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소이 Oct 29. 2023

자작나무를 백골이라 여긴 후부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자작나무를 백골이라 여긴 후부터


자작나무 숲에 들러 혼자 울곤 했지

눈 떠보면 밤하늘에 둥근달 걸려 있었다

달은 대기가 없어 상처가 그대로 남는다는데

순백 나무는 어떤 사연을 가졌을까


나무에는 뼈마디 구석구석 검은 점이 있다

산새와 짐승이 머물며 쪼아댄 상처들

조문객 손길에 이곳저곳 긁힌 흔적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마디 위로 쌓인 무수한 인연(인간의 사연)들


자작나무를 백골이라 여긴 후부터

숲이 거대한 무덤으로 느껴졌다

별에서 태어난 우리는 죽어서도 별이 된다는데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면 기쁘지 않다

그 많은 죽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절명의 중력에 이끌려 떨어진 혜성들

나무는 자작자작 타오르며 울부짖었다

나 혼자 울던 게 아니었구나

가슴에 시커먼 멍울 안고 살았는데

그럴 때면 나무에 새겨진 흉터를 보며

모난 마음 숨길 수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있다

달은 울음을 참아내고 나무는 울음을 발설한다

달은 고요하고 나무는 서글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