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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Dec 28. 2016

정의 소모

이기적인 삶의 본질

군대를 가면 아침마다 소리를 질렀다. 평소 소리를 지르지도 않지만, 지를 수 도 없는 환경에 살고 있으니 못 지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것을 그곳에선 하루에 한 번씩 실행했다. 적응 안된 신참부터, 지르는 둥 마는 둥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병장까지도 질러야 했다. 룰이자 명령이기 때문에.


2016년 11월. 한 달이 넘도록 주말마다 소리를 지르게 됐다. 많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이젠 웬만한 스타 못지않은 인지도를 얻은 순실 아줌마 때문에.


내가 중요시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평소 하지 못했던 정치적 이야기들을 실컷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아니라고.. 잘못됐다고 말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주제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언론이 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목표를 위해선 무엇인가를 하고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 그 목표는 자신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그 목표가 무엇인지,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관여하거나 제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개인의 목표를 위한 행동이 다른 목표를 가진 또 다른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제재를 당하거나 많은 이들에게 주목과 함께 평가를 받게 된다. 정의라는 개념이 다양하지만,  이런 개인이 다수에게 주는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환경을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런 정의는 내가 태어난 시대부터 지금까지 점점 소모되어 왔다. 분명 제한된 자원 같은 개념이 아님에도 소모되는 것처럼 느껴왔고, 실제로 그 느낌이 확신으로 변해왔다.


이번 최순실 사건으로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모된 정의의 양을 확인했다. 집회에 참여했던, 참여하지 않았던 개인이 가진 정의는 측정할 수 없지만, 한 사회가 가진 정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정의는 많이 소모되어 있었다.


어디선가 말한다. 국민이 정의를 찾았으며,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다고 외친다. 이런 긍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에 초를 치고 싶지 않고, 또 같은 바람이기에 응원한다.


다만, 사실 걱정되고 우려된다. 남은 정의에 너무 놀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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