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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Oct 30. 2022

제 4부

2006

부임


   새벽 4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 수평선 너머로 밀려드는 미명에 못이겨 백열전구로 장식된 고깃배들이 한척 두 척씩 포구로 떠밀려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5월의 중순이었지만 새벽공기는 아직 차가웠으므로 나는 순찰차에 벗어 둔 외투를 껴입고 차에서 내려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어 에워싸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고깃배가 정박한 해안가 쪽은 몰려든 사람들로 이미 한 줄로 두껍게 벽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작은 몸을 이용하여 그 틈 사이로 어떻게든 몸을 끼워보려고 애썼다. 경찰관 제복을 입은 작은 여 순경이 정말로 고깃배를 구경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담을 쌓고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조금씩 자리를 양보해 주었고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부둣가 맨 앞으로 나와서 고깃배의 온전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껏 서른이 다 되도록 살아오기를 산골 동네에서 굽이진 골짜기와 들판을 보면서 자라왔던 내게 처음 바닷가의 풍경이란 정말로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어디를 보더라도 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이 확 트인 시야를 시원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에나 보던 장면을 이렇게 눈앞에서 생생하게 지켜 볼 수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었지만 이제는 이런 풍경이 나에게는 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어떤 날에는 매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며 그것은 내가 이곳으로 부임을 받고 근무를 시작하게 된지가 아직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는 이유로 낯선 이곳에서의 적응이 그다지 쉽지 않았다는 이유기도 했었다. 갑판에 산처럼 수북이 쌓인 물고기들은 그 크기도 들쑥날쑥하여 어떤 것은 내 손 바닥만한 작은 물고기에서부터 내 팔뚝보다도 몸집이 굶고 긴 것으로 그야말로 생선이라고 이름을 붙일만한 것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등이 푸르스름한 것들은 전부다 고등어로만 보였는데 문어와 오징어, 꽃게처럼 그 생김새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종류 말고는 다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특이한 것들 뺀 다른 생선들은 물 밖으로 나와서 이미 죽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급한 성격 탓에 기절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고 그저 움직임이 없이 눈꺼풀이 없는 커다란 눈만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저 문어와 꽃게들만이 어떻게 해서든 갑판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였으나 언제나 특이하고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들은 사람들 눈에 잘 띄게 되어서 기절한 놈들보다 더 빨리 구경꾼들에게 팔려 나갔는데 여 순경이라고 작은 낙지 몇 마리를 그냥 주겠다고 몇 번이나 제안을 받았었지만 나는 살아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저 생명체를 도저히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해야만 했었지만 이 작은 포구에서 조차도 엄연한 인간의 경제 논리가 적용되고 있었다. 희귀하고 생명력이 넘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항상 그것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제일 먼저 비싼 몸값에 팔려나갔으며 그 이외에 나머지 소외된 물고기들은 덤핑으로 처리되었는데 막차를 겨우 올라 탄 입석의 승객처럼 정원 외로 취급되어 몇 마리나 되는 지 그 수를 세어 볼 것도 없이 그저 무게로 팔려나가면서 각각의 개성과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간 근무를 마무리 하는 새벽녘에는 항상 순찰 노선 중간 중간에 있던 항에서 고깃배와 어항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나의 일상처럼 되어 버렸고 그 이전에는 지금의 이런 나의 생활이란 전혀 상상조차도 해보지 못한 것이었었다.      

   나의 첫 부임지는 지방의 바닷가를 끼고 있는 작은 도시의 경찰서였고 그 중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을 인위적으로 막아놓은 방파제를 끝으로 해경과의 관할이 구분되어 있던 작은 어촌이었다. 그곳의 사람들도 물론 우리 동네처럼 농사도 짓고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소규모였고 낮은 담장 위로 걸린 빨랫줄에는 빨래대신 내장을 다 빼낸 생선이나 오징어 같은 어류가 건조되고 있던 곳이었다. 이제껏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서만 보아 오던 풍경을 밖을 나선지 5분을 채 걷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던 그야말로 바다비린내음 가득한 어촌 동네였던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파출소는 3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한 팀에는 팀장을 포함해서 모두 5명씩이었는데 파출소장과 주중 근무만을 하시는 관리팀장을 빼면 매우 단출하여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근무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장님은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아버지 역할을 하셨고 두 분의 부장님은 아버지라고 하기는 젊은 편이라서 작은 삼촌 정도의 연배이셨고 그리고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들어온 선임은 막 시보를 지난 신임과 진배없었음에도 나를 항상 후배로 막내 취급을 하면서 근무 중에 온갖 잔소리를 하는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함께 112 순찰차를 타던 조원은 거의 두 분의 부장님 중 더 연배가 높으신 분이 조장이 되어 나와 한 팀으로 근무하셨는데 시골의 특성 상 별달리 큰 신고사건이 없었으므로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동네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 동네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찾아가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었다. 간혹 대도심으로 발령을 받은 동기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근무는 정말로 한가롭기 짝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그들이 내 근무의 절반이상을 대신 하면서 적어도 내 봉급의 3분의 1만큼을 벌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비록 고향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이렇게 시골로 올 수 있게 된 것을 어쩌면 다행이라고 여겨지던 마음에 가끔씩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었다. 더군다나 나와 거의 한 팀이던 조장님의 고향이기도 했던 그곳은 순찰차에서 내리는 곳마다 대부분 아는 사이들이었고 시골 동네 사람들의 인정과 푸근함으로 나는 그곳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처음 그 동네로 발령을 받고 머무를 자취집을 구하러 다녔지만 시골이라 하숙을 한다는 집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주야간으로 교대근무를 하던 내게 버스시간을 맞추기는 무척 번거롭게 여겨졌었는데 마침 현재 근무하는 파출소 건물은 지은 지 얼만 안 된 신축건물이라 전에 구 청사로 쓰던 건물의 숙직실을 사용하면 되겠다는 소장님과 직원 분들의 배려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구 청사 건물의 숙직실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밤중에는 덜렁 비어 있던 건물에 혼자만 있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했었지만 한 울타리 안에 24시간동안 불을 밝히는 파출소가 눈에 보이는 거리에 있었고 만일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한 걸음에 달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말벗처럼 들리는 무전기를 통해 나오는 동료들의 음성이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에 무섭다는 생각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내가 쓰는 방은 전 소장님이 머물던 2층 숙소로 웬만한 생활필수품은 거의 다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좁고 기다란 창문 아래 놓인 앉은뱅이책상과 소장님이 두고 가신 것으로 보이는 낡은 스탠드였다. 그것은 흔하디흔한 삼파장 램프가 아니라 오래 켜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백촉 전구를 사용하는 나팔모양의 스탠드였다. 그 방을 쓰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것은 그 책상과 스탠드도 함께 사용해도 좋다는 뜻으로 여기고 나는 그 책상 앞에 앉아 등 앞에 어둠을 등지고 앉아서 편지를 쓰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그냥 엎드려 잠이 들기도 했었는데 비록 세면장과 주변의 시설이 열악했더라도 언제까지 있게 될지 모르는 그 방, 그 공간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 때 당시 경찰관은 범죄 신고 현장에서 민원인을 대하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시골에는 혼자 사시던 노인들이 많이 계셨던 탓에 자기와 짝이 되어 있었던 어르신들을 가끔이라도 찾아뵙고 그 분들의 안위를 살피거나 생활의 어려운 점을 도와드리고 최소한의 말벗이라도 되어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일 중의 하나였다. 나에게도 그런 식으로 연결된 할머니 한 분이 계셨었는데 그 할머니는 아흔이 가까운 연세에도 꽤 총명하고 정정하셨던 편으로 내가 찾아가는 것을 그렇게도 반기시면서 손수건에 싸 놓으셨던 사탕 몇 개를 항상 손에 쥐어 주시곤 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그것이 그렇게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여서 할머니를 찾아 뵐 때는 사탕 한 봉지라도 꼭 들고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온 정기적인 우편물 – 읍사무소에서 온 안내장, 홍보 전단 등 – 도 읽어드리곤 했었는데 할머니 또한 그런 우편물들을 모아 두셨다가 뜯지도 않은 봉투를 내밀면서 글을 읽을 줄 아셨음에도 눈이 침침하다는 이유로 내가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 수가 있었고 나는 할머니의 그런 마음을 차마 쉽게 물리칠 수가 없어 아무 내용도 없었던 그 우편물의 내용을 확인시켜드리느라 더 많은 시간을 지체하기도 했었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그립고 말 상대가 귀했던 시골 동네에 젊은 여순경의 등장은 할머니한테도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시골에서 자랐던 내게 시골에서의 근무는 수긍할 수 있었던 일들 – 사소한 동네 사람들 간의 말다툼 등 – 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촌을 끼고 있는 동네의 특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 내가 살아온 산 아래 산골동네의 사람들이 순박하고 참을성이 더 많아 보였다면 이곳의 사람들은 조금 더 성급하고 억세고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가끔씩 외로움을 느끼며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치 향수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우울해 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머릿속의 생각을 없애버리려고 근무가 아니었던 날에는 온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주야간의 교대근무는 보통의 경우대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전처럼 날짜를 하루씩 혹은 일주일 단위가 아닌 한 달을 주기로 계산을 하고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심리적으로는 더 빠르고 바쁘게 느껴졌고 어느새 첫 부임지에서의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여름의 7월이 되어 있었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의 풍경에서도 엄연한 이중의 성격을 찾아볼 수가 있다. 내가 순찰을 하도록 지정된 노선에는 꼭 지나쳐야만 하는 해안가 절벽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곳은 운전이 미숙하였던 나에게 지나가기에 불안했던 곳이기도 했으면서 꼭 아주 잠깐이라도 멈춰서 차에서 내려 육안으로 보이는 가장 멀리에까지도 볼 수 있었던 곳이었기에 그 장소를 지나갈 때마다 잠시라도 차를 세우고 그 경치를 보고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운전하기에 불안한 이 장소를 어서 빨리 지나가야 하는 곳인지를 갈등하게 했었다. 그렇지만 거의 언제나 후자 쪽을 선택하여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고 절벽의 가장 높은 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가서 날씨가 흐린 날에는 차 안에 앉아서 그것마저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날씨가 좋았던 날에는 참지 못하고 맨 눈으로 해안가에 접해 있던 바닷가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바닷가의 풍경을 이야기 할 때 거의 대부분 밀물이 밀려와 만조가 되어 있는 상태를 보거나 상상하는데 쉼 없이 밀려들어와 새하얀 모래거품을 일으키는 파도와 수면에서 반짝 반짝 빛을 발하는 짙은 초록빛의 바닷물, 그리고 그에 맞닿은 수평선이 보통의 모습을 말한다. 하지만 달의 중력이 소멸되지 않는 한 밀물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간조가 되어 바닷물이 모두 쓸려나가 버리는 상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썰물일 때의 해안가는 감추고 싶은 밑바닥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상태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오히려 썰물일 때의 바닷가는 생명력으로 넘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진회색으로 민낯을 드러낸 개펄에는 작은 게들이 끊임없이 숨바꼭질을 하느라 작은 구멍을 내 놓았고 움푹 파인 웅덩이에 물이 조금이라도 고여 있던 곳에는 작은 물고기와 고동들이 작은 돌 틈 사이를 서로 비집고 들어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려고 각축전을 벌이는 분주함으로 활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으며 물속에 파묻혀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작은 무인도에는 따개비와 석화굴이 잔뜩 붙어 기생하고 있어서 엄청난 생명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해안가를 따라 사람들이 쌓아 놓은 방파제의 벽면으로는 가로줄로 길게 물 때 자국이 나 있는데 항상 물에 잠겨 있는 아래쪽은 썰물에도 벽면을 바짝 말리지 못하고 이름도 모르는 이끼를 가득 키우면서 아예 초록빛으로 변해버렸고 오히려 석회질의 회색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윗면이 더 초라하고 삭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렇듯 나는 바닷가를 자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면서 마음속에 그리던 바다의 모습을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바꿔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점은 사람들과 사물들과 어떤 일을 대할 때의 나의 삶의 태도마저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7월의 꼭짓점 어느 날, 고향 집을 다녀오던 버스 안에서 경찰서 경비교통과에 근무한다는 누군가로부터 같이 근무를 해 보자는 전화를 받고 나서 나의 파출소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가 했고 그 달의 끄트머리에서 경비교통과의 교통관리계로 발령을 받게 된 후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를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삶과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생활들로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질 뿐 이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있던 파출소에서 짧게 머문 기간 동안에 나는 마치 어디 멀리라도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사람들과 경찰관으로서 처음 서툰 운전으로 순찰차를 몰았을 때조차도 내 뒤를 바짝 따라오거나 앞질러 나가던 자동차들이 거의 없었던 경쾌한 경험, 주민의 신고에 대응하여 최초의 당황했던 마음을 감추면서 민원인한테는 최대한 성의를 다해 설명하고 안내를 하려고 노력했던 일들. 그리고 이른 밤부터 새벽녘까지 길목을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작은 불빛을 밝혀 놓고 음주단속을 하면서 겪었던 고충과 해프닝들은 모험 가득한 사건들처럼 내 기억 속에 이제는 한 장면의 그림으로 남아있게 되었으며 이제 막 후임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었다는 내 선임의 ‘부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본서로 들어가느냐’ 하던 핀잔에도 나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던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생활들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질병 

    

   어떤 날에는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가 있다. 만일에 공해로 오염된 것이라면 잿빛의 먹구름과도 같이 여겨질 테지만 태양이 박혀 있는 주위가 동그랗게 희뿌연 해지는 것만 빼면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것과 눈앞이 하얀색으로 뒤덮이면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와 나에게 일시적으로 심각한 현기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문제였다. 언제나 팔다리가 가늘고 안색이 창백하였던 나를 두고 파출소에 근무하시던 동료들은 ‘야간 근무는 힘들겠는 걸’하시기도 했었지만 마침 교통관리계에서 사람을 한 명 더 충원하기로 되어서 내가 그 자리로 발령을 받게 된 것이었다. 들어오기 전 다른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계시던 여경 선배님한테서부터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로 그것이 축하를 받을만한 일인가 의아했었지만 나중에 그 자리로 그 선배가 오고 싶어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 것은 축하전화가 아니라 ‘너 여경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처신 잘하면서 근무 잘해라’ 이런 뜻이 다소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경찰서 내에서의 근무는 나라는 직원은 어느 곳에 있든지 반듯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내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더욱 더 열심히 생활해야만 했다.      

   사실 시보기간도 끝나지 않았던 내가 본서 내근 자리로 단기간 내 옮겨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파출소에서도 직원 분들 사이에서 나의 성품과 성실성에 대하여 인정을 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본서 내 150여 명이 근무하고 있던 곳에서 고작 여자 직원이 다섯 명도 안 됐다는 것을 계산해 보더라도 신임 여 순경이 경찰서로 발령을 받아 온다는 사실은 직원들 사이에서 짧은 이슈가 되기에도 충분한 일이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처음에 전입한 신임 경찰관도 남자 동기 1명과 나 이렇게 단 둘 뿐이었으므로.     

   경비교통과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범위도 넓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다 처음 접했던 일이었으므로 발령 후 거의 한 달 동안에는 아침 7시에 출근을 하게 되면 퇴근하기 까지 저녁 9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일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가장 나를 어렵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조사계 서무까지 맡아서 해야 했고 그 중에는 교통사고 발생에 따른 대책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는데 통계를 내는데 있어서 무조건 전년 대비를 기본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 몇 장짜리 보고서를 쓰는데도 통계를 뽑아내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써버렸기에 소모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일단 내 자신부터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가 퇴근하고 난 사무실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처럼 이틀 뒤에 있게 될 지방청장 앞에서 교통사망사고 대책을 보고하러 가셔야 하는 경찰서장에게 보고서를 드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늦은 줄을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전년도에 우리서가 교통사망사고예방에서 우리 청 16개 경찰서 중 1위를 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이듬해는 그 성적을 전년 대비를 기준으로 평가가 내려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당연히 올해 성적은 거의 최하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 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나는 이렇게 짧은 대답을 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 바로 위 벽면에 걸린 시계는 벌써 2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흠. 시간 가는 줄 몰랐네.’생각하면서 오늘은 어쩌면 밤을 새서라도 보고서 작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 나는 다시 “누구세요?”라로 말하면서 나무로 된 문의 동그란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문을 살짝 밀었는데 문 밖에 둥글납작한 쟁판에 치킨 몇 조각과 떡볶이가 담긴 1회용 접시가 올려 진 것을 양쪽 가장자리를 들고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래서 노크를 하고도 문을 열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수사과 김현희 경장인데요 아시는 분이 야식을 너무 많이 사가지고 오셔서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김 순경님이 아직 일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저희 팀장님께서 야식 좀 갖다 드리라고 하셔서 갖고 왔습니다. 시간이 오래됐는데 퇴근은 안하세요?”     

   나는 지금 내 눈 앞에 야식을 들고 온 사람이 강력 팀 소속의 김 경장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고 부르는 이름이 내 이름과 거의 흡사해서 전에 한 번씩 누군가 김 경장님을 부르는 소리를 나를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고서 대답을 한 적도 있고 몇 번이나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매우 난처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아, 네. 내일 모레 서장님께서 청장님께 사망사고 대책보고를 들어가셔야 하는데 아직 제가 업무에 서툴러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네요. 오늘까지 마무리가 돼야 내일 중으로 결재를 받을 수 있어서요.”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 들고 온 쟁반을 두 손으로 받아 들면서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대답을 했다. 김 경장은 사무실 안쪽을 흘끗 쳐다보는가 싶었는데 사무실에 나 말고 또 누군가 있는지를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혼자 남아 계신거세요?”

   “네, 계장님은 좀 전까지 계시다가 퇴근하셨는데 왜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니요. 김 순경님이 혼자서 드시려면 심심할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면 잠깐 저희 사무실로 가셔서 직원 분들하고 같이 드시고 오시죠.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솔직히 저 치킨과 떡볶이를 받아 든다고 해도 이 큰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서 먹는 모양새도 조금은 청승맞게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마침 자리에서 일어선 김에 바깥공기도 쐬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사무실과 수사과는 1층 로비를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수사과 사무실에는 거의 처음 들어와 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수사과의 서무 부서였던 지원팀 사무실의 출입문 안쪽으로 작은 쪽문이 하나 있었는데 김 경장은 나를 그쪽으로 안내했고 안 쪽으로 들어가자 지원팀 사무실의 다섯 배 정도로 넓은 사무실이 나왔다. 처음 들어와 본 곳이다. 경찰서에 발령을 받아서 근무한지 두 달이 되었는데도 여태 이런 사무실이 있는지 조차 몰랐었다. 천정에 나사못으로 고정된 와이어에는 강력 팀을 3개 팀으로 구분하고 아크릴 표지판 밑으로는 내 키 높이 정도의 파티션으로 사무실을 분리해 놓고 있었다. 정 중앙에는 둥근 탁자가 있었는데 두꺼운 유리 아래는 초록색으로 된 부직포가 깔려 있었다. 그런 식은 관공서에서 탁자관리의 기본서와 같은 전형이었다.     

   둥근 탁자 주위에는 사복 차림의 직원들이 김 경장이 가져온 나머지 것으로 보이는 음식을 드시고 계셨는데 의자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면서 어서 오라고 짧게 환영 인사를 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괜히 따라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나의 행동에 후회가 되었다.      

   “김 순경은 왜 아직 퇴근도 못하고 일하고 있는 거야?”     

   강력 1팀의 송 팀장님이 나에게 물어보신다.


   “아, 네 내일 모레 서장님께서 청장님께 사망사고 대책보고를 들어가셔야 하는데 제가 그 담당이라 서요.”

   “아니, 그렇다고 아직 시보도 안 지난 직원한테 그런 어려운 일을 맡겨서 되나. 경비과장도 참 이상한 사람이네. 신임순경이 뭘 할 줄 안다고.”     

   나는 ‘신임 순경이 뭘 할 줄 안다고.’하는 말이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입사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순경이, 그것도 여자 경찰관이 경비교통과에서 다루기 까다롭다는 사망사고 대책보고서를 12시가 다 되도록 그것도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 순경은 올해 몇 살이야?”

   “스물여덟이에요. 제가 조금 늦게 들어왔어요.”

   “그러네, 뭐 다른 일 하다가 들어왔어? 우리 김 형사랑 동갑이네.”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시험에 좀 여러 번 떨어졌어요. 그래서 ........”

   “하기야 여경은 들어오기가 힘들잖아. 많이 뽑지도 않고.”     

   나는 마치 개인 신상 조사라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래서 어서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야식은 입에도 안대고 고생하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언제나 범인을 잡거나 참고인들을 불러서 조사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 업무였으므로 왠지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냥 그 자리에서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고 있는 사실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욱 기분이 나빴던 것은 내가 그 사무실을 나오고 난 뒤 그들끼리 나눈 대화가 나에게 들렸다는 사실이었다.     

   “김! 너 애인 없지? 김 순경 어떠냐! 내가 보기에는 차분하고 머리도 영리해 보이고 괜찮은데 내가 한 번 다리 좀 놔 줄까?”


   나를 두고 그런 식의 말을 한다는 것에 그 들의 상식에 불손함이 보였고 그래서 기분이 나빴으며 김 경장의 대답이란 것도 나에 대해 단 1도 모르는 사람이나 할 법한 말이라서 자존심까지 상했던 것이다.      

   “에이, 내 스타일은 아니에요.”     

   여태까지 내가 이성에 대해 품었던 호기심이라는 것이 사춘기 시절 처음 부임해 오신 수학 선생님과 한 달 동안 교생실습을 나왔던 대학생을 향해 표현했던 감정이 전부였고 솔직히 사춘기 시절의 그런 감정이라는 것은 별달리 심각할 것도 없어서 그저 친구들과의 장난이 섞인 게임과도 같은 것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소설책의 멋진 남자주인공에게 남모르게 품었던 일시적인 감상 외엔 별다른 사건은 없었던 내가 이런 식으로 취급당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상하리만치 화가 났었지만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서의 마무리를 하면서 그런 하찮은 말에 내가 괜히 흥분할 이유가 없었고 특히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음을 써버리는 것은 전부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경찰서장님은 이번 연말에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신 분이셨다. 보통 사람들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경찰관으로서 재직하였으니 이제 퇴임까지 몇 개월 남지 않은 시간을 여유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도 될 법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나 우리 서장님은 오히려 몇 달밖에 남지 않았던 경찰관으로서의 재직기간 동안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근무를 하여야 한다는 신조와 인생관을 갖고 계셨던 분이셨기에 오히려 직원들은 다른 경찰서장들 재임시절보다 업무적으로 몇 배는 더 큰 부담감과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듣던 바로는 어떤 직원이 우리 경찰서장을 두고 정말로 ‘죽이고 싶다.’고 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 서장님의 악명이 얼마나 드높았는지를 짐작할 만할 것이다. 그러니 결재 한 번 받으러 서장실을 들어가는 것에 얼마나 부담을 느꼈겠는가.      

   보통 결재는 계장님이 서장님께 단독으로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번 보고서만큼은 프리젠테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특히 실무자가 함께 결재를 들어가야만 했다. 아니 이것마저도 전부가 서장님께서 지시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하여 작성한 보고서는 내 수고에 비해 엄청난 칭찬은 받지 못했지만 웬만하면 한 번에 통과하기 어렵다 소문이 난 서장님의 마음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된 것인지 계장님과 나는 긴장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서장실을 나왔다.      

   계장님은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애초에 칭찬을 바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신임다운 열정이 더해 진 것 뿐 이었기에 그저 기쁘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중요한 일을 잘 마무리한 데서 오는 가벼운 만족감과 중요한 업무에서 해방된 데서 오는 일시적인 홀가분함이 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변화된 것이 있다면 내가 신임답지 않게 일도 무척 잘 할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강하고 매우 성실하며 특히, 악명 높았던 서장님의 마음에도 들었다면서 다른 직원들이 나를 시보라고 무시하면서 낮게 보는 경우가 없어졌다는 것과 다른 여경 선배들을 제치고 먼저 본서 발령을 받은 것에도 마치 무슨 특혜가 있었던 것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던 사람들에게는 합당한 변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부터 나는 ‘똑똑한 김 순경’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야근 없이 근무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퇴근을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은 없었지만 그동안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퇴근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파출소에서 본서로 발령을 온 뒤 처음 몇 주 동안에는 파출소 관사에서 경찰서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그러나 자동차 없이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잦은 상황근무로 예정된 버스시간을 놓치기가 일쑤였고 한 번씩 직원 분들이 나를 태워다 주시곤 했었지만 언제까지나 그 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여자 경찰관 중에 최고로 막내 순경이었던 내가 경비동원의 순번에서 항상 일 순위였기 때문에 갑자기 동원이라도 되었던 날에는 기동성이 없었던 내게는 당황스럽고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경찰서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곳에 나만의 자취집을 구하게 되었고 그것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의 계기로 다가왔다. 이번에야말로 그 누구의 방해도 간섭도 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관심과 취향대로 내 방을 꾸밀 수가 있었으며 밤새워 책을 보더라도 얼른 자야 되지 않겠냐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기에 비록 경비교통과에서의 업무가 파출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던 사람 사는 소소한 재미와 교훈이 없이 사무적이며 과중하였더라도 그것은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생활에 기꺼이 기회비용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비견될 것조차 되지 못하였다.      

   처음 나름대로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경찰서로 발령을 받고 나서 시내의 공공도서관과 서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약간 마음이 들 뜬 상태에 있었다. 도서관이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골에서의 그곳과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처음부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만 서점의 경우는 조금 다를 것이란 나의 예상은 역시나 기대를 져 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소규모라서 내가 원하는 책이 있냐고 주인에게 물었을 때 대부분 실망스러운 대답만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줄 곧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여 읽었는데 직접 발품을 팔아가면서 손으로 종이의 질을 느껴보고 눈으로는 활자체의 종류와 크기를 확인 후에 책을 선택하거나 특정 출판사에서 출판된 고전을 주로 읽어 왔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책 고르기에 있어서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었던 터라 온라인 서점에서 택배로 배달되어 온 책에서는 읽기 전의 흥분과 설렘을 느낄 수가 없었다.      

   요 전날 우연히 민원실에 근무하는 사람이 갑자기 특별휴가를 가야 되는 상황이 생겨서 지원 근무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 경찰서의 얼굴이라고 할 만큼 민원실의 위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고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정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민원실 앞으로 온 우편물을 한 아름 남겨주시고 가신 것들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시에서 발간한 월간 잡지를 보게 되었고 문학 소식란에서 [책방 사람들] 이란 칼럼을 발견하고 이곳에 중고 책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쪽을 오려 내서 가방 속에 내내 가지고 다녔었는데 여태껏 거기까지 찾아가 볼 만한 여유가 없이 마음속으로 벼르기만 하다가 마침 오늘 그럴 만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소소한 일상에서 터득한 철학 중 한 가지 – 내가 있던 장소를 아주 조금만 옮겨도 그 곳에는 뜻밖의 큰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 가 이번에도 적용된 것이나 진배없었다.  

   

   <책방에 관한 내 추억 한 가지>     


   대학생이었지만 외모에서 풍겨지는 느낌은 오히려 고등학생 같았던 스물한 살, 두 살 적의 벌써 10년이나 가깝게 지난 이야기다.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거나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날에는 항상 그 골목을 찾아갔다. 196 ~ 70년대 대학생들은 특히 고서점을 자주 찾아가서 값을 흥정하고 보고 싶은 책을 구입했다는 것을 김승옥의 <싸게 사들이기>를 보면 아주 흥미롭고 적나라하게 엿볼 수가 있지만 나는 그 시절 김승옥을 몰랐지만 내게도 책방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날들이 있었던 것이다. 활자 책이 생활공간에서 멀어지고 화면으로 보는 e-book까지 생겨나고 있는 마당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나라는 인간이 정말로 괴짜가 아닌 가’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거의 있는 듯 없는 듯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던 여대생에 불과했다.       

   장시간 습기를 머금은 데서 풍겨나는 해묵은 종이 곰팡이 냄새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 도 있는 종류의 불쾌한 냄새일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기분을 한층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반가운 향기로써 다가왔던 날들이 있었다. 다니던 대학교에서 고등학생이나 들 법한 책가방을 메고 약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낡은 책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던 헌책방 골목이 있는 곳까지 닿을 수가 있었다. 어릴 적 동네에서 학교까지 왕복 20리길을 걸어서 다녔다고 하면 가끔씩 사람들은 내 외모에서 풍기는 나이를 짐작하고서 도대체 어느 산골동네 살면서 그 먼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느냐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본적이 많다. 날이 춥거나 무척 더운 날을 제외하고는 나는 그렇게 내 걸음으로 지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는 걸어 다니곤 했었다.      

   “할아버지 또 새로 들어온 책 있어요?”

   “응~ 왔다 간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배시시 웃음을 보여드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찾아야 할 장소로 단 번에 걸어갔다. 그 축축한 종이 곰팡이 냄새는 어느 곳에서도 따라 낼 수 없는 헌 책방만이 전유할 수 있는 유일한 추억의 냄새였다.      

  책 한권을 들고서 500쪽의 가까운 책장을 바람을 일으키며 1 초 만에 넘겨보았다. 주로 누군가의 손을 거쳐 온 책들만을 사서 읽는 내가 그런 [중고책]을 대하는 특유의 방식이다. 학창시절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 온 학생의 주머니 사정이 훤한 일이었으므로 중고 책을 구해서 보는 것이 나름대로 나의 책값에 대한 대응 방책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누군가의 손을 한 번 거쳐 온 책은 일단 책장을 넘기기기 쉬울 뿐만 아니라 정말로 운이 좋다면 내가 갈망하는 초판 인쇄본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에는 책 속에서 광명역에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 승차권을 얻을 수도 있었다. 숙소의 숙박계처럼 몇 호차의 몇 번 좌석, 출발시각과 도착시각, 그리고 알 수 없는 의미의 NO. 00-000000의 번호표, 이 차표의 주인은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초조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던지 아니라면 생각보다 길어진 대기 시간 탓에 지루함을 표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붉은 색깔의 볼펜으로 구석구석에 복잡한 서명으로 된 낙서들은 마치 내가 그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혼자만의 상상 여행을 떠나기도 하면서 기차표와 같이 그렇게 과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한 시간이 넘도록 일어설 생각도 없이 내가 정한 구석에서 책을 보았다. 나는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발이 절여 올 때가 돼서야 겨우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앉아서는 그제 서야 본격적으로 나만의 보물찾기를 시작했었다.      

   “당신을 도서관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저는 00대학 의예과 2학년 000입니다. 당신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저에게 생긴다면 내 생의 가장 큰 행운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00날 00시에 00찻집으로 나와 주십시오.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벌써 20여 년 전에 써진 그 편지는 젊은 의대생의 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스물한 살, 두 살이던 내가 자주 가던 그 헌책방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책속에 끼워져 있던 그 편지는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에게 전달되었을까. 아니라면 쓰기만 해 놓고 그냥 책속에 끼워 놓았던 것을 잊어버린 것일까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내 기분은 마치 내가 그 편지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인 냥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 날 나는 그 책을 가져오지 못했었다. 편지는 그 책 사이에 그대로 꽂아서 내가 뽑은 책장 그 자리에 다시 처음대로 꽂아 놓았다. 그냥 그 책을 내 소유로 만든다는 것은 그 날의 젊은 청춘들의 추억을 내 것으로 훔쳐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잠시 어떤 의도도 없이 아주 우연히 엿보게 된 것만으로도 약간의 죄책감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 편지는 책속에서 20년을 훌쩍 넘어버리는 시간동안 추억을 비밀처럼 감추어 왔으며, 내가 그것을 본 지금 그들은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그 날의 초상이 내가 뜻밖에 발견한 동대구 행 열차표를 타고 내게로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른 시간을 달려 왔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감정이 상식보다 강하다는 것은 그 당시 내게는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양쪽으로 열리도록 되어 있는 문은 내가 상상했던 대학교 시절의 책방 골목의 모습이 아니라 이곳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인정되었던 상가지역에서 조금은 독특하게 생긴 3층 양옥집 맨 아래층을 책방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문은 단단한 스프링으로 묶여 있는지 밀어서 여는 문이었는데도 내 체중으로 밀어야 열릴 정도로 탄력이 있었다. 몸이 통과할 정도로 틈이 열리자 문의 맨 꼭대기에 달린 방울이 사람이 들어온 것을 알리는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책장이 만든 통로 안쪽으로 쑥 들어간 곳에 나무로 된 미닫이문이 스륵 열리면서 코안경을 낀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엄마야’하고 깜짝 놀랐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누구나 흔히 느끼는 그런 식의 긴장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그나마 코 중간에 걸려 있던 안경을 벗어버리고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면서 저녁 일곱 시가 넘은 시간에 낯선 처자의 방문에 조금 당황하신 것 같이 보였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서로의 등장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소박해 보이는 모습에 품었던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시에서 발간한 월간 소식지에서 칼럼을 보고 찾아왔는데 여기가 책방........이 아닌가요?”

   “맞아요. 여기가 그 책방은 맞는데 처자는 어쩐 일로.......”     

    아저씨는 말끝을 약간 흐리면서 나의 모습을 잠깐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아, 네. 사실은 제가 이곳에 직장을 새로 얻어서 온 지 몇 달 되었는데 책을 좋아해서 어쩌다가 우연히 여기를 알게 되어 한 번 찾아왔어요.”

   “그래요. 여기는 보시다시피 헌책밖에는 없어요. 학생, 아니 아가씨가 찾는 책들이 많이 있을까 모르겠네.”

   “제가 잠깐 구경해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보시구려. 나는 이 방에 있을 테니 뭐가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고. 아참. 그리고 커피는 얼마든지 마셔요. 여기가 다방은 아니니 커피 값은 안 받는 다우.”     

   아저씨는 벗어서 들고 있던 코안경을 다시 끼고 보고 있던 책을 안경 알 너머로  계속 읽으셨고 큰 눈으로 선해 보이는 인상과 얼어붙은 내게 농담까지 하실 줄 아는 센스, 그리고 그 분의 연배에서 흔하지 않던 독서하는 모습까지 아저씨를 불과 몇 분전에 처음 본 것이지만 왠지 이제 경계심을 늦춰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왜 진즉에 이곳에 찾아오지 못했던 것인지를 이제라도 찾게 된 것에 대한 만족감에 안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고서 주인아저씨의 책 읽는 취향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는데 주로 동서양을 막론한 철학서들과 시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읽히고 연구되는 고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특히 러시아와 독일 고전문학이 거의 빠지지 않고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고 여기 까지 30분이 넘도록 발품을 팔아서 찾아온 것에 대한 나의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고질병이 장시간 내가 그곳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끊임없이 나를 따라 다니는 빈혈이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로 더욱 가중되었고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어지럼증을 느끼고 나는 그 자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주인아저씨가 나에게 가까이 오셔서 괜찮은지 물으셨고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씩씩하게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서 책방이 쉬는 날이 언제인가를 물어보았고 집안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연중무휴라는 대답을 확인하고서 그곳을 나왔다.      

   언제나 내 고질병은 그것이었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커다란 안경을 낀 멍청하게 생긴 어떤 녀석이 나에게 자신과 사귀자고 말을 했을 때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특별히’라는 짧은 대답을 했던 과 동기생에게 그 아이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다 보면 나만의 독서 시간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갈등을 겪지도 않고 선택을 내린 것으로 첫 대시를 그렇게 물리쳤다는 것,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생으로 돌아온 그가 신입생 때의 멍청하게 생긴 아이가 아니라 제법 멋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다른 여자아이를 옆구리 끼고 다니던 것을 보면서 그냥 뜻 모를 웃음이 나왔던 것, 이 원인이 바로 책이었다는 것이 나의 고질병이었다. 이렇게 책과 빈혈은 나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밖을 나왔는데 눈에 익은 회색 지프 한대가 성급하게 모퉁이를 돌면서 여기 3층 양옥집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금방 내 앞을 가로막는 택시를 잡아타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실종 사건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내 경우가 조금은 특별하기는 했다. 파출소에 신임순경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경찰서 경비교통과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나는 경비교통과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으로 비교적 과중한 업무였을지라도 매우 성실한 근성을 발휘하여 대부분의 일에서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평판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과 과장님들은 다음 인사 때는 자기네 과로 발령을 낼 것이라는 소위 인사치레의 말을 건네기도 하였는데 그 말에는 곡해가 전혀 없이 그저 나를 칭찬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경우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기 시작한 10월에 나는 다시 한 번 또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새로 발령을 받은 부서는 청문감사관실이었고 소위 경찰관의 일상적인 근무 태도를 살피고 특별한 비위를 적발해 내는 사정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부서로 옮기고 난 후 내 생활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청문감사관실의 근무자들에 대한 다른 직원들의 인식이란 것은 만일에 경찰서장이 큰 볼일이라도 보기 위해 화장실에라도 간다면 청문감사관은 억지로 방귀라도 뀌어야 한다고 말할 만한 관계였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한편, 같은 서 내에서 이렇게 단 기간 동안의 반복된 전보 인사는 사무 감사에도 충분히 지적을 당할 만한 사유에 해당됐고 내가 바로 그 경우였으므로 조금씩 내 능력이 과장되어 부풀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에 대한 그런 불식들은 내가 절대로 어떤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닌 오해라는 것을 증명해 내기라도 하듯 다른 일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오로지 사무실 회사 일에 전 보다 더 전념하게 되었다.     

   한 달째 경찰서 분위기가 흉흉했다. 전 직원을 갑을 반으로 구분하여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수색에 동원되었고 그 작업은 새벽 6시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되었는데 어느 덧 11월이 다가와 오고 있었기에 날마저 일찍 저물기 시작했기 때문에 온 종일 밖에서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란 게 추위와 육체적 피로로 사람들을 여간 지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시작은 이랬다. 내가 청문감사관실로 발령을 받은 지 일 주일 만에 발생한 사건으로 열다섯 살 먹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실종이 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던 것이다. 신고자는 실종된 아이의 엄마였고 시골에서 흔하게 발생하였던 사건은 아니었으므로 당시 형사과 직원들은 처음부터 아이를 찾기 위해 비번 근무도 없이 그 일에 매달렸다. 특히 경찰서 자체의 분위기도 안 좋았던 것이 마침 우리 경찰서 근무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앞 둔 경찰서장의 입장에서도 이런 큰 일이 생겨서 만일에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다면 경찰 경력에 있어서도 큰 오점으로 남게 될 수 있는 일이여서 형사과 직원들뿐만 아니라 경찰서 전체의 일과도 같이 여겨져서 모두들 관심이 그 사건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종된 아이의 가정은 불우한 편이었다. 막노동 일을 하는 아버지와 남의 집 일 품팔이로 일당을 벌어서 살림을 꾸려가는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은 모두 다섯 명이나 되었는데 맏이였던 열아홉 살 딸을 밑으로 그 실종된 중학교 2학년 아이가 둘째, 그 아래로 터울이 많이 진 열 살, 여덟 살 그리고 형제 중 유일하게 남자아이였던 여섯 살이 된 아이가 한 가족이었다. 10월의 시작은 포도수확의 끝 무렵이라 농가의 대부분이 포도농사를 짓고 있었던 그 마을에서는 늦은 밤 시간까지 일이 이어지기가 일쑤였고 여중생이 실종되던 그 날도 여전히 늦은 시간까지 엄마는 남의 집 포도밭 일을 하시다가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마침 어린 자녀들이 있었지만 큰 아이가 상고에 다니면서 동생들을 보살피며 집안 살림을 거의 다 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엄마는 집안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아버지 또한 공사판 일이 끝나고 거의 항상 작업 인부들과 막걸리 한 잔씩을 드시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그 집에는 거의 언제나 아이들만이 있게 된 상황이 많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와 보니 둘째 딸 아이가 집에 없었다. 큰 아이에게 자조지종을 물어보니 그날따라 평소보다 유난히 엄마의 귀가가 늦어지는 것 같아 마중을 간 것으로 저녁 여덟시 쯤 집 밖으로 나갔는데 아홉시가 넘은 시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큰 언니는 어린 동생들에게 저녁을 챙겨 먹이고 집안일을 하고 있어서 다 큰 둘째 동생한테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이에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엄마의 생각도 시골 동네이기도 하고 아이가 항상 다니던 길이니 잠깐 동네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간 것으로 생각하며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간 약간은 술이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셨을 때조차도 둘째 딸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그제야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어린 동생들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한 엄마와 큰 딸,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세 사람이 동네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딸아이의 행방을 찾아보았으나 딸을 봤다는 동네 사람도 만나지 못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친구아이도 그날 저녁에는 딸아이를 만나지 않았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직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기온은 뚝뚝 떨어지면서 춥게 느껴졌는데 혹시 발을 헛디디고 도랑에 빠져 추위에 떨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네의 길목에서부터 집까지 오는 길의 구석구석을 뒤집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날은 밝기 시작했고 상황이 정말로 심각하다는 것을 직시한 가족들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가 끄는 낡은 포터 트럭을 타고 딸아이 실종신고를 하러 경찰서로 왔던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아이가 사라지고 난 뒤 거의 열 시간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실종 사건이 접수되고 2,3일이 아무런 진척도 없이 지나가게 되면서 이 실종사건은 처음에 단순 가출처럼 인정하던 사람들조차도 반드시 어떤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여중생 실종사건이라는 것도 시골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었던 만큼 수사과 강력팀 형사들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사건을 조사했다. 경찰서 자체 인원만으로는 수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고 곧 바로 지방청에서 직원 중대를 교대로 배치 근무를 시키게 되면서 본격적인 수색작업이 진행되었다. 하루 평균 100명이 넘는 인원이 인근 야산과 해안가에 인접한 들녘, 그리고 농가와 과수원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한지 보름이 지나도 아무런 흔적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실종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가는 듯했고 경찰서 직원들도 하루하루 계속되는 동원 수색잡업에 지쳐가고 있었다. 경찰서장은 한시라도 빨리 사건의 단서라도 찾아오게끔 형사들을 압박했고 결국 이 사건은 지상파에까지 공개되면서 이 여중생 실종사건은 일파만파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고 이제는 국민들의 시선까지 한 몫 더해 직원들은 당장 무엇이라도 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중 형사과 강력2팀장은 이 집안사람들의 행동과 분위기를 살펴본 것대로 추리를 해 냈는데 가족들이 생계가 어려우므로 둘째 딸 앞으로 가입된 생명보험 보상금을 노리고 가족들이 저지른 자작극일수도 있다는 쪽으로 서장님께 구두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마침 그 집 아버지는 음주운전 벌금 미납으로 검찰청에 수배가 되어 있던 상태라서 형사들은 아버지를 수배자로 인지하였고 300만원이라는 벌금을 당장 납부할 형편이 못 되었던 아버지를 그만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엄마의 일과는 사건이 발생된 것으로 보고된 시간에는 동네 포도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성립이 되었으므로 가장 먼저 큰 딸 아이를 불러다 조사를 했고 그 뒤 동생이었던 열 살, 여덟 살이던 어린애들까지 여자 조사관을 붙여서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로 조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형사들의 효율적인 조사 방법대로 서로 입을 맞추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가족들을 사전에 분리하여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같은 질문으로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엄마의 입장이라는 것은 자식들 앞에서는 거의 언제나 완강하고 다급하며 애절했던 것이었으므로 조사가 다 끝난 뒤 가족들이 다시 만났을 때는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서로 부등 켜 끌어안고 울면서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모습이 정말로 이 사람들이 자식 하나를 어떻게 해서라도 경제적 형편을 나아지게 할 것처럼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보이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덟 살 먹은 아이의 진술이 사건을 더 궁지로 몰아가게 하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는데 당시 아이의 조사를 맡은 사람이 신출내기 형사로서 당일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여 직원의 입회하에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아이의 말이 자기는 동생과 바로 위 언니와 함께 큰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있었고 큰 언니와 사라진 둘째 언니는 작은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은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던 중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려서 작은 방으로 가보니 둘째 언니가 뒤로 벌러덩 넘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단서로 없는 상황에서 이 아이의 진술이 얼마나 자극적인 내용이었는지는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미 경찰서 내 이 실종사건의 내막이 대충은 ‘돈을 노린 가족들 간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그 아이의 그런 진술은 충분히 전혀 다른 상황을 상상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더 기가 막혔던 진술이 사람들의 의심을 더욱 확고하게 진실로 믿도록 만들었는데 둘째 언니가 그렇게 쓰러지고 조금 있다가 엄마가 돌아오셨는데 그 것을 본 엄마는 큰 언니와 함께 둘째언니를 들어다 집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소형 승용차 뒷좌석에 태우고 엄마는 삽과 곡괭이를 트렁크에다 싣더니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나가버렸고 그리고 얼마 뒤 엄마와 큰 언니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작은 언니는 자동차 뒷자리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딱 맞아 떨어지는 사건의 상황이 아니던가. 큰 딸과 작은 딸 사이에 작은 다툼이 있던 중 덩치가 컸던 큰 딸이 야윈 편이던 작은 딸을 밀쳤고 그 힘에 나가떨어진 둘째딸이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집에 돌아와 본 엄마가 이 상황을 파악하고 둘째딸을 인근 어딘가에 파묻어 버리고 밤새도록 가족들과 입을 맞춘 뒤 그 다음 날 새벽 경찰서에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와 둘째 딸의 실종신고를 하였다는 것이 이 사건의 중심 개요였다. 또 마침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던 집안이었으니 자식이 다섯이나 되었던 집 안에 딸자식 하나쯤은 없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거였다. 만일에 형사들의 추측대로 그 사건이 들어맞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이란 말이던가. 사건 조사의 방향은 이미 그쪽으로 기울었고 이제 남은 것은 둘째 언니의 시신을 파묻은 엄마와 큰 딸을 조사해서 시신을 찾아내기만 하면 사건을 마무리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믿음은 의심보다 훨씬 더 강한 편이었다. 그 엄마와 큰 딸을 아무리 조사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차라리 우리 가족을 모두 죽여 달라’는 진술만 되풀이할 뿐 별다른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조사관들은 한 달 가까이 수색하던 중에도 털끝만큼의 단서로 찾을 수가 없었고 그 가족들마저도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딸을 찾아주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우리 가족 전부를 감옥에 가둬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라고 애원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어린 동생들은 부모가 모두 구속되어 있었던 마당에 돌봐줄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에 지역 아동센터에서 임시 보호되고 있는 실정이라 서로 생이별을 하고 있던 상태였었다. 그 생이별의 장본인은 사건의 흐름을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의 유도심문에 쉽게 어떤 말이라도 상상하여 지어낼 수 있는 어린애의 말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무조건 믿어버린 데서 온 지나친 잘못이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실종사건이 접수 된지 한 달이 더 지났고 정년퇴임을 한 달 앞 둔 경찰서장은 특단의 지시를 내리게 된다. 현재 유치장에 구금 된 아버지와 어머니를 풀어 주고 이 여중생 실종 사건을 처음의 백지 상태에서부터 재조사하라는 것이었다. 이번이야말로 정말로 지휘관다운 처사였다.      

   계절이 점점 겨울로 가까워지게 되면서 실종자 수색에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그 당시 우리 과장님은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어 이름 난 역술인까지 찾아가 보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지휘부가 얼마나 이 사건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과장님은 역술인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계장님과 나 – 당시 청문감사관실에는 과장님, 계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직원이 셋 뿐 이었다. -를 앞에 앉히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정말로 믿기도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말이라 더욱 더 관심이 고조될 수밖에는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 점쟁이 말이 아직 살아 있다는데....... ”

   “아, 정말요?”     

   계장님과 감사관님의 대화를 나는 숨죽여 듣고만 있었다.      

   “응, 그런데 바닷가 쪽에 있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안 맞아.”

   “우리는 여태까지 거의 산을 집중적으로 수색했는데 바닷가라면 어디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글쎄 말이야.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꼭 살아 있다고 더 이상 찾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지금 실종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제 발로 직접 작정하고 나간 것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겠냐고. 그리고 그 점쟁이 말이 조금 더 해 보라고 하는데 조만간 어떤 소식이라도 들릴 것이라고 말이야.”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요. 하루아침에 멀쩡하던 애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으니. 그리고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되어서 송치가 되면 아마 형사들도 불이익 처분을 받게 될지도 몰라요. 엄한 사람을 유치장에 끌어다 가뒀으니 이게 어디 보통일이에요.”     

   나는 처음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지만 점쟁이의 말이란 것도 놀랍기 그지없어서 그것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갈등이 되었기 보다는 살아 있으니 조만간 나타날 것이며 그러니까 수색을 계속해야 된다는 그 말에 더 많은 기운이 느껴졌고 계장님의 말씀대로 엄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서 유치장에다 가둬놓고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게 했으니 신상에 무슨 벌이라도 내려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점쟁이 눈에도 보이는 일이라면 누군가는 반드시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절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의 신념이 영적인 미신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이제 사건 발생 두 달째가 가까워오고 있던 11월의 끄트머리까지 와 있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곳이었기에 바람은 언제나 강하게 불어왔고 이제 코끝에 느껴지는 기운도 온풍이 아니라 콧물을 흘러내리게 만드는 냉풍이었다. 사건의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를 전혀 찾지도 못하고 있었으므로 지방청에서도 수색인원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고 점점 그렇게 여중생 실종사건은 미제로 남겨지는 가 싶었다. 그래서 매일 번갈아가면서 되었던 수색작업의 동원도 마무리 지어졌고 이제 사건의 조사는 오로지 형사들의 몫으로 돌아가 있었다. 11월의 마지막 날 퇴근 후 갑작스러운 비상동원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적어도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관내 일가족 살인 사건 발생, 전 직원은 경찰서로 현 시간부로 30분 안으로 집결. 20:00까지 전 직원 긴급 배치 장소에 도착하여 별명 시까지 경계 근무 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람.’     

    112 상황실에서 단체 발송된 문자였다. 뭐라고? 일가족 살인사건 발생이라고? 때 마침 나는 그날에는 몸살기운이 심한 탓에 책방에도 도서관에도 가지 않고 자취방에서 쉬고 있을 때 문자를 받았고 내가 친하게 지내 던 동료 중 한 사람으로 생활안전과 서무였던 안 경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 안 경장님? 도대체 이 문자가 뭐예요? 이거 장난 아니죠? 사실이에요?”

   “아니, 경찰서로 안 오고 뭐해. 지금 어디야, 정말로 살인 사건 났어. 직원들 지금 대회의실에 모이고 있으니까 김 순경도 빨리 와.”     

   비록 평소에 나와 장난도 자주 치고 이런 저런 소소한 대화도 자주 나누면서 친하게 지내오던 안 경장님이었지만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벗어두었던 외투를 그대로 걸치고 거의 뛰다시피 하여 경찰서까지 도착했다. 정말로 서정에는 퇴근을 했던 직원들이 급하게 되돌아 온 차들로 붐볐고 나는 급하게 배정된 긴급배치 장소를 확인하고 나와 같은 조원으로 편성되어 있었던 정보과에 근무하던 유 경장님의 차를 타고 그 장소로 떠났다. 다행이 시간을 맞출 수 있었지만 일가족이 살인됐다는 결말만을 들었으므로 조사 시에 필수 원칙으로 등장하는 6하 원칙에 해당하는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므로 무전기로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예의 주시하여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무전기는 평소보다 잠잠했다. 23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궁금증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나와 같은 조원이 되셨던 유 경장님은 다소 오랜 경찰관 근무 경력 탓인지 퇴근 후의 갑작스러운 긴급배치 명령이 그저 따분하고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때마침 무전기에서 살인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이십대 중 후반의 남성으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등산용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자전거?’ 하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조장인 유 경장님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가벼운 미소만으로 내게 그저 ‘관심 끄고 김 순경도 그냥 편하게 쉬어. 나는 한 숨 잘 테니.’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내가 긴급 배치된 장소를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장소와는 자동차로 달리더라도 3~4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다른 지역과의 경계선상에 위치에 있었고 직진으로 곧게 나 있는 왕복 2차선의 도로를 약 2킬로미터 정도를 달려오게 되면 끝자락이 새총 모양으로 갈라지면서 1차로로 줄어드는 지점이 있었는데 우리가 차를 세우고 근무를 하고 있던 지점은 이 지역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이 있는 곳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는 작은 오솔길 같은 도로였고 나머지의 또 다른 길은 짧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타원형으로 둥글게 돌아나가면 이 지역을 벗어나면서 다른 지역으로 통하도록 연결되어 있었던 도로였다.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흘러나오고 거의 2시간이 넘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을 대비하여 비노출 근무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차 시동을 끄고 있어서 차 안의 공기는 차가웠고 그 안에 두 사람이 몇 시간째 호흡을 하고 있었으므로 안쪽 유리창에선 뿌연 안개가 끼어 있어서 바깥을 잘 내다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밖에서도 차 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조장님은 가벼운 콧소리를 내면서 졸고 계셨는데 나는 이런 답답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서 잠이 들 수 있다는 게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갈수록 피곤해지기 보다는 정신이 더 또렷해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가끔씩 지나다니는 자동차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맷자락으로 유리창에 낀 뽀얀 습기를 닦아내고 눈앞에 직진으로 뻗어 있는 2차선의 도로를 그냥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검은 색의 이상한 물체가 점점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보이는 게 아니던가. 나는 본능적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두시 반을 막 넘긴 시간이었다. 무전기 소리도 잠잠했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으며 약 50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만 의지하여 그 사물의 실체를 알아내려니 도대체 저것이 괴물인지 짐승인지조차도 분간이 안 되었다. 아니 단순한 그림자의 움직임이라고 해도 될 만큼 형체가 불분명한 물체였다. 하지만 검은색으로 된 어떤 물체가 우리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아 볼 수 있었다. 자전거, 자전거다! 자전거? 용의자가 자전거를 타고 도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 저건 분명히 성인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갑자기 몸속의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는 것을 느끼며 심장이 엄청난 힘의 무게로 늑골에다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으므로 지금까지 계속 앉아만 있었는데도 숨이 가빠왔다. 무겁게 뛰는 심장 때문에 가슴에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아니겠지? 분명히 달라. 저 사람은 지금 반바지를 입고 있잖아.’      

   내 시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으므로 자전거를 탄 검은색의 남자가 가로등 밑을 지나쳐 올 때 반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본능적으로 왼손으로 유 경장님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유 경장님, 좀 일어나 보세요. 저기 사람이 오는데 뭔가 이상해요. 이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아이 김 순경. 저 쪽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이 자전거 운동하려고 나온 거야. 신경 끄고 눈 좀 붙이라니까.”     

   나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유 경장님은 이제는 아예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려 누우면서 한 번만 더 그런 허튼 소리로 귀찮게 굴면 더 깊은 잠에 빠져버리겠다는 경고라도 하듯 몸을 고쳐 돌아앉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일에 저 사람이 정말로 범인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내 손에 든 것은 달랑 무전기뿐이었고 그것은 곧 맨 주먹으로 저 성인 남자를 때려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령 나에게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이 솟아나서 저 남자를 제압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게는 수갑조차도 없지 않았던가. 나는 그 남자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자전거를 탄 남자를 계속 주시하였다. 달려오는 속도를 감안해 볼 때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건지 모르지만 새총모양 삼거리의 양쪽으로는 가로등이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훤하게 다 보였고 반대쪽의 길로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아래를 지나가는 것이 작은 들 고양이였더라도 그 형체를 분명하게 알아 볼 수 있도록 매우 밝은 곳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초를 세면서도 내 눈이 점점 동그랗게 커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윽고 반바지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탄 남자는 삼거리까지 도달했고 차가 있는 병원 쪽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도록 둥글게 나 있는 도로를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명확하고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남자도 자전거를 타고 굽이진 도로를 돌아나가면서도 내가 앉아 있었던 자동차 쪽으로 계속 고개를 돌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 두 눈을 잠깐 동안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순간, 그 남자가 나를 보았다는 느낌이 든 순간 내 몸은 얼어붙는 것처럼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이제 자전거를 탄 그 남자가 정말로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인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고 내 눈 앞에서도 사라지고 없었다. 장시간 밀폐된 차 안에서 있었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너무나 그쪽에 신경이 곤두섰던 탓이었는지는 분간할 수가 없었지만 심한 두통과 함께 현기증이 달려들었고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세우고 앉아 있었던 나는 한참을 뒤에야 등받이에 몸을 조심스럽게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감기는 눈이 시리게 느껴졌으므로 눈꼬리 끝으로는 반사적으로 작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유 경장님은 그제야 한 숨 잘 잤다는 듯 하품을 하면서 자동차 밖으로 나가서 기지개를 폈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김 순경, 그런데 아까 본 거 있잖아. 경찰서에 가서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그냥 우리 둘이 근무 중에 생긴 일인데 설령 아까 지나간 남자가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해도 우리 둘이 맨 손으로 뭘 어쩔 수가 있었겠어. 그 놈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범인 잡겠다고 설쳤다가 우리 둘 다 다칠 수가 있다고. 그리고 아까 본 사람은 그냥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밤에 잠이 안와서 운동하러 나온 것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돼. 알겠지?”     

   나는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냥 그 말에도 일리가 있고 이해가 된다는 식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자꾸만 그 남자가 살인사건의 범인일 거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범인이 확실하다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무전기가 찍찍 하고 반응하는 소리를 내더니 음성이 흘러나왔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하는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현재 그 시각 전 직원이 각자 긴급 배치된 곳에서 무전기 소리에 집중하며 동시에 듣고 있는 상황에서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말은 일가족 살인사건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여중생 실종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글쎄 그 여중생이 지금 막 집으로 돌아왔다며 그 아버지가 경찰서에 연락을 해 왔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경우는 또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단 말이던가. 유 경장님은 형사 놈들은 지들끼리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진즉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쓴 소리를 하시면서 마치 사건의 내막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말했고 그 무전소리에 당황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나를 보면서 하신다는 말씀이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들 뿐이었다.      

   “김 순경, 그런데 우리 김 형사 어떻게 생각해? 학교 후배 놈인데 겉은 그렇게 무뚝뚝하고 건들건들해 보여도 속은 진국이야.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잘하던 공부도 손을 놓고 성격이 그런 쪽으로 변해서 그렇지 정말로 괜찮은 녀석인데 나이도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조만간 내가 자리 좀 만들어 볼게”     

   나는 “네에?” 하면서 정말로 황당한 그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냈고 유 경장님은 고생했다고 말하면서 아마 곧 긴급배치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무슨 예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무전기 상으로 긴급배치 해제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장시간 고생하였다는 말을 끝으로 무전소리는 종료되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고 한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한 남자가 빠져나간 도로의 끝에 걸린 산의 반대쪽에는 이미 솟아오를 준비를 마친 해의 기운이 보이면서 희미한 빛이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늘빛은 점점 창백한 회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나마 반짝거리던 새벽별도 곧 사라져 버렸다. 유 경장님과 내가 경찰서로 돌아왔을 때는 근무를 마친 직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으므로 서정은 차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나는 도저히 내 자취방까지는 걸어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미 과장님과 계장님이 먼저 와 계셨고 나를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며 여경 숙직실에 올라가 잠깐이라도 몸 좀 녹이면서 눈을 붙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분들에게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정말로 휴식이 필요했으므로 3층에 있었던 여경 숙직실로 들어갔다. 이불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 방바닥에 두 손을 먼저 넣어 보니 바닥은 난방이 잘 되어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 전제에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마치 아무런 기억도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잠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범인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우리 집 마당 중간에 놓인 평상의 맨 왼쪽 가장자리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서 두 다리는 널찌감치 멀리 곧게 쭉 뻗고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집 앞 논에서 이제 막 한 뼘 정도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모 이삭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5월의 바람에 모 이삭들은 바람의 방향대로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올렸다 반복하고 있었고 간혹 제 몸을 뒤집으면서 연둣빛이 조금 더 탁해 보이는 뒷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푸른 오월>을 노래한 노천명 시인이 ‘과연 언어의 마술사였구나! 표현의 천재이셨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5월의 자태는 그 무엇도 범접하지 못할 고상함과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5월은 계절의 여왕이었다. 나는 반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또 나머지 절반의 정신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담아내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앞 산 앞에 서 있던 작은 감나무 한 그루가 점 점 점 커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 하고서 눈을 비비고 다시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제 몸집이 앞산만큼 커진 감나무는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땅속에 박혀 있는 뿌리를 나뭇가지 한쪽을 마치 손처럼 쓰면서 뽑아 올리고 있었다. 절반 정도 뽑힌 뿌리는 마치 다리라도 된 것처럼 땅을 지지대로 삼고 땅속에 박혀 있는 나머지 뿌리들마저 뽑아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진흙탕에 두 다리가 빠진 사람이 손을 먼저 써서 한쪽 발을 빼내고 나머지 한쪽 발은 이미 뺀 발의 힘을 이용하는 것과 같이 흡사해 보였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감나무의 움직임은 분명했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한가로이 평상에 앉아 있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땅속에 박혀 있던 뿌리를 모두 빼낸 감나무는 어느 순간 사람의 형체처럼 뿌리가 튼튼한 두 다리로 변하면서 땅위에 우뚝 섰는데 그래서 그런지 앞산을 전부다 가리고도 남을만한 높이가 되어 버렸다.      

   ‘아, 이것이 정령 꿈이란 말이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모습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꼼짝없이 얼음처럼 굳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감나무는 이제 막 돋아난 이파리로 뒤 덮여 있는 둥근 모양의 잔가지를 마치 고개라도 되는 듯 이쪽저쪽을 돌아보더니 곧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평상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제 마음의 결심이라도 섰다는 듯 거인처럼 커다랗게 변해 버린 감나무는 내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순간 지금 뒷마당에 있는 작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놀라운 광경을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는데 또 다른 쪽의 머리는 감나무가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열 걸음 이상은 걸어야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던 내 계산은 빗나가고 말았다. 거인 감나무는 단 세 걸음 만에 집 앞 논까지 와 있었고 허리를 구부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감나무는 곧 가지를 팔처럼 뻗어서 나를 들어올렸다. 나는 정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아령을 든 것처럼 나를 높이 들어 올렸기 이제까지 열 살이 넘도록 이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이 살아온 내가 여태 단 한 번도 못 보았던 우리 동네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실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이 경탄의 순간도 잠시, 거인 감나무는 나를 든 채로 또 다시 세 걸음 만에 원래 자기가 서 있었던 자리로 가서는 나를 그 곳에다 심어 놓고서 원래 내가 앉아 있었던 우리 집 마당의 평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와는 정 반대로 거인 감나무의 모습이 점 점 점 작아지는 것이었다. 아니 눈 깜짝할 사이에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감나무는 이제까지 내가 앉아 있던 그 평상의 왼쪽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아서는 그 자리에서는 엄지손가락으로도 가려질만한 크기 정도로 보여 질 나를 바라보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까지 짓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땅속에 박힌 두 다리를 빼내려고 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늦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단 몇 초 만에 내 모습은 예전의 그 작은 감나무의 모습과 아주 똑같이 변해버리고 만 뒤였으므로.      

   ‘내가 도대체 저 감나무한테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만 없었던 유난히 달콤한 감이 열리는 저 키 작은 장동 감나무를 좋아했었다. 물론 가끔씩 지나갈 일이 있을 때는 손이 닿는 곳에 매달린 약간 덜 익어 떫은맛이 나는 홍시 감을 주인 몰래 따먹은 적은 있었지만 여린 나뭇가지 한 개도 억지로 꺾은 적은 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생각해 보자. 분명히 저 감나무가 내게 이렇게 할 만한 큰 잘못을 비록 내 기억에는 없을지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 한 개라도 있을 것이다. 혹시 내가 다섯 살 때 할머니를 따라서 봄나물을 캐러 왔을 때 오줌이 마려운 것을 참지 못하고 저 감나무 뒤에 숨어서 오줌을 싼 것이 내가 잘못한 일인가.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이른 봄철 연 노랑 감꽃이 떨어질 때마다 허락도 없이 꽃송이를 주워 만든 목걸이를 걸고 다녔던 것이 눈에 거슬렸을까. 아니 분명히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 말고도 저 작은 감나무를 괴롭히는 동네 꼬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심지어 낮은 키 때문에 나무 위에 올라타기도 했던 사내 녀석들이 얼마나 많았었던가. 도대체 저 감나무가 갑자기 나를 감나무로 변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저 자신은 내 행세를 하고 있을 만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던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무의 저런 행동을 이해할 만한 이유를 알아 낼 수 없었다. 내 앞으로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 해가 점점 앞산을 넘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림자의 생김새만 보더라도 이제 나는 영락없는 나무신세였다. 정말로 내가 나무로 변한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해가 앞산을 다 넘어간 것인지 이제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림자조차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지겠지. ‘해가 지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걸 보면 엄마가 나를 찾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기대에 불과했다. 이미 나와 똑같이 변해버린 감나무가 나인 것처럼 버젓이 우리 집에 있지 않았던가. 이제 나는 평생을 이 작은 감나무 신세로 살아가야 한단 말이던가. 나는 갑자기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이 흘러내릴 눈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이제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는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해는 져 버리고 없었지만 아직 푸른빛이 감도는 저녁 시간이었고 아직 어두워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우는 것도 포기한 채로 우두커니 외로이 서서 달님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감을 눈이 네게는 없었다.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흘러나올 눈이 없었고 눈을 감은 채로 있고 싶었지만 감고 있을 눈이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눈을 보면서 이야기 나눈 것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이.      

   그런데 갑자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나로 변해버린 감나무가 아까처럼 점 점 점 커지더니 이번에도 세 걸음 만에 내 앞으로 와 서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로 변한 감나무는 감나무로 변해버린 나를 땅에서 뽑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다시 세 걸음 만에 우리 집 마당으로 데려가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마치 나인 것처럼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나를 앉혀 놓고 지금까지 내가 서 있던 앞산 앞으로 가서 다시 작은 감나무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생생하여 꿈을 꾼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아주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가 앞산 아래 작은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들어 올리고선 해가 막 넘어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 바로 저것이었구나. 여태껏 열 살이 되도록 나는 얼마나 많은 석양이 지는 풍경을 보았던가. 우리 집은 정남향으로 되어 있고 낮은 담벼락에 기대서 고개만 쑥 내밀고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볼 수 있었던 석양은 그 어떤 경치보다도 아름답지 않았던가. 더욱이 지금은 계절의 여왕인 5월의 정점에 와 있기까지 하다. 나무는 태어나서 나 보다 몇 배는 오랫동안 삶을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언제나 등 뒤에만 있었던 석양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나무에게 해코지를 해서 내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몸을 잠시 빌려서라도 넘어가는 해와 석양을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언제나 등 뒤에 서 있었던 앞산 때문에 산 속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넝쿨에 치어 제가 클 수 있을 만큼 자라지 못했던 그래서 보통의 감나무만큼 다 크지 못해서 언제나 동네 어른들이 ’무녀리 감나무‘라고 불렀던 그 작은 감나무는 단지 내게 그 사실이 부럽게 느껴졌던 것 뿐 이었다.’       

   어둠이 가장 먼저 깔리기 시작하여 언제나 제일 어두운 산 바로 아래에 서 있는 작은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왠지 눈도 코도 입도 더욱이 얼굴도 없는 감나무가 나를 보면서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반듯하게 눕지도 못하고 새우등을 하고서는 잠바를 입은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이런 상태로 얼마나 잠을 잔 것인지를 보고 위해 문 바로 위에 걸린 동그랗게 생긴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 바늘의 초침이 숫자 6을 막 지나치고 있었고 얼핏 본 시간은 여덟시 삼십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따뜻한 방에서 누워서 두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잔 탓인지 얼어붙었던 몸은 부드럽고 녹아 있었고 이제는 두통도 사라져서 머리도 맑은 상태였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대로 누워 잠을 자면서 조금은 황당한 내용의 꿈을 꾼 것이란 말인가.’     

   분명하다. 나는 꿈을 꾸었다. 어릴 때는 언제나 아버지가 직접 짜신 널따란 평상에 그런 식으로 앉아서는 엄마가 돌아오실 시간이 되면 그렇게 석양을 구경하고는 했었다. 꿈의 내용이 이상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으므로 나는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회상한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 맞다! 간밤에 일가족 살인사건이 터졌고 여중생은 두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더 이상 꿈에 대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나는 그 내막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무척 궁금하였으므로 얼굴에 물만 묻히다시피 하고 서둘러 사무실로 내려갔다.       

   사무실까지 도착하지 못했는데도 경찰서는 밤사이에 일어난 일이 정말로 큰일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형사들은 형사들대로 분주하게 복도를 걸어 다니고  있었고 내가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계장님 혼자서만 사무실에 앉아 계셨다.      


   “왜 더 쉬지 않고 내려왔어. 밤사이 얼굴이 반쪽이 됐네.”

   “근무시간 다 됐는데 내려와야죠. 충분히 쉬었어요. 그런데 계장님은 한 숨도 못 주무신 거세요?”

   “남자들은 하룻밤 정도는 새도 상관없어, 기본 체력이 있는데. 과장님은 지금 아침회의 들어가셨어. 그래도 안색이 창백한데 괜찮겠어?”

   “계장님 아침식사도 못하셨죠?”

   “우리 경찰서 사람들 전부다 아침 못 먹었을 거야.”

   “회의 들어가신지 오래됐으니까 곧 끝날 거야. 과장님 내려오시면 셋이서 컵라면으로 요기라도 하자고.”     

   갑자기 복도에서 직원들이 현관으로 몰려가며 말을 하는 소리로 웅성거리는 것으로 들렸고 계장님과 나는 그 순간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 ‘우리도 나가 보자’라고 말할 것도 없이 현관으로 나갔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형사기동대 차량이 막 정문을 통과해 들어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형사들이 일제히 조수석과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옆으로 열리는 출입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서 양쪽에 각각 형사들이 젊은 남자의 팔짱을 끼고 차에서 내리고 있었고 그 남자는 수갑을 차고 있는 것인지 수건으로 둘둘 말아 올린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비교적 얌전하게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그런데 저 남자, 간밤에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남자가 틀림없다. 저것 봐라. 무릎아래부터 솔기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청반바지를 입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저 형체의 실루엣! 단 한번, 단 1초도 안된 시간만을 본 것이지만 자전거를 타고서 타원형의 도로를 빠져나가면서도 끝까지 나를 응시하던 그 남자가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저 남자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해서 ‘어젯밤에 나를 그냥 보내 준 여자가 저 여자라고’말 할 것 같아서 나는 그만 계장님 뒤로 몸을 감추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체포되어 이송되어 온 범인 앞에서 내가 몸을 숨기다니 이 얼마나 비겁한 행동이란 말인가. 나는 일가족 세 명을 죽인 범인을 맞닥뜨리고도 그냥 못 본체 보내주고 말았다. 내가 대한민국 경찰관이라면 비록 가진 무기가 전혀 없었을 지라도 차에서 내려서 뜀박질을 해서라도 그 뒤를 쫒아가면서 손 무전기로 다른 누군가에게 분명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고 그 범인을 그 자리에서 체포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나는 간밤에 어떻게 했단 말이던가.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경찰관으로서의 내 행동에 대한 후회와 회의감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오면서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범인에게 온통 몰려 있었던 시선은 일순간 정신을 잃어버린 나에게로 집중되었고 그 중의 누군가가 나를 들쳐 엎고서 어디론가 급하게 뛰고 있다는 것만 희미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경찰서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개인 병원 내과 입원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눈에 익숙한 링거 거치대에 두꺼운 비닐 포장 안에 들어있는 투명 액체가 주사기 모양의 튜브 안에서 한 방울씩 똑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그 밑으로 연결되어 있는 얇은 관을 타고 흘러내려서 왼손 등의 팔뚝에 꽂혀 있는 구멍이 크게 난 주사기를 통과하여 온 몸 전체 정맥혈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경찰서와 맞붙어 있는 제일 가까운 이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사가 나의 맥박과 심전도를 측정하면서 응급처치를 한 뒤 큰 병원으로 옮겨가지 않아도 될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영양제를 처방한 것이리라. 튜브에는 ‘5% 포도당 주사액’이라고 써져 있었다. 주사약이 이미 3분의 1정도가 줄어든 상태였고 수액이 5분의 1정도까지 남아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간호사를 불러 바늘을 빼 달라고 말했다. 이미 시간이 정오가 가까워오고 있기도 했지만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의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원래 환자들은 링거액 주사를 끝까지 다 맞지 않는다. 바닥까지 맞다보면 정맥혈관으로 공기가 따라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몇 번을 불러도 간호사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이제 아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그러자 혈액이 역류하여 수액 관을 따라 빨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수액과 섞인 피는 투명한 빛이 감도는 연한 선홍색이었다. 곧 바로 간호사가 왔기 때문에 주사바늘을 빼 낼 수 있었다. 바늘이 빠져나갈 때의 그 뻐근한 통증은 언제나 나를 기분 나쁘게 했었다. 금속성의 바늘이 뚫린 혈관 벽과 내 살 속을 미끄러지듯 빠질 때의 느낌, 꼭 면도칼에 손가락을 베일 때의 느낌과 흡사했고 어느 땐 소름이 끼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바늘이 빠진 자리를 보아하니 혈관을 찾아내느라 주사바늘을 여러 번 찌른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피를 뽑을 때마다 ‘혈관이 약한 편이고 툭하면 근육 속으로 숨어버리고 마니 찾기가 힘들다. 크게 아프면 알 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내 팔뚝에 주사바늘을 찔러서 단 한 번 만에 혈관을 찾아낸 간호사들한테는 ‘혈관을 아주 잘 찾는다.’며 칭찬을 해 주었던 것이었다.       

   병원 문을 막 나오니 쏟아지는 햇살이 눈을 찌푸리게 하면서 잠깐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사건의 내막이 너무나 궁금하였기에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갔는데 역시나 과장님과 계장님은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나를 보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보다 밤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여중생 일이 너무 궁금하다고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 했고 마침 두 분도 그 일에 대해 말씀 중이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분의 대화 속에 끼어들 수가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한 사람이 세 명을 죽일 수가 있었대요.” 

   “이 놈이 그러니까 작정하고 그 집에서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막 방에서 나오는 할머니를 찌르고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몰래 옆으로 가서 몇 번이나 찔렀다고 하네. 아들 사체는 칼로 찔린 자국이 몇 개나 되는지 셀 수도 없었대. 도둑고양이 같이 뒤 따라가서 찔렀으니 아무리 장정이라고 해도 별 수 있었겠어. 꼼짝없이 당했지 뭐. 그러니까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간 거야. 집 옆에 비닐하우스에서 뒷정리를 하고 막 대문을 들어오는 며느리가 할머니를 먼저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른 거지. 그러다 그 놈이랑 눈이 마주친 거야. 대문 밖으로 도망 나가는 것을 등 뒤에서 붙잡아서 찔렀는지 며느리는 대문 옆에 쓰러져 있었다고 하니까. 그 놈이 이웃집으로 살면서 부모들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였을 텐데 왜 그런 흉측한 짓을 저질렀는지 몰라. 내가 경찰 생활 30년이 다 되도록 했지만 한 놈이 한 집 식구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찔러 죽인 것은 처음 봤네.”     

   과장님은 말씀하는 내내 양 미간을 찌푸리고 계셨는데 이렇게 심각하기는 계장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놈이 정신지체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웃 간으로 살면서 그 집 사람들한테 ‘이 모자란 놈아, 이 병신 같은 놈아, 이 바보야!’ 라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컸는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정말로 이 모자란 놈이 심사도 뒤틀리고 또 그러니까 부모한테도 어릴 때부터 매도 많이 맞고 살았는가 봐요. 그 놈 전과조회를 해 보니까 ‘존속살해미수’로 감방에서 살다가 나온 지 이제 일 년도 안 됐대요. 욕한다고 제 아버지를 삼지창으로 찌르려고 했다니까 말 다했지요 뭐. 그래서 부모도 한 집에 살면서도 각 각 별채에서 지내면서 밥은 어떻게 먹는지 집을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신경도 안 쓰면서 그렇게 남처럼 지냈는가 봐요.”

   “그 여중생이 살아 있는 게 그나마 천만 다행이구만.”

   “말을 들어보니 걔한테는 잘 대해 줬다고 하네요. 그거야 다 그것도 그 놈이 한 말이지만 몸 성하게 살아서 부모한테 돌아간 것만 해도 어디에요. 정말 다행이죠. 어릴 때부터 옆 집 사람들이 자기한테 병신 같은 놈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자라서 이 담엔 꼭 복수할 거라고 여자애한테 말했다는데 집에도 그 앞까지 직접 데려다 줬다고 했어요. 음, ‘내가 이번에 들어가게 되면 오래 못 나올 것이다. 들어가기 전에 꼭 해둘 일이 있다. 그러니 너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라. 일을 무사히 끝내고 오면 너를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고 말했다고요.”

   “지금은 빈집인데 제 외할머니 집에서 숨어 있는 것을 아침에 형사들이 잡은 거라고 하드만. 그냥 체포할 때도 반항도 안하고 순순히 제 발로 걸어서 나왔다고 하대. 만일에 멀리 도망이라도 가서 놓쳤으면 어떡할 뻔했어. 그런데 여중생은 또 어떻게 제 집으로 데려 간 거래?”

   “그게 그 놈이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마침 그날이죠. 한 여자애가 어두운 시간에 혼자서 서 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고 해서 그냥 제 자전거에 태우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장롱 안에다 가둬놨다고 하더라고요. 밥도 삼시세끼 꼬박 챙겨다 줬다고 하면서 그 여자애 말이 소리만 안 지르면 살려준다고 절대로 소리만 지르지 말라고 하면서 항상 식칼을 보여주면서 말했대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두 달씩이나. 그 놈이 외출할 때는 입에 테이프 붙이고 손 발 묶어서 다시 장롱 안에도 가둬놨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풀어주고 이렇게 두 달씩이나 데리고 있었는가 봐요. 여자애 말이 문 밖에 경찰관들이 자기를 찾는 소리 – 우리들은 그 집 인근까지 수색을 안 했던 곳이 없었으므로 – 까지 들었지만 살려달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대요. 그 어린애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 만해도 안타깝네요.”     

   나는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밤사이에 일어났던 정말로 나를 황당하게 하거나 아니면 ‘이게 무슨 일이래’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에 가닥이 잡혀지면서 두 달 전 여중생 실종사건의 일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일이 마치 영화 속의 시나리오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를 가장 기가 막히게 만들었던 것은 아무리 이곳이 농사일과 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외딴 시골이고 어촌마을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는 분명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자전거 한 대로 갓난아기도 아닌 큰 사람을 그렇게 쉽게 납치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말을 듣고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쉽게 믿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범인은 공교롭게도 나와 나이가 동갑이었다. 나는 이 단순한 이 사실 하나만으로 나와 그 범인이 연관되어 있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두 가지 대형 사건이 한 명의 범인이 체포됨으로써 마무리되고 있었지만 나의 불안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김없이 한 달에 세 번씩 돌아오는 당직 근무를 서야 했고 야간 당직 때는 순찰 시계를 들고서 경찰서 건물 내외의 총 여섯 군데를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돌면서 열쇠 도장을 찍어야 했는데 그 중 한 지점이 바로 유치장이었다. 지금 유치장에는 그 범인이 잡혀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유치장 안 쪽 깊숙한 곳에 걸린 시계 열쇠를 사용하여 순찰 시계에 확인 도장을 찍어야만 했기 때문에 범인이 갇혀 있는 쇠창살을 사이로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거리를 지나쳐야만 했고 몇 명 되지 않았던 젊은 여자 경찰이 한 밤중에 유치장을 드나들면서 열쇠도장을 찍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범인한테는 흥미로운 일은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내 경우에는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 범인이 나를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최대한 숨기려고 나는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 유치장 당번 근무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범인이 갇혀 있는 방 앞을 지나쳐 열쇠 도장을 이용하여 순찰 시계에 보란 듯이 도장을 찍고서 범인에게 등을 보이면서 유치장을 빠져 나왔다. 나는 범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일부러 시선을 그쪽으로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면서 걸었고 등을 돌리고 나오는데 어쩐지 뒤통수가 따가운 것이 분명히 범인은 나를 노려보고 있거나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정말로 모자란 놈이라서 그렇게 논리적으로 깊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나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말로 저능아였던 범인은 도주하던 그날 밤에 자기와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저 나 혼자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내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번째 순찰, 세 번째 순찰, 이렇게 유치장을 드나들면서 범인에 대해서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문득‘어릴 때부터 저렇게 나쁜 사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도 저 범인처럼 약간 지능이 모자란 사람이 살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동네에서 인사성이 가장 바른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을 정도로 매우 친절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그 사람을 앞에다 두고 바보라고 놀리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우리 가족들만큼은 누구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불쌍하고 딱하다고 엄마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나에게는 지능이 부족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마음씨가 착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것을 보면 한 걸음에 달려와서 자기가 들어 주겠다고 했으며 엄마는 물론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사소한 도움이라도 받게 되거나 김치라도 담그는 날이면 꼭 그 집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곤 하셨고 오히려 보통의 동네 사람들을 대할 때 보다 더 다정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었던 것이다. 만일에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바보라고 놀림을 받지 않았었다면 지금 유치장에 갇혀 있는 저 범인도 저렇게 악마처럼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서 ‘그의 삶이 어땠을까, 단 한번이라도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아 마땅한 정당한 대우를 받아보기나 했을까’하는 일말의 연민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범인의 인생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새벽이 밝아오면서 마지막 순찰을 돌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유치장으로 들어가 범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었다. 그냥 세 사람을 죽인 인간도 아닌 짐승, 여중생을 두 달씩이나 감금했던 정신병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바라보니 아주 잠깐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내가 유치장에 들어갈 때마다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잠 한숨 자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을 모자 문득 긴급배치 근무가 끝나고 새벽녘 숙직실에서 잠깐 졸던 사이에 꿈속에서 보았던 작은 감나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누구라도 단 한번쯤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아무생각도 없이 내 뱉어 버린 말 한마디로 상대방이 받은 상처가 평생 동안 그를 괴롭힐 지도 모를 일이므로.     

   나는 그 일이 있은 뒤로는 밤길을 혼자서 걷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래서 유난히 걸음을 빨리 걷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뜀박질을 하거나 평소와 다르게 퇴근을 하자마자 가능한 한 빨리 자취집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사건에 대한 조사는 마무리 되었고 범인은 사건의 모든 서류 일체와 함께 검찰로 송치가 되면 이제 경찰관의 손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심증이 미약하다고 하더라도 한꺼번에 세 사람을 죽였으니 설령 재판과정에서 감경을 받게 되더라도 장시간 감방에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아니, 검사의 논고가 매우 훌륭하고 변호인 – 저런 경우에는 십중팔구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었으므로 – 측이 적극적으로 피고인을 변론해 주지 않는다면 검사의 구형대로 재판부가‘무기징역’을 받아들여 그렇게 확정판결이 내려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그리고 ‘미성년자납치감금’이라는 중한 죄가 경합되어 있지 않았던가. 분명히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살아있는 한 그 범인과 내가 두 번 다시 마주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리기도 하면서 12월의 끝자락, 아니 2006년의 끝자락에서 영원히 그 범인과 이별을 하면서 새해를 기다렸다. 내년에는 내 스무 살의 마지막 해가 된다.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누구보다 보람 있는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낼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다짐 아닌 다짐으로 위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이제까지 나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날로 여겨왔던 날, 그날 밤 나는 내 자취방에서 커다란 머그잔에다 핫 초코 한잔을 타 놓고 노엘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엄마의 병환에 대해서, 아버지의 삶의 애환에 대해서, 그리고 전혀 알 수 없는 내 미래에 대해서 차분히 떠올리며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의 진동이 울리면서 이 평온한 정적도 깨지고 말았다.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가 이 특별한 날 대부분 가족들과 연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걸까. 잘못 걸려온 전화이다. 안 받아야겠다.’     

   나는 그렇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령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급한 용무가 있었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전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더 이상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기에 처음대로 잘못 걸려온 것이라는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이십대 후반의 여자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시간 자취방에 혼자서 핫 초코 한 잔을 앞에다 두고 앉아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혀를 차며 불쌍하다 청승맞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는 것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지금 그 순간에는 그 어떤 신경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분명히 일기예보대로라면 지금 쯤 눈이 내리고 있어야 한다. 자취방 침대 위로 난 큰 창문을 열어보았다. 이중으로 된 유리문 중 안쪽에 있는 유리창은 반투명의 유리를 써서 창을 냈기 때문에 열어보지 않고서는 바깥에 눈이 오는 것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창 쪽에 가까이 가서 서자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창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찬 공기가 볼에 닿는 것이 제법 상쾌하게 느껴졌다. 창문을 살짝 밀었는데 정말로 집 앞에 서 있는 가로등 앞으로 눈이 오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송이가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송이가 굵고 빠르게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물을 많이 머금고 있던 눈송이로 그야말로 함박눈 그 자체였다. 그 무게감이 눈에 다 보일 정도였으므로. 이대로 집 안에 있을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보자. 나가서 얼마나 많은 눈이 오고 있는지 보자. ‘정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나는 잠바를 입고 목도리로 머리까지 둘둘 말아서 감싼 채로 두 눈만을 보이도록 무장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데 스륵하고 어떤 물체가 문을 미는 쪽으로 같이 밀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 이게 뭐지? 케이크 상자인데, 이걸 내 방 앞에다 누가 놓고 간 거지? 설마 잘못 두고 간 건가?’상자의 손잡이 사이에 작은 메모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중앙 현관으로 나가서 혹시 누군가가 있을지 몰라 내다보았지만 눈이 소복하게 쌓인 길 위에는 누군가 지나간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 하나 없었다. 다시 쪽지를 들고 마음속으로는 이것을 열어 봐야 하는 것인지를 망설이고 있었지만 내 손은 이미 봉투를 열고 작은 카드를 들고 읽고 있었다.       


   ‘김 순경님! 메리 크리스마스!’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노크도 한번 해볼 생각도 안하고 어느 누가 이 케이크를 집 앞에다 놓고 간 것일까. 나는 이제 막 경찰관이 되었고 시보기간도 끝나지 않은 신임 순경이며 나에게 이런 선물을 줄 만큼 친분이 두터운 직원도 아직 없었다. 그리고 나를 김 순경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일 것이고 아마도 거의 매일 알게 모르게 한 번 이상은 마주치는 사람일 테지만 그게 누구일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이 내리는 것을 구경하려고 나왔다가 케이크의 장본인이 누굴까에 정신을 팔려 눈 구경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일단은 내 앞으로 배달된 것이 분명해 보였으므로 작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 울렸던 전화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핸드폰 폴더를 열어 보니 새로 온 문자도 없었고 아까 안 받은 부재중 전화번호만 남아 있었는데 번호를 계속 보고 있으니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일련의 숫자가 번호 안에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던가. 경찰관만이 가진 특유의 촉이 깨어난 것 같았다. 가운데 자리가 ‘4774’로 되어 있는 번호는 경찰관이 업무용으로 쓰는 공용 폰의 공통 번호이다. 내가 파출소에 근무할 때 사용하던 번호는 분명히 아니지만 가운데 번호를 봐서는 이 전화번호는 경찰서 누군가가 사용하는 업무용 핸드폰이 분명했다. 나는 혹시 케이크 상자 안에 또 다른 쪽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자를 열어 보았으나 그 안에는 달랑 동그란 모양의 작은 초코 케이트만이 들어 있었다. 혹시 상자 안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상자를 뒤 짚어서 흔들어도 봤지만 초 한 개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케이크를 사면서 초 한 개도 챙겨오지 않은 그 사람은 분명히 성격 자체가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무척 바쁜 것이다. 나는 나눔 접시를 가져올 것도 없이 포크 한 개만을 이용하여 모서리를 잘라낸 초코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콜릿은 무척 부드러웠고 입속에서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버렸다. 그저 그 순간만큼은 이 케이크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내가 이 케이크를 먹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에 다가올 일은 그 때가서 생각하자.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자. 아! 그리고 이 연휴가 끝나고 나서 출근을 하면 그 때부터 케이크 사건의 수사를 시작해서 반드시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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