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클리닉에서의 두 번째 진료
작년에 로고패디(언어 치료)를 시작한 이후 6월에 잡혀 있던 신체검사, 그리고 의사쌤과의 진료 이후 9월에, 6월에 만난 그 의사쌤 말고 소아정신과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다른 의사쌤과 진료가 잡혔다.
6월에 만난 의사쌤이 질문지를 몇 개를 주고 작성을 해보라고 해서, 유치원쌤한테도 드리고 나도 번역기를 돌리면서 열심히 작성하고 물어볼 질문들과 내가 걱정되는 사항들을 정리해서 가져갔다. 왜냐면 내가 만나고 싶다고 바로바로 만나거나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전화해서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진료가 잡혔을 때 한 번에 모두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적어서 가져갔다.
준비를 많이 해서 가니까 준비하는 동안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그 진료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 준비한 모든 것들을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유치원 선생님이 질문한 것들도 물어보고 해야 하니까...
하지만 내가 기대한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 의사쌤이 질문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좀 많이 좋아졌냐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어디가 어떻게 좋아졌냐고 해서 사실 말 말고는 지금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언어가 많이 늘었다고 했다. 문장으로 말을 곧잘 한다고 했더니, 너무 잘된 일이라면서 그럼 접속사를 붙여서도 말을 하냐고 물어봤다. 예를 들어 "나 배고파서 밥 먹을래"와 같은 복합 구조의 문장을 말하는지 여쭈어보셨다. 그래서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범수에게 옷을 홀랑 벗으라고 했는데, 범수가 바지와 팬티는 안 벗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걸까? 그래도 내가 얼르고 달래서 일단 벗기는 했다. 청진기로 진찰도 하시고 아랫배 부분을 만져도 보셨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런 진찰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복도로 나가서 나에게 술래잡기를 해 보라고 시키셨다. 내가 달려가면 범수가 달려와서 나를 잡는지 보려는 것이었다. 그게 뭔가 큰 의미가 있는 테스트인가 보다.
한 번도 술래잡기 같은 건 안 해 봐서 걱정했는데 내가 범수에게 "범수야 엄마가 저기까지 뛰어갈 테니까 엄마 잡으러 와" 하고 냅다 뛰었다. 범수는 내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부리나케 나를 따라 달렸다. 마치 그 뒤에 누가 더 쫓아오는 것처럼.. 그러더니 나한테 와서 "엄마 손 잡고"라고 얘기했다. 선생님이 아주 좋다고 하면서 들어갔다. 자기가 볼 때는 자폐가 전혀 아닌 것 같다고. 하지만 지금 자기가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이후에 잡혀 있는 검사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정도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아직 언어가 안 돼서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다고, 프루포더룽 예약 잡아 놓은 거는 너무 잘했다고, 엄마빠가 신경 써서 말을 가르치고 프루포더룽의 도움을 받으면 금방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내가 원한다면 내년 3월에 한 번 더 진료 예약을 잡고 이후에 검사들이 필요하지 않은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그때 범수 언어가 얼마나 늘어 있는지 보고 검사가 필요할지 판단해서 필요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될 것 같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질문을 아주 많이 준비해 갔고 필기할 준비도 했는데 그 선생님은 '뭘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닌데'라는 표정이셨지만, 나는 준비한 것을 다 물어보려고 애썼다.
1. 위험한 것을 모른다.
-> 차차 가르쳐야 할 부분이고, 6살이 될 때까지 변화가 없는지 지켜봐야 한다.
2. 말을 계속 반복한다.
-> 우리도 대화할 때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반복해서 되물어보지 않냐? 그런 것처럼 범수도 확인하고 반복해서 연습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3.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 이 부분은 내가 설명을 잘 못한 것 같다. 내가 비록 영어로는 큰 문제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당연히 완벽하지는 않고 나한테 제2의 언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 선생님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 설명을 듣고 더더욱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가 큰 차이가 있어서 아이가 혼란스러워하고 생각이 많아져서 언어 습득 속도가 늦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씀하셨다.
4. 다른 사람이 넘어지거나 아파하면 웃는다. 심하게 많이.
-> 이건 진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웃으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이 아프고 다친 거라고 지속적으로 설명해 주야 한다. (이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5. 유치원에서 고립되어 있다. 특히 애들이 많을 때.
-> 이것도 언어 문제일 수 있다. 아이들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말소리가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
더 얘기해 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래도 굵직한 건 다 얘기를 한 것 같다. 나 너무 수고했다... 병원 진료 끝나니까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집에서 낮잠을 숨도 안 쉬고 한 시간 잔 듯하다. 이제 프루포더룽에 가서 어떤 치료를 받을지 진단을 받고 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될 것 같다.
또 9월이라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서 새로운 친구들도 유치원에 많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범수가 또 유치원에 안 간다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원래 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있으니까 선생님을 막상 보면 또 괜찮아지긴 하는데,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 올 한 해는 친구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놀이하는 법도 얼른 익혔으면 좋겠다.
애들은 그냥 저절로 크는 건 줄 알았는데, 막상 애들을 키워보니 쪼꼬미들이 너무 고생하면서 삶을 배우고 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새로운 일에 부딪칠 때 망설이지 말고 해보는 용기를 얻는다. 그러니까 나도 독일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다른 엄마들이나 선생님들과 더 많이 부딪쳐 보고 더더더 많이 배워야겠다. 이런 나의 자세를 또 범수와 범진이가 보고 배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