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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타국 땅에서 들은 가족의 비보

어머님이 끝내 멀리 떠나셨다

by 팬지

올초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 혼자 한국에 다녀왔다. 다같이 가려 했지만 안그래도 시부모님 두 분이 몸이 안 좋으신데다 애들 둘이서 얌전히 있지도 않을 텐데 그런 걸 안 그래도 잘 감당을 못하시는데 과연 좋은 일일까 하기도 했고... 2월 말에 봬러 가려고 비행기표를 끊어 놓은 상태였어서 한 달 전인 그 타이밍에 가기가 좀 그랬고 결국은 2월행 비행기도 취소했다. 남편은 2주 동안 어머님 옆에 있다 왔고 나는 혼자 애들 둘과 고군분투했다. 그 후로 간간히 한 영상통화에서 점점 허약해지는 어머님을 잠깐이지만 마음 아프게 봐왔다. 지난주에는 너무 힘들어보이는 나머지 마음 속으로 '그냥 얼른 편해지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어머님이 끝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부부는 한참동안 멍 때리다가 애들을 일단 등원시키고 잡혀 있던 업무를 처리했다. 컴퓨터 앞에서도 멍하니 앉아 집중을 못해 업무시간이 한참 늘어졌다. 나는 애들을 다 데리고 갈 수가 없다. 지난번처럼 남편 혼자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결정을 못 내렸다. 지난번 2주 다녀온 후로 우리 가계에 큰 타격이 생긴 것도 그렇지만 최근에 잘못된 투자로 우리는 큰 돈을 잃었다. 게다가 최근에 영주권 관련 인터뷰가 잡혀 있어 가더라도 일주일 안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얘기지만 원래는 이번주에 '드디어 영주권 손에 들어오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예정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바로 비행기표를 사는 게 망설여지는 이 상황이 너무 애석했다. 예전 같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표를 샀을 텐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같이 갔을 터인데 한국에 갈 때마다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온 우리라 '우리 상황을 살펴주는 사람들도 아닌데 우리가 굳이 그래여 하나'라는 나쁜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결정을 못 내리는 사이에 나는 집에서라고 작게나마 추모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생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걸고 책장 한켠에 두었다. 애들이 하원하고 집에 왔을 때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범수야, 범진아 저기 사진에 누구지?"

"할머니"

"할머니가 멀리 하늘나라로 가셨어. 이제 다시는 못 보는 데로 가셨어. 우리 기도해야 해. 안녕히 가시라고. 편안하시러고."

애들은 이해가 안 가는지 눈을 멀뚱멀뚱 떴고 범수는 여느 때와 같이 자기 할 말만 했다.

사실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날에는 조금은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밀린 업무도 마저 처리하고 고민 끝에 9월 말로 비행기표를 샀다. 우리 넷 모두 한국에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그때쯤에는 영주권 처리가 다 완료될 것 같아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좀 저렴한 표가 나왔다. 늦게라도 가서 아버님도 어떤지 들여다 보고 언니들 얼굴도 좀 보고 얘기도 하고 어머님 모셔 놓은 데라도 애들이랑 다녀오려고 한다. 그래도 비행기표라도 끊어놓으니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번주는 이렇게 몇 자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뇌가 고장난 것 같다. 그런데 또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9월에 한국에 가면 남편도 나도 실감이 날 것 같다. 댁에도 안 계실 테니까... 그래도 이제 더 이상 고통 없이 편안하게 쉬실 거라 생각하니까 또 그게 더 나은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이별의 날은 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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