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水球)가 아니라 지구(地球)라 부르는 이유
버리러 간 숲
모든 것을 버리러 숲에 왔다
엄지에 굳게 새겨진 지문도
사랑하던 이가 불러준 이름도
허물 벗은 몸과 시커멓게 그을린 마음도
밑창 닳아버린 신발도 마지막으로
다
버리러 숲에 왔다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닌데 자꾸만 만난다
하늘도 나무도 산새도 바위도 자꾸만 마주친다
숲이 다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숲은 무엇이 부족한지
소쩍소쩍 뻐꾹뻐꾹 밤마다 울어댄다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날마다 우는 숲
고라니도 멧돼지도 펄펄 뛰어오른다
호흡을 멈추지 않기 위해 날마다 뛰는 숲
지구본(地球本)을 보아라 우리가 사는 이곳
육지보다 수면이 훨씬 많은데도
수구(水球)가 아니라 지구(地球)라 불린다
숲이 다 가졌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바람 소리 들어보아라
바다는 바람을 흘려보내고 숲은 바람을 가둔다
높낮이를 허물어 건반처럼 나무를 연주하는 곳
바다 위를 나는 새들도 숲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세상 밖에 유랑하는 생명을 아낌없이 품어주는 곳
숲에는 죽음도 부패도 멈춤도 없다
뿌리내린 식물은 다음 해에도 이듬해에도 성장한다
일시적 소멸 뒤엔 영원한 탄생만 있을 뿐
고요히 눈 감고 있으니 숲이 말을 건넨다
고향처럼 품어줄 테니 돌아가라고
사는 길 고달프고 외롭거든
숲을 보아라
분명 모든 걸 버리러 왔는데
두 손 가득 쥐고 떠난다
숲이 다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