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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동 치료 센터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by 팬지

작년에 언어치료를 하는 와중에 범수가 다니는 SPZ(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푸르포더룽(조기 개입 치료)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얘기했고, 나도 그 전부터 유치원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필요성을 느껴서 웨이팅 리스트에 범수를 올렸는데, 드디어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지금 보니까 여기는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데, 치료받던 애들이 이제 학교를 가면 치료가 종료가 되거나 그러는 경우가 많아서 지금쯤(7월) 자리가 나는 것 같다.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온 것은 4월쯤이었는데, 그때 등록 절차를 마쳤고 6월이나 7월부터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랬는데, 그것 때문에 언어 치료는 5월에 종료를 했는데도 6월에 연락이 오지 않아서 너무 갑갑했다.

그동안에 범수는 또 한 번 성장을 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얼른 치료 센터나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드디어 연락이 왔다. 그래도 센터를 다니면 치료사 선생님들한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지난번에 미국인 친구와 얘기할 때 내가 범수가 자폐일까 봐 너무 걱정이 된다고 그랬더니 자폐 여부를 떠나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냐고 그랬는데, 그 말이 다시 한 번 공감이 되면서 그 말을 해 준 친구한테 또 너무나 감사함을 느꼈다.

어쨌든 7월 초에 드디어 에르고테라피(작업치료), 하일패다고긱(감정,정서치료) 치료사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다. 에르고테라피는 당장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걸로 일정이 잡혔고, 하일패다고긱은 8월 휴가 후에 9월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1년간 치료가 진행될 것이고 곧 언어치료도 시작될 것 같다. 작업 치료사 선생님이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나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이번주 화요일에 약속을 잡아서 갔다. 다행히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셔서 무리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범수의 특성에 대해 지금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사례를 들면서 설명을 하니까 치료사 선생님이 아주 머리에 그려지가 잘 설명해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어딘가 영상에서 본 것 같다. 상담을 갈 때는 사례를 가져가야 한다고. 그래야 상담사나 의사가 아이의 특성을 잘 캐치할 수가 있다고.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 그냥 사례 없이는 그냥 그저 내 생각일 뿐인 것들이니까 말이다.

내 얘기를 다 마치고 나서 치료사 선생님은 흥미로운 질문을 하셨다.

"만약에 요정이 와서 범수에 대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면 뭘 빌 것 같아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범수한테 바라는 것 세 가지를 얘기했다.

"일단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잘 표현했으면 좋겠고요."

"또... 한 번 부르면 좀 바로 돌아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는 누가 뭘 가르쳐준다고 설명을 하면 집중해서 좀 보고 따라하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 가지 다 엄마한테 좋은 거라기보다 범수가 살아가면서 배우면 좋은 것들이네요."

나는 새삼 내가 정말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 범수가 빌고 싶은 세 가지 소원은 무엇일까요?"

"아... 일단 레고 블럭을 사달라고 할 것 같고,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했어요. 아마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고요. 그리고... 혼자 있고 싶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이번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을 이어갔다.

"엄마가 바라는 세 가지랑 범수의 '혼자 있고 싶다'는 소원은 아주 상반된 거네요. 우리가 치료를 할 때 어머님이 말씀한 세 가지도 정말 중요하지만 아이가 바라는 것이 뭔지 아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중간 정도의 절충안을 잘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 같아요."

이 말씀을 듣고 나는 한편으로는 너무 안심이 됐다. 사실 요즘 내가 너무나도 고민하던 문제였다. 사회성 발달이 늦어 언어 발달도 늦으니 얼른 사회성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아이가 원하지를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도 적지 않고, 억지로 같이 놀라고 붙여 줘 봤자 아이가 원치 않으면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그렇다고 그런 환경에 노출이 안 되면 아이가 어떻게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건지 계속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수영, 축구 교실도 같은 맥락이다. 계속 그런 환경에 노출을 해 줘야 뭐라도 배울 것 같다가도 그 상황에 애도 스트레스고 나도 스트레스고 이게 맞는 건가 싶다. 오늘도 마지막으로 수영 수업을 가야 하는데, 그 45분이 너무 무섭다. 내 안에 또 어떤 감정의 파도가 일지... 나는 수업 이후에 또 얼마나 녹초가 될지... 무척 두렵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냥 눈 딱 감자. 그래도 이제 방향을 같이 맞춰줄 안내자가 생겨서 너무 좋다. 고민을 나누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 혹독한 육아의 길에서 얼마나 오아시스 같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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