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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결혼생활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by 팬지

분기탱천의 순간이었다.

"병원을 가! 가라면 좀 가!!!!"

애들 앞에서 냅다 고함을 질렀다. 스스로 제어가 안 된 걸까, 아니 그보다는 마음 속 깊이 생각해보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나도 가끔은 내 마음을 모르겠다. 아이들은 나의 분기탱천에 겁을 먹고 위층으로 줄행랑을 쳤다. 내 화난 모습이 힘이 빠진 남편은 애들한테 가보라며 힘없이 손짓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내는지 잘 생각해 봐."

"말이 안 통하니까 그러겠지."

'아는 사람이 이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2차전이 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물러났다.


내가 이렇게 화가 난 건, 또 수영교실이 원인이었다. 지난 주에 그 난리를 또 치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인 이번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에게 가라고 확실히 일러 두었다. 하지만 남편의 발목이 또 말썽이었다. 전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막 서러움이 올라왔다. '내가 우겨서 등록한 수영교실이지만 그래도 나 좋으라고 등록한 건 아니잖아. 같이 참여해 줘야지.' 내 어깨에 올려진 책임의 무게가 무섭게 나를 짓눌러 나는 하염없이 땅바닥으로 아니, 지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결국 난 눈물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어차피 내가 또 다 가겠지. 에르고 테라피도 내가 가겠지. 그냥 다 그런 거잖아."

남편은 한숨만 쉬고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게 또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싸움을 크게 만들었다간 내일 둘 다 피곤해질 것 같아서 울다가 잠을 청했는데, 다행히 잠을 설치진 않고 잠들었다. 모두 잠든 새벽 5시에 나는 눈을 떴다. 잠은 잤지만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수업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째아이는 선생님이 다가오려 할 때마다 무섭다면서 도망가기 바빴다. 나는 너무 화가 나 오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그냥 그 자리를 나와 버렸다. 지난 주에 도망가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오늘까지 이러니 난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짓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고, 매월 찾아오는 친구도 오려는지 몸이 너무 무거웠다.

난 또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샤워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나오는 내내 아이에게 툴툴거렸다. 그러고 나서 차에 탔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한동안 운전대 위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지만 아이는 "출발할래."라는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더 화가 났다. "엄마가 이렇게 울고 있으면, '엄마 울지 마, 엄마 괜찮아?'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출발하라는 말이 아니라! 너는 엄마가 우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엄마 우는 게 좋아?" 이러니까 "좋아" 이러는데 할말이 없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이러는 걸까? 정말 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 "엄마가 화내는 게 좋아?" 그러니까 또 "좋아"라고 했다. 내 말을 이해를 못한 걸까? 그냥 단순히 언어의 문제인 걸까? "엄마가 울어도 좋아? 화내도 좋아?" 이런 말로 알아들은 걸까? 알 수가 없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남편을 보자 또 울음이 터져버렸다. 둘째아이는 다행히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첫째에게 "엄마 우니까 달래줘야지" 이랬더니 나한테 와서 안아주고 계속 뽀뽀를 해 주었다. '얘 진짜 뭐지?'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다.

다음날, 일요일이 되었다. 남편이 월요일에는 병원에 가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피곤한 표정으로 자기가 병원에 가면 깁스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아예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안 될 것 같다면서 병원을 안 가겠다고 했다.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결국 분기탱천을 하게 된 것이다. 도망간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서 애들도 진정시키고 나도 좀 진정을 했다. 하루종일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감정을 정리하고 참았다. 애들이 잠든 저녁 시간을 기다렸다.

"제발 기본적인 걸로는 논쟁하지 말자. 아프면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의사의 지침을 따른다. 이건 기본적인 거잖아. 왜 이걸로 너랑 말싸움을 해야 해? 그리고 대화할 때는 서로에게 집중한다. 눈을 보면서 말한다. 이것도 기본적인 거야.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남편은 내 상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 내가 또 이런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 너무 힘들어. 에르고 테라피는 자기가 책임지고 가고, 한 달에 무슨 일을 하든 2000유로씩 벌어와."

약간 선전포고의 느낌이었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책임을 다 떠안을 수도 없다. 각자 1인분의 몫을 해야지. 언제까지 한 사람에게 많은 짐을 지울 것인가. 그냥 내가 책임을 짊어지느라 한 사람이 바보가 된 것 같다. 힘들어 보이니까 그냥 내가 하고 밖에 나가서 말 잘 못할까 봐 무서워하니까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하고. 그러다가 진짜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집에서 청소나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이건 내가 도와주는 게 아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 남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를 도와준다. 아주 많이 도와준다. 집안일도 거의 다 한다. 애들 장난감 정리도 다 하고, 장난감이 고장나면 고치고, 집안에 고칠 물건이 있으면 또 고치고. 아빠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남편도 늘 피곤하다. 그런데, 시간을 내서 무슨 일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다. 프리랜서다. 고정금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네 식구를 책임지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타격이 온다. 일을 못하면 그냥 돈을 못 버는 것이다. 그런 스트레스도 내가 다 짊어지기가 버거운데, 첫째아이의 사회성이 걱정되어 하는 활동들도 모두 내 책임이고 유치원 선생님이며, 병원이며, 타게스무터며, 무슨 일이 있으면 다 내가 나서서 가야 한다. 남편이 영어랑 독일어가 아직도 미숙한 탓에. 이건 내 탓도 크다. 그냥 내가 다 하면 안 됐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밖으로 자꾸 내보냈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하려고 한다.

나는 슬기로운 결혼생활이란,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인지. 내가 내 의견을 내세우면 자기를 존중 안 한다고 서운해 할까 봐, 혹은 내가 상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일이 틀어질까 봐 묵묵히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내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게 과연 슬기로운 결혼생활인가? 앞으로 길면 3~40년을 함께할 동반자가 동반자가 아니라 내가 이끌어야 할 아이처럼 되고 있다면 적신호인 것이다. 지금이 바로 변화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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