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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감만 안겨준 축구교실 시험 수업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우울감이랄까?

by 팬지

올봄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 선생님이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우리 때문에 범수(첫째)가 사회성을 잘 못 키운 것 같다는 내 말에 음악, 수영 , 운동 등 학원을 다녀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유치원에서 하는 활동들에도 조금씩 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말이다.

사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범수가 선생님 말을 잘 들을지 배우려고 할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연필 잡는 법, 양치하는 법, 그 외에 처음 설명이 필요한 것을 가르치려고 할 때 한 번도 처음부터 잘 듣는 꼴을 못 봤다. 늘 자기 마음대로 해보다가 안 되면 수정하고 수정하고 그런 식으로 뭔가를 배운다.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은 따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뭐 과외면 몰라도 그룹 활동은 언감생심이었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권해 주시니 시도를 안 해 볼 수 없다.

일단 작년부터 보내고 싶었던 수영을 등록했다. 처음부터 쉬울 리 없었다. 아니 매번 갈 때마다 나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이 다가가면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지난 주에는 잠수도 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하고 그러다 결국 갈 때마다 진이 다 빠진다. 이게 맞는가 싶은데 어쨌든 이제 두 번밖에 안 남았으니 두 번 더 가고 휴가 다녀와서 수영은 계속할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수영은 물에 들어가 숨쉬기가 어려우니 무서워서 그런다고 치고 이번에는 집주변 축구교실을 가 보았다. 독일은 프로베트레이닝이라고 등록하기 전에 무료로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룹 스포츠인데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가 보는 데 의의가 있고 혹시 가서 잘 배우게 되면 유치원애서 친구들이랑도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청을 하게 됐다.

오늘 아침부터 호텔 조식 스타일로 아침을 차려주고 곧장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갔다. 처음에 내가 멀리 서 있고 애들이 다 같이 공을 차면서 운동장을 돌았다. 범수도 같이 달려갔다. 감격이었다. 아, 나에게도 드디어 이런 순간이 오는 건가. 이번주에 유치원에서도 선생님들이 너무 잘했다고 그랬는데 범수도 이제 슬 학교갈 준비가 되는 건가 싶어서 진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그 다음 공 가지고 이제 발재간 훈련을 하는데 트레이너 쌤들이 다가가서 자세도 잡아주고 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가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더니 결국 선생님은 나를 호출했다...

그대로 난 좌절했고 가서 계속 범수를 가르쳤다. 결국 이 아인 내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내가 가르쳐도 겨우겨우 따라할까 말까인데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겠는가. 유치원에 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나. 시험 수업 단계가 지날수록 범수는 더 말을 안 들었다. 공을 차면서 골을 넣고 싶은데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왜 남들을 따라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해보려 했지만 결국 도중에 선생님이 이 훈련은 범수가 참여 못할 것 같다고. 또 소리를 지를 것 같다고 그래서 '그럼 이만' 하면서 나와버렸다.

그 이후에 오전 내내 기분이 회복되지 않았다. 아니 점심 먹고 범진이랑 낮잠 자기 전까지 계속 기분이 꿀꿀했다. 내 기분이 왜 이럴까 열심히 생각해 봤다. 처음부터 그렇게 기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앞으로가 또 걱정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게 점점 나아지는 것 같긴 한데 그룹 활동을 결국은 잘 해낼 수 있는 걸까... 이런 의구심이 자꾸 드니까 너무 우울해졌던 것 같다. 내가 아이를 믿어줘야 하는데, 엄마가 돼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그게, 아이를 믿는다는 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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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