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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송 Mar 20. 2023

2009년, 남미

프롤로그 

네이버에서 무슨 새로운 글 재미있는 것 없나 보다가, 정말이지 오랜만에 남미사랑 카페가 눈에 띄어 들어가 보게 되었다. 주인장분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그분들이 이제 막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박집을 차렸을 때 그 집에서 3박가량 묵었었다. 남미여행 시작 전 내가 세웠던 원칙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모든 국경을 육로로 넘기 그리고 한국 민박 가지 않기였는데, 몇 번은 지키지 못했다. 그중 한 번이 남미사랑 민박집에 간 것이었다.


2009년 3월에 떠난 여행이 7월이 되자 슬슬 여행 자체가 지겨워지고 있었다. 이제 웬만한 걸 봐도 새롭지 않고, 호스텔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이 노는 것도 비슷비슷해질 무렵이었지. 그러던 중에 한국 사람들이랑 한식 만들어 먹고 놀면 좀 다를까? 해서 들렀었다. 그곳에서 마약 하는 애, 아르헨티나 어학연수 와서 임신한 걸 알게 된 애, 장기 휴가 내고 놀러 온 간호조무사 언니, 이렇게 만나서 놀다가 몇몇이 같이 이과수를 보러 갔었지.


임신한 친구는 하루종일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 전화로 닦달하다가(비즈니스 비행기 표 사놓으라고, 자기 돌아간다고), 내가 동네 마실 간다니까 따라나서서는 중간에 토할 것 같다고, 아무 레스토랑에나 들어가서 화장실 찾는 바람에 내가 너무 곤란했었다. 종업원한테 짧은 스페인어로 진땀 흘리며 사죄하는데 얘는 화장실 들렀다 나와서 살 것 같다고 하더니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밝고, 휴우.


왜 새삼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느냐 하면, 아마도 그때 떠났던 남미여행은 내게 매트릭스를 보여준 빨간 알약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그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마음과 세상을 보는 눈으로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인 것 같다. 물론 장기 여행을 결심한 것 자체는 본래 새로운 도전 좋아하는 내 성격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살면서 내가 남과 다른 무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 조금은 더 고민스럽지 않았을까?


내 사무실을 차리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용기 있다"는 말인 것 같다. 누군가는 불안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근데 내가 불안해야 하는 이유가 어떤 건지 사실은 묻고 싶다. 돈을 못 벌까 봐? 남들한테 인정 못 받을까 봐? 그럼 돈을 잘 벌고 남들한테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평화로운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 계획은 사실상 실현 단계에 나아가기 어렵고, 그 어떤 계획이 완벽하더라도, 계획한 대로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우리에게 Why not의 마인드와 남들보다 조금만 더 성실할 수만 있다면, 인생은 훨씬 재미있는 선택지들로 가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Why not의 생각으로 떠났던 남미 여행 에피소드를 틈틈이 써보려고 한다. 


2009년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다,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해 보겠노라고 노트북도 없이 떠났었다. 그런데 오히려 덕분에 그때의 느낌과 잡다한 생각들, 아이디어들을 일기장에 잘 정리해 둘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려 보려 하니 오히려 내가 더 설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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