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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Jul 02. 2023

물의 파동 방정식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문득 떠오르는


물의 파동 방정식


나는 파도처럼 수평선에서 떠밀려와

바위를 만나면 으스러질 각오로 살아가는 사람

너는 파동처럼 잠시 작아질지 언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파형으로 되돌아가는 사람

포말로 흩어져 하얗게 뿌리내리고 싶었으나

시커먼 심해 밑으로 가라앉아야만 했지

만조와 간조처럼 좁혀지지 않는 필사적 간극


몬스테라 화분에 물을 주었다

받침대 아래로 넘쳐흐르는 물

식물 키우기 좋아하는 너는

이파리와 줄기와 뿌리가 놀란다고 말했다

가뭄과 홍수를 눈치채면 썩게 된다고

집으로 돌아와 서서히 물 주는 법을 찾아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빨대를 이용해 단숨에 들이마시는데

남의 피를 약탈해 목숨을 연명하는 모기가 떠올라

경멸스런 눈으로 유리잔을 노려보았다

종이 빨대의 감각을 유독 싫어하는 너는

커피 한 모금 마시며 흘러내린 물방울을 닦아냈다


폭염주의보에 암막 커튼을 쳤다

선크림은 끈적거려 잘 바르지 않았는데

실내 자외선을 조심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블라인드를 좋아하는 너는

낮에는 조명 대신 햇빛으로 생활해야 한다고

티비에선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해 떠들어 댔다


우리 대화는 절벽 위 다이빙처럼 가슴을 풍덩 적셨지

썩어버린 화분을 치우는데 네가 말했다

가라앉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너의 창자를 갈라내어 소금을 한 움큼 밀어 넣고

썩지 않는 모습 그대로 절여지고 절여져

깊고 어둡고 짙푸른 바닷속에서

제 몸을 짜디짠 매로 채찍질하며

변치 않는 파동은 그렇게 완성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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