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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Mar 02. 2021

영어공부다짐선언문

미국거주 5년차, 뉴욕 거주 4년차, 로컬잡지 에디터, 번역/통역가

5년간의 묵언수행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해야 겠다 다짐했다. 내가 이 땅에 보내진 이유가 정확하게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태초에 나는 설명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나라는 사람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차라리 깔끔하게 마음대로 오해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을 늘 선택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보다 본질적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내린 ‘선택’에 따른 ‘책임’ 또한 스스로 감당하기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 나의 선택에 따른 타인이 가지는 의문점에 내가 왜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해소해 주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다. 이외 다른 이유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아마 어릴 때부터 남들이 제멋대로들 붙인 ‘특이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지겨운 이유도 한 몫 한 것 같다.


모든 사람은 특이하다. 각자가 각자의 색깔을 낸다면. 애석하게도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은 사회 곳곳에서 ‘통념’이라는 것이 숨막히도록 강한 지위를 가지고 개인을 지배하려 드는 특성이 강한 편인 나라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보통의 개념’이라는 것에 꽤나 갑갑해 하면서도 마치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은 사람이 더한 시집살이를 시키듯 자신이 겨우 맞춰낸 사회적 기준이 힘겨웠던 만큼의 강도로 어떠한 보상을 받길 원하는 것처럼 그 기준에 갖은 정당성을 부여하며 갖가지의 형태로 이를 따르기를 강요하곤 했다.


이 두서없이 행사된 폭력 앞에 ‘그건 당신 생각이고 저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에 발맞출 생각이 1도 없습니다’ 하며 변호하면 논리에 이겨낼 재간이 없는 사람들은 구준표의 빨간딱지처럼 ‘참 특이한 아이구나’ 하며 나에게 최후의 통첩을 날리고 사라지곤 했다. 당신에게 평가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미련없이 한국을 떠나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어를 원어민 뺨치게 잘 해야만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던 미국은 놀랍게도 내가 세금만 잘 내고 범죄만 저지르지 않고 주어진 업무만 잘 이해하고 문제없이 수행하면 굳이 입을 열어야만 하는 상황이 잘 발생하지 않는 참으로 편안한 사회였다. 그 많던 비자문제를 겪어내면서도 생각보다 편히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보편개념으로 삶의 양식을 통일’시키려는 압력이 없는 사회적 분위기 덕이었다.


법이라는 최소한의 규칙만 지킨다면 말그대로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지는 이 땅에서 나는 완벽한 이방인으로 늘 꿈꾸었던 철통 같은 나만의 요새를 만들어 내가 허락한 사람들 만에게만 문을 빼꼼 열어주며 온전한 자유를 누렸다. 물론 그들 역시 언제든지 쫓아낼 만반의 준비는 진작에 마친 채로.


그러다 보니 5년의 세월이 흘렀고, 비자문제는 어느새 해결되었으며 나는 이곳에 영원히 거주할 권리를 가진 주민이 되었다. 그리고 과묵한 동양인으로 ‘숫자’만 다루면 되었던 이전 직업을 지나 언제나 원했던 ‘글’을 다루는 새 일을 얻었다. 그런데 이 새 일, 나에게 예상치 못한 자질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내 결이 아닌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일, 관심 없는 기업의 광고문구를 써내야 하는 일, 읽지 않은 책을 추천해야 하는 일, 궁금하지 않은 분야의 칼럼을 번역해야 하는 일 등등.


육의 양식을 위한 수단으로 출퇴근 시간도 장소도 정해지지 않은 마감만 지켜내면 되는 이 일로 완전한 ‘자유’ 완벽한 ‘나만의 세계 구축’에 화룡점정을 찍고 싶었던 계획에 크나큰 차질이 생겼다. 사람과 ‘소통’해야만 한다는 강한 전제가 ‘글쓰는 일’에는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누구도 듣지 않는 이야기는 ‘소음’에 불과하듯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은 ‘낙서’에 지나지 않기에, 나는 마음을 내어 주고 주어진 대상을 깊이 이해하여 써낸 글로 독자의 공감을 사야한다.


저자는 그 글의 최초의 독자이기에 스스로 쓴 글에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설득해 낼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 때문에 무언가를 써내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주제와 다가온 대상을 차분히 알아가는 일. 그러니 거의 다 완성되었던 바리케이드 시공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나의 ‘영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흡사 흥선대원군에 빙의라도 한 듯 보내온 내 지난 5년.


내가 몸담고 있는 잡지사는 교민들을 위한 한국어잡지와 미국의 소식을 담은 영문잡지를 출간하는데 비한국인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영문잡지의 일을 해야 한다. 함께 4월호 마감에 힘쓰고 있던 어제 늦은 밤, 팀장님이 갑자기 메신저로 ‘에디터님 영어 인터뷰 가능하세요?’하고 물어왔다. 머리보다 빠른 손이 ‘아니요’를 타이핑하고 있던 그 때 ‘NO SUDA NO LOVE’라는 말풍선이 머릿속에 팝업창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넵’을 적어 전송했다.


그렇다. 내 ‘성(城)’은 이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평안한 위로를 주던 차근히 무너질 나의 담벼락들이 못내 아쉽지만 그 벽에 손을 가만히 얹고 ‘고마웠어’라고 이른 작별인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울타리 밖이 이젠 그저 두렵지 만은 않은가 보다.  저마다 이해를 맡겨 두기라도 한 듯 설명을 요구하며 날 채무자처럼 몰아세우던 채근하던 말들에 지쳐 ‘혼자’를 택했던 시간을 지나, 오늘의 난, 성밖의 세상을 조용히 상상해본다.


위계 없는 언어 영어.  방공호에서 이제야 문을 겨우 조금 열고 빼꼼. ‘나가서 놀아도 정말 괜찮을까’ 조심스레 밖을 내다보는 수준의 나는, 이 평등한 언어가 가진 힘을 믿어 보기로 작정했다. 그렇다. 이 글은 나의 영어공부 다짐 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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