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휴직에 대한 변
"휴직이라고? 또?"
꼭 알려드려야 되는 분들에게만 내년에 휴직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뿐인데 어느새 나의 휴직 소식이 널리 퍼진 모양이었다. 직장 여기저기서 마주칠 때마다 정말 또 휴직을 하는게 맞느냐며 묻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섯번째 휴직, 마지막 휴직이었다. 나는 아이 하나당 육아휴직 3년씩 6년의 육아휴직이 가능했다. 첫째가 태어나자마자 2년을 휴직하고, 둘째가 태어나고 2년을 휴직했다. 그리고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며 1년을 더 휴직해 5년의 휴직을 이미 사용한 상태였다.
어느덧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남편은 당연히 내가 또 휴직을 하려니 하는 눈치였다.
"내년엔 휴직하지 말까봐. 돌봄 교실 보내고, 또 누나랑 같이 학교 다니게 되는데 꼭 엄마가 있어야 될까?"
남편은 뜻밖의 발언이라 생각했는지 의아한 눈빛이었다.
"아니면 오빠가 휴직하는건 어때? 오빠가 휴직하면 수당도 나오잖아."
내가 5년을 휴직하는 동안 남편은 육아휴직을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휴직을 하면 무급이지만 남편은 첫 육아휴직이라 제법 수당이 나올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돈을 핑계로 남편에게 휴직을 미루려 시도해 보았다.
"글쎄... 상황을 좀 봐야겠는데."
애매한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육아휴직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육아휴직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힘들게 아침에 꾸역꾸역 일어나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일과 사람에 지친 채 퇴근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남편을 보내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면서 책도 좀 읽고, 천사같은 내 아이와 함께 산책도 하고 놀아주면서 평화로운 매일매일을 보내게 될 거라는 그런 생각이었다.
첫 아이를 낳은 뒤 맞이하게 된 육아휴직의 현실은 그런 나의 환상을 산산히 깨부수어 주었다. 육아휴직이란, 육아 '휴직'이 아니라 '육아' 휴직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아기와 24시간 계속되다시피 하는 아이 시중에 차라리 출근하는게 낫겠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겨우 아장아장 걷고 밥 물 떠듬떠듬 이야기할정도로 키우니 2년이 훌쩍 가서 복직을 하게 됐지만..
둘째가 생겼다. 또 휴직이었고 다시 전쟁같은 육아의 나날을 보냈다. 복직하려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니 아이가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떠나가라 우는 통에 복직 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직장에서 만난 선배 엄마의 충고를 떠올렸다.
"휴직 마지막 1년은 아이들 초등학교 1학년 때를 위해 아껴 둬. 그 때가 더 휴직이 필요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5년차 휴직을 시작했다. 과연 듣던 대로 온종일 돌봄이 가능했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는 달리 초등학교는 점심만 먹으면 아이가 귀가했고, 방학은 언제 끝나나 싶게 길었다. 아이가 크면서 온갖 뒤치다꺼리가 줄어들고 엄마의 시간이 생기니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휴직은 '휴직의 꽃'이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엄마가 휴직이라고 다른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학교만 보내니 그리 여유롭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학교 보내 놓으면 또 금방 하교할 시간이 되었고,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면 둘째 유치원 끝날 시간이었다. 아이 학교와 유치원을 오가며 그렇게 또 정신없이 한 해가 흘러갔다.
그렇게 휴직 기간을 보내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마이너스 통장과 휴직기간 일 년간 납입하지 못해 밀려 있는 연금보험료, 그리고 경력의 빈 한줄 뿐이었다. 그래서 육아휴직 마지막 남은 1년은 굳이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키울 동안 장기 근속한 남편에게 남편 본인 말처럼 '휴식 겸' 둘째 초등학교 1학년 시기를 넘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휴직을 낼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남편의 답변이었다. 올해는 승진을 해야 된다나. 그래. 그렇다면 승진 따위는 휴직 3년차 정도에 애시당초 포기한 내가 또 휴직을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사실 어찌 보면 참 배부른 고민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경력 단절의 고비를 힘겹게 넘기고 있을 것인가? 그 수많은 엄마들을 생각하면 이 힘든 시기에 휴직을 할지 말지의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였다. 나는 그렇게 또 휴직원을 쓰고, 6년차 휴직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