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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정-아들셋 ]
제36편. 학부모상담

순서에 상관없이 다 똑같은 내 자식

by 김현이

장면 1. 상담하러 가는 길


“엄마! 오늘 학교에서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그래? 엄마도 학교에서 만나니까 정우가 더 잘 생겨 보이고 좋더라.”


이때, 선우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서운한 투로 말하길,


“나도 엄마 학교에서 만나길 기다렸는데 왜 우리 교실엔 안 왔었어?

“응, 갔었지 왜 선우야. 그런데 선우가 열심히 만들기 하고 있어서 그냥 교실 밖에서 잠깐 보다가 선생님 만나러 갔지. 그리고 시간도 좀 부족했어.”

“우리 선생님은 만났어?”

“당연하지, 선생님이 우리 선우 칭찬 많이 하시던 걸?”


어제 오후, 사무실에는 반일연가를 내 놓고 학부모 상담을 하러 갔다. 전년들과는 다르게 학교에서도 이번에는 2주간이라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계획을 잡은 것인지 나 또한 거의 가장 늦은 날짜에 시간을 맞춰 아이들 편으로 상담 신청서를 보냈었다. 솔직히 지난주에는 회사에서 행사와 교육이 잡혀 있어서 나부터도 적극적으로 날짜를 잡지 않았었고 무엇보다 약 2주간 동안 아이들의 행동을 평소보다 유심히 지켜보고 나서 선생님께 더 많은 조언 받기를 원했던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약속 시간 전까지 반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정우와 선우가 자주 드나드는 학교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신관 2층에 있는 도서관에 혹시나 아이들이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키가 이미 훌쩍 큰 5,6학년쯤으로 보이는 학생들 몇 명만이 서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문틈으로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주 잠깐 동안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려졌고 새삼스럽게 어른들께서 흔히 “학생 때가 가장 좋을 때다.” 고 말씀하시던 게 떠올라 나도 몰래 마음이 흐뭇해졌다. 복도에 난 커다란 창을 통해 삼삼오오 무리지어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한 눈에 정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집에서는 가장 큰 아이, 10살, 정말 많이 컸다고 생각했던 정우를 2층 복도 창문으로 보이는 정우는 또래들 틈에 섞여 있는데도 유난히 작은 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당장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양 손을 부채꼴 모양으로 하고선 정우 이름을 크게 불렀다. “황 정 우!” 정우는 두리번거리지도 않고도 단번에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엄마의 손짓에 흙먼지를 뒤로 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내게로 달려왔다. “엄마!” 정우의 통통한 배부터 내 몸에 가장 먼저 닿았고 나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엄마는 선생님들 뵙고 가야하니 평소 하던 대로 하기로 약속하고 정우와의 짧은 만남을 저녁 때 집에서의 재회로 약속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장면 2. 선우? 선우~ 선우!


선우네 선생님은 2년 전 정우네 선생님이셨다. 그러니 정우가 1학년 때 선생님이 지금 선우의 담임 선생님이시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둘의 특성과 상황들을 조금씩 비교하면서 이어졌고 다행히 선생님께서도 정우와 선우에 대해서 나처럼 비슷하게 느끼고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늘 상담을 오면서도 선우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안 하고 왔어요. 선생님께서는 정우와 1년을 보내셨던 분이시기도 했고 무엇보다 학교 입학 전후의 선우의 생활 태도가 특별한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더 좋은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보여요. 다만, 아직 어린아이인데 엄마가 일을 하고 있으니 시간적으로 더 챙겨주지 못하고 부족한 면이 있을까 싶어서 미안하고 걱정이 되요......”


선생님께서는 물론 아이가 특별히 잘못하지 않는다면 학부모 상담을 하러 온 부모에게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선생님과 30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눴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선생님은 인생 선배로서, 그리고 같은 워킹 맘의 입장에서서 내개 찬사와도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어머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이 셋을, 그것도 남자 아이 셋, 더군다나 집안에 TV도 놓지 않으시고 그렇게 키운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하신 거예요. 그리고 정우와 선우를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정말로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을 참 반듯하게 잘 키우셨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우는 잘 하고 있으니 걱정 하지 마시고 특히, 아이들에게 더 많이 잘 해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 하지 않으셔도 되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시고 계세요.”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아이들에게 소홀하고 지나치게 엄하게 대했던 일들이 생각났고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하고는 정우네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아, 그리고 1학년 아이를 둔 엄마는 마치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으쓱해하는 아이와 같아짐을 정우가 1학년 때 경험했었던 기분을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장면 3. 맏이 정우, 하지만 다 똑같은 자식


이번이 정우네 선생님과의 세 번째 만남이다. 선우가 입학하는 날 정우네 선생님이 누구신지 정말로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정우네 교실 밖 창틀에 난 문틈으로 일방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첫 만남이었고, 두 번째는 한 달 전 학사설명회에 참석하셨던 몇 분의 같은 반 어머님들과 단체로 뵌 것이었고 바로 오늘 이렇게 독대를 하는 것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학부모 상담 안내서대로 라면 보통 상담시간은 20분 내외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내 아이에 대한 대화를 선생님과 나누면서 20분 만에 끝내란 말이지? 이번 상담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눈치가 없게도 선생님과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히려 선생님의 업무시간을 많이 뺏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대화의 맺음을 시작했다.


내가 정우를 보고 있는 대로 선생님께서도 정우를 그렇게 그런 아이로 알고 계셨다. 아이의 집에서와 학교에서의 생활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안심이 되면서도 큰 아들 정우한테 안쓰러운 마음이 커졌다. 정우도 선우와 단우와 마찬가지로 내 똑같은 아들인데 단지 조금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많은 부담들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큰 아이에 대하여 남다른 기대와 의지를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면이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보다는 오히려 억누를 가능성이 높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 장애를 안겨줄 수도 있다. 정우도 그렇다.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고를 때도 망설일 때가 있다. 일하는 엄마는 당연히 전업 주부인 엄마들보다 시간적으로는 아이에게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의 비중이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반드시 중요한 조건은 아님을 알고 있다. 내가 정우한테 가장 미안한 것은 내 마음속에 각인 된 ‘정우는 큰 아들’이란 것이다. 그 생각이 정우를 망칠수도 있다는 걱정이 불현 듯 들었고 선생님과의 대화에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둔 채로 교실 밖을 나왔다.


3학년 2반이 된 정우, 아침마다 정우와 선우를 똑같이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도 나는 언제나 교실의 위치를 알리는 창문에 붙은 표시 - ‘3-2’ - 쪽만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1-1’을 알리는 표지는 의식적으로도 보려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저 내 마음속에는 3학년 2반 교실로 들어가는 정우의 모습만이 그려졌던 것이다. 이것은 선우와 정우를 차별하는 마음에서 오는 행동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되어 쌓인 정우에 대한 미안함에서 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다.


정문 앞 언덕배기를 조심스럽게 내려오면서 내 맘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정우에 대한 커다란 이미지, ‘큰 아들’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져야지 생각했다.


장면 4. 잠이 들면서


불을 끄고, 아이들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뀌면 물리적인 분량이 다 안 채워졌어도 하루는 거의 다 끝났다는 뜻이다. 나도 거의 매일 매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그쯤 되면 육체적으로 많은 고단함을 느낀다. 긴장이 느슨해지는 탓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피로감도 갑자기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래서 사실은 어느 때는 아이들보다 먼저 잠드는 날도 있었다. 서른 한 살에 정우를 낳으면서 10여 년 동안 거의 매일 매일을 이렇게 살았다. 누구는 좋은 충고를 해준다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런 분들의 말씀을 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그렇게 흘려듣고 만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에게 지나친 기대와 관심으로 부담을 가득 주는 열성적인 엄마라는 뜻은 아니다. 기다린다고 결코 빨리 오는 것이 아닌 것이 시간의 흐름이듯 아이를 키운다는 것 또한 조바심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책으로도 누군가의 조언으로도 아닌 지난 시간 동안 나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배우게 된 이치다.


나는 아이들의 숨 냄새로 가득 메워진 불 꺼진 방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 일부러 생각해내려고 한 것도 아니며 특별히 남다른 의지로 앞으로의 다짐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나는 나쁜 엄마다’고 반성할 것도 없이 그냥 지금의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나 또한 그냥 힘을 써서 말고 언제 어떻게 잠이 드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저절로 내 아이들처럼 잠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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