스템이 해체되고 있으며 가족 내 구성원의 권력구도가 기존과는 다르다는 걸, 그리고 이런 변화의 속도는 가속하리라는 것을. 예컨대 아름-성만 부부가 프랑스로 오게 된 것 역시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에 부합하는 사회적 현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감독이 보다 집중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래. 결혼 말이다. 남들 다 한다는 결혼, 안 한 사람에겐 왜 안 하냐는 말이 쉽게 따라붙는 이 제도. 결혼은 대체 뭘까?




비혼을 외치는 청년층이 많아진다는 점, 정상가족의 해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외길 식당의 손님들처럼 결혼을 위한 이주 역시 발생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가족 가치관은 분명 예전과 다르다. 다만,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긴 어렵고, ‘부분적으로 탈전통적으로 변화(최연주, 문정희, 안정신 (2020))’ 했다고 하는데, 아름과 남편 성만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요소를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기존 성별분업의 단순한 젠더 역전에 기인하고 있어, 기존 시스템의 젠더 관계를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 성만은 자신을 ‘식모’로 규정하며 돌봄/가사 노동을 담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돌봄/가사노동은 육아휴가 등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를 전통적인 ‘아버지’로 규정하기보단 ‘어머니’ 포지션으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반면 아름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펀딩을 받는 등 경제적 책임을 이끌고, 프랑스인에게도 어려운 관공서 서류 제출 등을 신경 쓰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남편을 위해 외길 식당을 먼저 제안했음에도 좋은 식재료를 쓰는지라 늘 발생하는 적자를 떠올리고, 매 순간 가계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성만과 싸우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인 보리가 태어난 후에도 지속된다. 물론 아름 역시 가사노동에 일부 참여하지만, 주 양육자 포지션에 위치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러한 모습에서 나는 김경민(2021)이 인용한 러딕의 구절을 일부 반복하고 싶다. 그러니까,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자녀를 낳는 경험’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으나 ‘자녀 양육자로써 운명 지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은 그렇게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한 일상 속에서 아름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결혼을 하려 했을까? ‘아버지’라는 위치에 더 가까운 – 그러니까 집안의 ‘가장’인 그는 거듭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비혼주의자였던 성만과 결혼했고, 아이 계획을 세울 때 침묵한 성만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을까…….





그가 방황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 일부분은 아름의 과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최연주, 문정희, 안정신 (2020) 은 개인의 가족가치관은 개인 자신의 성장 경험에서 발생한다 말한 바 있다. 즉, 자라는 동안 매일 봐온 가족/부모의 가치관 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하여 미래의 결혼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름 역시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고자 함인지, 영화 내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짤막하게 언급한다. 남동생에게만 집중한 아버지, 아버지에게 관심을 끌고자 애썼던 어린 소녀에 대해서. 하지만 오로지 과거에서만 대답을 찾아야 할까? 어쩌면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저도 모르게 안정적인 가정을 꿈꿔왔을지도 모르지만, 아름은 과거에서만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는 외길 식당 시즌 2를 계획하고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손님들에게 묻는다. 짧은 시간 동안 신선한 시각과 사유가 점차 흘러들어온다. 프랑스의 팍스(PACs)라는 새로운 개념도 그렇게 영화에 등장했다. 그러나 아름은 여전히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결혼이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이라지만 사회/문화적으로 결혼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한다. 아름이 말했듯 입덧이란 미디어에서처럼 우아한 ‘우욱’ 정도가 아니었고 개인마다 다른 신체적 증상이었다. 마찬가지로 결혼 역시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양 매일매일 완벽하고 풍성한 생활을 담보하는 사회 시스템이 아니며 연애시절처럼 매양 낭만적일 순 없다. 주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결혼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는 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즐거울 때야 상관이 없겠다만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 이해한다 해도 어렵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간이 연애 시절보다 늘어난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결혼의 단면일 것이고,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그런 과정을 미화하지 않았다.





혼전 합의서를 통해서든 아니든, 합리적으로 가사를 분담하고 경제적 책임감을 공유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젠더가 단순히 전복된 관계를 살고 있는 아름-성만 부부가 기실, 처음부터 끊임없이 합의하고 민주적인 가정을 이룩하고나 노력했을지라도 아마 이 과정은 어느 순간부터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시점은 보리가 태어난 이후일 확률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이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울 때엔 너/나를 가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의  공동체적  특성이  강조되고  가족  구성원  간의  자원  공유가 미덕으로  수용(나성은 (2014))’되는 동안, 가족 내의 권력관계는 쉽게 기울어지기 마련인데, '사랑'과 '협력'이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린 이상 구성원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는 점차 미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결혼(생활)은 그럼 무엇인가? 에 대한 내 대답은 '글쎄'이다. 몇 천년 전부터 인류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하려 했지만 여전히 질문을 하고 있는데, 내가 감히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고 무언가를 내놓을 자신은 없다. 정 안되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순 있겠다만, 다큐멘터리와 함께 고민하다 보면 관객은 관객 나름의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만 한 걸까? 아마 영화 내에서 아름이 자신이 겪는 결혼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어떤 캐릭터성을 강조/축소하고, 일상을 편집한 측면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여튼 결혼에 대해 환상을 심어주는 멋진 드라마와 영화는 이미 많으니까, 그러한 미디어와(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마음속으로 떠올리고)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동시에 펼쳐 놓고 생각해보자. 결론적으로 결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 모든 것의 총체라고밖엔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아웅다웅 삶을 일체화 시키며 추억을 쌓고, 헤어질 수 없는 사이로 변모하는 과정 말이다. 외길식당의 손님이 말했듯 자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을지라도, 결혼이란, 관계의 한 자락에서 낭만에 취해 이런 선택이 있었기에 내가 네 곁에, 그리고 네가 내 곁에 있나보다 대화할 수 있는 삶의 한 양태가 아닐지.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 참고문헌

김경민 (2021).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좋은 엄마’ 되기: ‘어머니됨(mothering)’ 인식과 실천에 대한 고찰. 비교문화연구, 27(1), 5-56.
나성은 (2014). 남성의 양육 참여와 평등한 부모 역할의 의미 구성. 페미니즘 연구,14(2), 71-112
최연주, 문정희, 안정신 (2020). 미혼 남녀의 가족건강성과 결혼의향의 관계 : 가족가치관의 매개효과.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지, 31(4), 66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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