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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2세 울 엄마의 독서 선생입니다

엄마의 읽고 쓰고 기록하기 6년!

by 책바보바오밥


제목: 6년째 나는 82세 울 엄마의 독서지도 선생입니다.

"엄마, 읽고 쓰고 사니까 뭐가 좋아?"


"나 같은 사람들이랑 공부도 하고, 수업 끝나고 복지관 밥도 먹고, 찜질도 하고 좋다야."


엄마는 6년째 읽고 쓰고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일기장이 벌써 11권이 되었고, 필사 노트도 10권이 넘어간다.

엄마가 감동 깊게 읽은 최근 책은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와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아이들>이다. 몽실언니보다 <괭이부리말아이들>이 더 재미있다고 이번에 그러셨다.


엄마는 이젠 스토리가 있는 책을 확실히 좋아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는 엄마도 나처럼 주변 할머니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시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정에서 같이 일하는 희정이 엄마가야. 올해는 복지관에서 한글 공부한다고 한다야. "


이건 엄마의 영향이다. 4년째 복지관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는 엄마는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눈엣가시였다. 언제 공부를 했다고, 다 늙어서 공부해서 뭐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나 보더라. 내가 26살 대학입학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던 그것처럼 그랬나 보더라.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도 잘하고 있는 건지, 이걸 해서 무엇하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간헐적으로 6년간 읽고 쓰기 공부를 나와했던 이력과, 그 안에 4년간 읍내 복지관 한글 공부는 엄마의 자존감을 꼿꼿이 세워주고도 남았다.


"그래, 복지관 공부하러 가요. 박사 될라고 그러겠소? 한 번씩 가서 선생이랑 좋은 공부도 하고 바람도 쐬고 좋아서 가요."


우물쭈물 안 하고 당당히 마을 할머니들 앞에서 말씀을 하신단다. 엄마는 작년 9월에 취직도 하셨다.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으로 일주일에 3번 동네 마을회관 관리 일을 하며 돈벌이도 하고 계신다.

50년 넘게 논밭으로 때로는 갯벌이 삶의 터전이었던 엄마에게 이젠 자신의 삶을 돌보는 엄마가 되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복지관을 가서 한글 공부를 하시고, 집바로 옆 텃밭 일구며 엄마만의 삶의 정원을 가꾸며 살고 계신다. 엄마의 정원은 자식들 입으로 들어갈 찬거리, 양념거리 만드는 일은, 마술을 부리듯 최고급으로 뚝딱뚝딱 생산해 내신다.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고독과 고립의 노년의 삶이 아니다.


나도 그렇게 엄마처럼 늙어가고 싶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신다.


아버지 돌아가신 6년 전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잘한 일은 엄마의 한글 공부시작이었다. 단순한 한글 공부를 뛰어넘은 독서와 일기 쓰기까지.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 책에서는 혼자 사는 엄마에게 등장인물들은 벗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자식들 누구누구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그리 복잡할 것 없는 단순한 삶을 일기로 기록하며 복을 빌었을 것이다. 엄마의 복이 아닌 자식과 손주들 복을 먼저 빌었을 것이다.



이번 출간책 <나는 읽고 쓰고 기록한다> 내 책을 누구보다도 기다렸고 기뻐했던 엄마, 엄마가 내 책을 띄엄띄엄이라도 읽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꿈만 같다.


"내가 글씨만 쓸 줄 안다며 몇수십 권 책을 썼을 것이다 야."


18살 겨울날 방 안에서 엄마랑 나란히 새끼를 꼬면서 나눴던 엄마의 인생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 앞에서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별것 아닌 내 이야기는 금세 사라졌다.


학교생활의 힘든 점, 친구들과 힘든 이야기, 할머니 때문에 힘들었던 가정에서 힘든 이야기.


내 이야기는 너무 가벼워서 차마 입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 엄마 이야기는 언젠가 내가 꼭 소설로 쓰고 말 거야. 엄마이야기 내가 쓸 거야. 엄마가 못 쓰는 이야기.'


꼭 그랬던 18살 나의 약속을 아직도 나는 간직하고 산다. 이번엔 내 이야기를 썼지만 언젠가는 엄마 이야기를 쓸 거다.


시집살이의 고통을 참아내서 꽃으로 피어낸 끝없는 희생과 사랑이야기, 노년에는 읽고 쓰고 기록하기로 자신의 삶도 꽃피운 울 엄마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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