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21편. 일기

밤은 낮이 남겨 둔 여분의 시간

by 김현이

정우 일기


국어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즐거웠던 여행이나 경험, 기억에 남는 일이나 우리 가족을 소개하는 등 ‘가족’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갖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친구들은 제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약간씩은 긴장을 하고 있는데 또 한 두 명은 먼저 손을 들고 친구들보다 앞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나는 내 두 동생들과 게임을 하면서 즐겁게 놀았던 이야기로 발표를 했다.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자체를 떨리는 일로 생각하거나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사람처럼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손을 들고 선뜻 발표를 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더욱 그날의 발표 주제에서 만큼은 더 친구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날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유난히 적극적인 우리 반 반장인 여자 친구에게 조용히 다가가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솔직히 평소 반장은 너무 잘난 척을 심하게 하고 자기도 떠드는 데 꼭 다른 친구들한테만 조용히 하라고 시켜서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별로 먼저 말을 걸고 싶지는 않은 친구였다. 나는 부반장이지만 그래도 나부터 조용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조회시간 친구들 줄 맞추기도 언제나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국어시간 반장이 발표하는 내내 단 한 번도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궁금했고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남자답게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너, 아빠 없어?”


“응. 없어.”


“왜?”


“그냥. 아무튼 고마워 대답해 줘서.”


반장은 더 이상 대답도 없이 몸을 훽 돌리는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가벼운 바람을 일으켰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반장의 뒷모습을 나는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또 다시 우리 반 다른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3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엄마가 친하게 지내는 이웃 집 아주머니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고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지 않으셨고 그 뒤로 거의 한 달이나 지난 뒤에야 비밀은 꼭 지켜야 한다면서 마치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처럼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낮은 목소리로 아주 작게 말씀해 주셨다. 그 친구의 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이제는 그 아이 아빠가 안 계신다고. 그 뒤로 엄마는 가끔 그 친구의 행동이나 표정 등을 물어오셨고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로서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를 그때그때 대답해 드렸다. 그런 일이 있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 친구한테 이 한 마디를 물어 보았었다.


“아빠가 하늘에 계셔서 슬프니?”


“괜찮아. 안 슬퍼.”


“어째서?”


“엄마가 있는데 왜 슬퍼.”


나는 엄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아니 엄마는 무엇이 그렇게도 궁금한 것이 많으신지 배가 고파서 밥 먹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시시콜콜 많은 질문을 해 대신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급식으로 나온 우유는 다 마셨는지, 수업시간에는 무엇을 배우고 왔는지, 수업이 다 끝나고 나서 운동장에서 철봉을 했는지, 줄넘기를 했는지, 학교에서 오는 스쿨버스에서는 누구와 나란히 앉아서 왔는지, 학교에서 혹시 동생을 만났는지 등 어느 때는 너무나 시시하기도 하고 대답하는 것이 귀찮게 여겨져 ’잘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면서 엄마의 질문을 끊어 버리기도 했었다. 그러면 엄마는 동생에게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질문을 계속 하셨는데 이상하게도 동생은 엄마가 묻는 말에 밥 먹기를 멈추고서라도 아침부터 일어났던 일을 시간순서대로 자세히도 대답하는 것을 보면서 왠지 나는 또 다시 의미 없는 경쟁심에 불타올라 점심 급식으로는 어떤 반찬이 나왔는데 나는 친구 누구와 빨리 먹기 시합을 해서 몇 분만에 다 먹어치웠다는 둥 새치기 하듯 중간에 끼어들기를 했던 것이다. 동생들이 함께 있을 때 엄마는 항상 그렇게 유치하고 시시한 질문을 해서 대답하기를 귀찮게 만들다가도 동생들이 먼저 잠이 들어버리면 한 번씩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도 하셨다.


“정우야, 반장과 너의 그 친구들 모두가 아빠가 안 계시는데 너는 마음이 어때?”


정말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반장은 불쌍하지 않고 그 친구는 그냥 좀 안됐다고 대답했는데 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말해 줄 수 있는지를 또 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나는 대로 말하고 엄마에게 끝인사를 하고 잠을 자야겠다고 했다.


“반장은 공부를 잘하고 잘난 체를 하니까 안 불쌍하고 그 친구는 공부를 잘 못해서 좀 안됐어요.”


나는 엄마의 또 다른 연결된 곤란한 질문을 피해보려고 끝인사로 ‘안녕히 주무세요.’하고 말했지만 나는 왜 엄마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나이다. 엄마가 항상 우리들에게 ‘아빠가 없는 게 아니라 단지 한 집에 살지 않을 뿐이야.’라고 하셨던 마음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언제나 노력을 하신다. 학생이 아닌데도 공부도 열심히 하신다.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집안도 언제나 말끔하게 청소해 놓으시고 특히 배달 음식은 거의 주시지 않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신다. 가끔 짬뽕이 무척 먹고 싶은 날에는 짬뽕이 먹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마치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하듯 한 번씩 중식을 배달시켜 주시기도 하신다. 그리고 언제나 잘못했을 내가 꾸지람을 좀 피해보려고 약간씩 속여 말을 할 때 엄마는 ‘언제나 너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 엄마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돼.’ 하셨던 말씀이 꼭 진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그런 때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결국 들통이 나서 두 배로 많이 혼날 것 같아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무더운 여름방학이 끝나고 오늘은 개학이다. 이제 2학기다. 방학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엄마는 점심시간에 달려오셔서는 음식을 직접 차려 주시고 가셨다.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맛있다고 말씀드리면서 매 끼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오늘부터는 학교 급식이다. 급식도 맛있다. 왜냐하면 엄마는 생선을 거의 안 해주시만 급식에서는 그래도 종종 생선구이가 급식 반찬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는 생선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2학기가 되었고 어젯밤 잠들기 전 다 같이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동생들이 먼저 잠이 들었을 때 또 우리 둘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낮에 엄마 친구를 만났는데 그 집 아이들이 아빠가 같이 나온 것을 보고 부러웠는지 물어오셨고 나는 ‘조금’이라고 짧은 대답을 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보면 전에 엄마가 했었던 그 말이 생각나곤 했다. ‘엄마가 승진을 하게 되고 엄마가 쓴 책이 유명해져도 그것을 전혀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좋아하고 기뻐해 주실 친구’라고. 그런데 혹시 엄마가 내 대답에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엄마만의 특별한 장점들을 이야기했다. 꾸며낸 말도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했던 말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엄마는 어떤 엄마들 보다 우리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잖아요.’ 라고. 엄마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몇 가지, 마치 선생님과도 같은 짧고 교훈적인 말씀을 해 주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식의 당부와 명령과 같은 지시의 말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담은 당부의 말씀이었다. 2학기에도 건강하고 착하고 바르게 그렇게 학교 생활하면 된다고. 나는 엄마에게 끝인사 - ‘사랑해요, 고마워요, 안녕히 주무세요.’ - 를 말하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방학숙제를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아침에 마저 하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엄마가 저녁때 분명히 ‘아침에 숙제한다고 어쩐다고 가방도 안 챙기고 소란피우면 혼난다.’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났을 때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아빠와 크레파스’ 노래처럼 아기 코끼리를 타고 놀지는 못할 테지만 낮에 엄마와 함께 탔던 자전거 타는 꿈을 꾸게 될까 조금은 바라게 되면서.


학교를 가려고 나왔는데 엄마 자동차가 단우가 켜 놓고 내린 실내등 탓에 방전이 돼 버렸다고 해서 마침 대기하고 있던 태권도 차를 동생 선우와 함께 타고 2학기 첫 등교를 했다. 엄마는 지각 안 하시고 제 시간에 출근하셨을까? 아무튼 아직 점심때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녁때가 기다려진다. 엄마가 벌써 보고 싶기 때문이다.



엄마 일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다. 이 모든 결과가 마치 내 잘못인 듯 이따금씩 밀려오는 죄책감은 나를 더욱 더 침울한 상태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려는 듯 또 다른 일과를 찾아내서 시간이 가도록 내버려두면서 잊어보려고 했지만 야간의 적막이 찾아오면 그렇게 멀리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던 그 암흑의 원안으로 다시 들어와 있는 나를 보았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자 슬픈 현실로 다가오는 날들이 하루, 이틀, 이렇게 늘어갔다.


관속에 눕기 전 그가 써 둔 유언장 종잇조각이 몇 년을 묵혀 둔 가방 작은 안주머니에서 나왔다. 그 낡은 종이에 휘갈겨 써진 글씨들이 나를 오래전 – 이미 십년이 다 된 – 그 때로 데리고 가서는 차가운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버릴까도 해 보았지만 그것을 썼던 본래 주인에게 되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때의 마음을 채우던 회한들과 겹쳐진 그 젊은 나를 환멸로서 재회하고 있는 다소 나이 든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또 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그것이 지난 일요일 오후였다. 그건 마치 거울을 처음 본 아이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거울 뒤에 또 다른 자기가 있다고 착각하여 거울 뒤를 만져보는 행동과도 비슷한 행동이고 착각이었다. 나는 그냥 울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가치가 없는 눈물이었다. 다시금 그 낡은 종잇조각을 찢어내 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고 꺼내 들었으나 또 다시 지난 날 이별의 순간이 언제나 그랬듯 과거의 장면들도 함께 데리고 와서 나를 괴롭혔기에 찢어버리기를 그만 두고 다시 가방 속 작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말았다.


만일 누군가 왜 슬퍼하는 지 이유를 묻는다면 나와 내 아이들의 과거와 미래를 망쳐버린 불쌍한 한 사람에게 원망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며 그 원망이 나에게 또 내 아이들에게 화가 나게 해 버려서 끝내는 쓸데없는 동정심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을 타인들은 내 탓이 아니라고 위로 했지만 그런 말들은 내게 전혀 위로나 힘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막연히 ‘괜찮을 거야.’ 식으로 내 감정을 기만했고 헛된 용기로 내 현실을 자만하게 만들 뿐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반복해서 일기만 썼다.


나의 사명은 지금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일이다. 주변의 어떤 말로도 위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느끼고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오히려 그것은 나의 책임감이라는 엄격하고 중한 의무와 목표의 의지를 나약하게 만들어 버렸고 그것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시험을 두고 공부하는 수험생처럼 그런 최고의 노력을 해야만 하는 그 엄숙한 진지함을 빗겨나가도록 만들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입을 다물게 되었고 주변사람들과 대화를 줄여나가면서 조용한 고독에 나를 더 가두었다. 솔직히 그 누구에게도 내 내면의 슬픔과 괴로움, 외면적인 비참함을 털어놓기 싫었었다. 일부러 떠들고 욕하고 비난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날, 그 뒤에 찾아오는 좌절감은 몇 배로 나를 더 슬픔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가르쳤다. 언제나 조용히 공부하고 자신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만 타인으로부터 받게 될 멸시와 불공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고. 그 방법은 무조건 공부하며 겸손을 지켜가는 것이라고. 공부는 나를 신장시키기도 하지만 끝내는 인내심을 기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다만 인내심을 키우는 일을 결코 내 안의 경쟁상대로 둬서는 안 되면 언제나 배운다는 겸손함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나조차도 지켜내기 버거운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가르치는 것은 지혜로운 엄마의 자세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싸울 각오로 살 사람은 엄마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내 아이들에게는 나의 가르침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이 사실이, 내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아이에게 바라고 요구하고 있는 마음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내게 가장 슬픈 일이었다.


요즘 나는 엄마로서 세 아이를 어떻게 교육하고 키울 것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언제나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 명령자, 지시자, 스승으로서 주도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그 자격과 가치를 존중해 주고 상호 격려를 표시하는 인생 동반자로서의 불가분의 관계, 각자가 상대를 점차 값지게 해 주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밤하늘을 조용히 올려다 본 적이 있는가. 밤 하면 어둠, 암흑, 까만 칠흑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정작 우리 눈에 까맣게 보이는 것은 낮 하늘에서 가장 하얗게 보이는 구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오히려 별이 박힌 하늘이 은근한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위나라 동우가 밤을 두고 ‘낮이 남겨 둔 여분의 시간’이라고 말했던 ‘三餘之設’의 이치가 딱 들어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낮 하늘 하얀 구름이 밤하늘을 더 짙은 어둠으로 만들 듯 인생 전체를 하루라고 두고 보았을 때 나는 지금 밤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내심을 기르는 것에 괜한 승부욕으로 길눈이 어두워지는 바보는 되지 않아야 하건마는.......



2018. 8. 20. 월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