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왜 국제업무를 하고 싶으냐 물으면, '영어를 잘하고 그냥 관심이 많아요'라고 말하는 지원자들이 있습니다. 가끔 '국제법(or 국제통상 or 국제중재)에 관심이 많아서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관심이 많으냐고 물으면 다시 돌아옵니다. '영어를 잘해서 제 언어능력을 활용하고 싶어요.'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나요? 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번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법 지식과 변호사에게 필요한 스킬의 상관관계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는 두 번의 시험을 치렀는데, 하나는 사법시험(1+3으로 3번의 연수원 시험이 따라옴)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 사무변호사시험(QLTS)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자니 허무하리만큼 참 다사다난한 과정이었습디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과정은 사실상 판검사를 임용하기 위한 과정에 가깝고, 모두 객관식과 서술식(기록형 포함)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현행 변호사 시험의 구성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알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국 사무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제대로 변호사를 양성하려면 이런 트레이닝을 시켜야 하는구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아래 표는 구글에서 가져온 QLTS 시험 2차 과목입니다. (현재는 시험제도가 조금 바뀐 걸로 알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가로는 법 과목, 세로는 변호사의 스킬이고 여기에 대해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스킬을 한 번 살펴볼까요? Part 1은 실제 사람을 상대하면서 진행이 되는데, 고객과 면담하기, 면담내용 정리하기, 그리고 판사 앞에서 변론/고객 앞에서 발표하기입니다. 그 밑 Part 2는 리서치 툴을 이용해 법령 및 케이스를 리서치한 후 결과 작성하기, 법률 서면 작성하기, 그리고 고객 또는 파트너에게 보내는 메일 작성하기입니다. 말 그대로 변호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을 망라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말하기 듣기, 쓰기 등 언어적인 스킬뿐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태도, 배려심, 법원 예절, 하다못해 이메일 작성 예절까지 모두 테스트 대상입니다.
법 과목을 살펴보면, 회사법과 부동산법, 유언공증(가족법), 민형사 소송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이 우리가 보통 로스쿨에서 배우고 시험도 치르는 법 지식이고, 향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가져다줄 자산입니다.
결론은 뭐다? 변호사가 저년 차에 '영어를 쓰는 일'에 집착해서 커리어를 정하게 되면, 단언컨대 내실 있게 성장하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건 내가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스킬 중 하나일 뿐인데, 그걸 너무 크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변호사가 지식이 없이 스킬만 좋으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만 혹사당하거나(예컨대 번역노예), 혹은 그대가 조금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현란한 영어를 내세우는 사기꾼이 될 우려가 높아요.
자기가 일하는 분야의 지식(법 과목)과 스킬(언어)은 모두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권해드리는 순서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법의 영역이 무엇인지 틈틈이 탐색을 해보고, 시장에서 그 분야의 지식과 스킬을 차곡차곡 쌓은 다음에, 영어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세요.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따라 정말 폭발적인 성장의 기회가 여러분 앞에 펼쳐질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저 스킬들을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로도 발휘한다고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쯤에서 이야기할 것 같아요.
"전 영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국제법(or 국제통상 or 국제중재)을 하고 싶은 건데요?" "저는 예전부터 각종 관련 대회와 인턴십을 거쳤고 논문도 썼어요."
일단 학부생 또는 로스쿨생이 관련 논문을 썼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인정입니다. 이런 국제법 nerd들을 위하여, 다음번엔 국제법과 국제 OO 분야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