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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아 May 10. 2024

예민한 사람이 대학생이 되면

대학 생활 적응기 & 일상 기록


  요즘 들어 서점의 한 코너에 예민함을 주제로 다룬 책이 많이 보인다. 잠깐 유행했다가 사라질 도서 시장 트렌드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책들을 보면 반갑다. 신경질적이고 부적응적이라고 치부되었던 '예민'의 의미가 이제는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고, 예민한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2024.05.10.

  벌써 다섯 학기 째 대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여전히 어떤 집단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대학에서 만난 사람과 유대감이 짙은 관계로 발전한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미 친해지지 못한 관계는 뒤로 하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가 되기를 내심 기대하지만, 나와 같거나 나보다 높은 학번의 사람들은 관계 확장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한창 즐거워 보이는 후배들과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를 되뇌며 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환경 변화와 타인의 반응에 민감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줄곧 예민했다. 아기 때는 엄마가 없어지면 울고 사람 많은 곳에 갈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입학과 학년이 바뀌는 시기마다 마음고생을 했다. 한때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무딘 아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이런 아이라서 엄마가 나 키우기 참 힘들었겠다. 이렇듯 나는 한 번도 나의 기질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나의 예민함은 내 인생에도, 나와 가까운 타인의 인생에도 그저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었다.

  그래도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환경 변화에 과민반응하는 현상은 줄어들었다. 나를 좋아하는 이들도 점차 생겨났고, 학교 현장이 워낙 좁고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이었기에 학교에서 혼자가 되어버린 상황도 별거 아닌 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언제나 혼자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가끔 감당하기 벅찬 일이 들이닥칠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상황이 유일하게 예민함이 발현된 경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인간관계에 지금처럼 미련이나 후회가 있지는 않았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그러다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경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선생님들께 위의 속담을 들으며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서울에서의 삶을 기대한 적 없다. 그보다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에 오히려 더 공감했다. 익숙한 장소와 소중한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에 입학하기 전 몇 달은 합격을 하고도 두려움이 앞섰다. 시간은 잡는다고 잡히지 않았고 기어이 2022년 3월이 오고야 말았다. 서울이라는 도시, 대학이라는 환경을 알아가고 적응하기 바빴다. 그래서 늘 긴장 상태에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나를 드러낼 수 있었겠는가. 타인은 그런 나를 보고 어떻게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겠는가.

  결정론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씁쓸하게도 대학 생활 첫 해에 꾸려진 인연이 몇 년이고 가는 것 같다. 나는 1학년 때 같은 과 혹은 동아리에서 친해진 사람이 없다. 그 상태에서 2학년이 되니 어떤 집단에 가도 딱 한 사람씩만 친해진다. 그것도 엄청 편한 관계가 된다기보다 몇 달에 한 번씩은 보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다수와 자주 만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나와 비교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끈끈함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거나 1학년 때 어디든 자주 얼굴을 비추던 이들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세상에 나만 예민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이들 중 몇몇은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나의 외로움과 헛헛함의 원인으로 예민함을 꼽는 이유는 나를 질책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나에게 왜 더 적극적이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 위축되었는지 묻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되려 더욱 속상해지기만 할 뿐이다. 내가 대학에 와서 친한 사람이 적은 이유를 나의 기질에서 찾는다면 적어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어진다. 그저 남들보다 예민해서 새로운 환경에 치열하게 적응하기 바빴을 나를 인정해주고 달래주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이 대학생이 되면 새로운 경험 앞에 불안이 앞서고, 인간관계에서 많은 고민을 하며, 그로 인해 얼마간씩 우울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더 이상 나의 예민함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기억하고 감동하고 글로 기록하는 능력은 예민함 덕분일 테니까. 조금은 나의 예민함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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