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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편. 가정교육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언제라도 무릎을 꿇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by 김현이

나는 오래 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니 집안의 큰 문제를 해결하려고 집을 줄여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 어느새 8년째다. 한창 번화가이고 잘 살던 동네에서 한적하고 외각의 시골동네로 이사를 오니 처음에는 모든 생활이 어렵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나 또한 거의 평생을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라 시골생활에서 오는 몇 가지 불편함은 쉽게 극복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었다. 또한 자동차로 모든 게 해결되었고 오히려 내가 다니는 회사와의 거리도 가까워졌을 뿐만 아니라 항상 복잡하게 막혔던 출 퇴근의 도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은 다른 기회비용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커다란 만족감으로 다가왔었다. 낯설고 낡은 집, 이웃 간의 서먹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져갔고 오히려 이웃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은 내 아이를 마치 친 손주처럼 귀여워하고 예뻐하시기도 했으며 나는 내 또래의 아이 엄마 몇을 말동무로 사귀게 되면서 세련되고 편리하고 복잡했던 전의 생활은 거의 잊고 지낼 수가 있었다. 오히려 그제야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 갔었다.


우리 집은 12층, 꼭대기 층이면서도 정 중앙에 있었고 서쪽의 베란다 창문을 내다보는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누가 사는지 안 사는지도 모를 40대 후반 정도의 점잖은 중년 아저씨가 직장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고 계셨고 오른쪽으로는 그렇게도 우리 아이들을 제 집 아이들처럼 예뻐하시고 옛 말처럼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고 싶어 하는 선량하고 다정한 부부가 살고 계셨다. 물론 이 이웃과도 처음부터 정겹게 지낸 관계는 아니었다. 나도 직장을 다녀야하는 몸이라 낮에는 계속 집을 비워놓았고 저녁에 되어서야 돌아오면 또 다른 일상에 제정신을 못 차리고 지낸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둘째가 태어나고 휴직을 하게 되면서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과 교류를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서른 초반 젊은 엄마일 때부터 현재 마흔이 된 다소 나이 든 젊은 엄마가 될 때까지 아직도 그 집, 우리 집에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금 그곳에서 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안다. 아이들이 더 자라게 되면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고 나의 직장생활과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지 않게 될 때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 그렇게 1년, 2년, 3년......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를 들어오고 떠나가는 이웃들을 내가 지켜보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오른쪽 집의 다정한 부부 댁과 함께 12층의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이웃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승강기가 있는 바로 앞집으로 갓난아이 하나가 있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온 건 2년 전의 여름이다. 12층 만해도 7세대가 살고 있어서 승강기 앞집은 언제나 일상의 소음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하니 아침이 다른 집보다 부지런한 편이었다. 12층까지 승강기가 올라올 때까지는 거의 언제나 우리 집 두 꼬마와 나는 무슨 이야기라도 나누며 소음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승강기 앞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젊은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남의 집 앞에서는 좀 조용히 하는 게 어떠니?’하면서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자 주인 뒤에 숨어 있던 목소리가 캉캉한 강아지 한 마디가 갑자기 울타리를 뛰어 넘어 집 밖으로 탈출하면서 우리 꼬마들을 위협하기도 했었다. 젊은 엄마의 행동과 말투와 그런 태도에 나는 기분이 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슬렸지만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야 한다고 시키고는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날들이 많았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나는 언제나 승강기 앞집을 지날 때는 아니꼬운 시선을 감출 수 가 없었고 급기야 그 집 앞 현관 앞에 ‘제발 초인종을 누르지 마세요.’ 등 이상한 문구가 적힌 쪽지 나 붙을 때마다 젊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느라 예민해져 있구나 생각했고 가끔씩 개 짖는 소리가 집 밖으로 크게 새어 나올 때는 나조차도 헛웃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냥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이웃으로 그렇게 2년 가까이 얼굴만 가끔 보는 이웃으로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사실 내 기준에서는 사건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민망한 아주 사소한 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했지만 그 젊은 엄마에게는 매우 큰 사건으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일요일 한 낮, 외출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숨 막히는 더위가 한 달이 넘게 이어지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물총 놀이를 한다고 온 집안을 물바다로 만들어 놓는 것을 나는 아예 마음껏 물을 쏘라며 세숫대야에 물을 한 가득 담아 집 앞 복도에 내다 놓고 창문 너머로 물총을 쏘지 말 것을 전제 조건으로 집 앞에 벽에다만 쏘며 놀 것을 약속했었다. 한 참을 그렇게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물총놀이를 하는 가 싶었는데 갑자기 막내 아이에게 앙칼진 목소리로 나무라는 그 젊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 너! 남의 집 앞에서 물을 뿌려 놓으면 어떡하니! 이게 뭐야! 응?”


그렇게 정말로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 아이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귀를 심하게 거슬리게 했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정중하게 사과를 할 마음으로 붙여진 지시대로 초인종은 누르지 않고 현관문을 똑똑똑 하고 두드렸다. 몇 번을 그렇게 했는데도 인기척은 없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집 아이들에게 나눠 줄 간식거리를 챙기고 엄마로서 아이들이 그렇게 남의 집 앞에 물을 뿌리지 못하도록 타이르지 못한 것을 사과드린다고 쓴 쪽지와 함께 그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사실 이제 막 다섯 살밖에 안 된 막내가 남의 집 앞에 물총으로 물을 뿌려봤자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뿌려놨겠는가. 내 눈으로 확인 한 건 현관문 손잡이의 물방울과 집 앞에 둥글납작한 물 자국이 나 있는 정도뿐이었다.


‘아니, 이 정도로 그렇게 남의 집 아이를 그렇게 혼내도 되는 것인가. 솔직히 그 젊은 엄마도 남자애 -아직은 어리지만-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아니던가.’


나는 별로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다음에 혹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다시 한 번 더 사과를 하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특별한 잘못이 없더라도 남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되었는데 큰 아이가 내게 쪽지를 건네는 것이 아니던가.


“이게 뭐야?”


“우리 집 문 앞에 붙어 있었어.”


“승강기 앞집 아줌마가 쓴 것 같은데......”


“그래?”


나는 혹시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우리 막내에게 소리를 지른 것을 사과하는 편지로 짐작하고 마침 불편했던 마음이 사그라지는 기분이 들었고 아이들 저녁상을 차리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 큰 아이의 한 마디가 나를 조금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엄마! 내가 대충 읽어 봤는데 이상해. 이건 누가 누구를 혼내는 건지. 엄마가 훨씬 더 나이가 많지 않아?”


느낌이 이상하여 그 쪽지를 대충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렇게 하다가 나는 가스 불을 끄고 아예 작정하고는 큰 아이에게 이 쪽지 달랑 한 장만 붙어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렇다는 식의 몸짓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 쪽지를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읽지 않고 끝까지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아이들에 대한 훈육과 지도 편달이 부족한 엄마,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지 않아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 몰상식한 엄마, 남의 집 현관문과 초인종에 장난질을 하는 못된 개구쟁이 아들을 키우는 엄마, 그리고 심지어 벽에 낙서까지 하는 못 배운 아이들의 엄마,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시키는 엄마.......’라고 써져 있었다.


화가 났다. 그리고 갑자기 아이들에 다그쳐 물었다. 너희가 낙서하고 초인종 누르고 그랬느냐고. 물론 내 아이들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큰 아이를 믿는다. 복도에서 시끄럽게 놀고 장난을 친 일을 있어도 남의 집에 낙서를 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장난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큰 아이 말은 그 젊은 엄마의 말보다 더 믿음이 갔다. 사내 꼬마 녀석을 셋이나 키우는 집 앞에 자전거 한 대, 번개 카 한 대도 내 놓지 않는 집이 어디 몇 집이나 될까. 그러면서 덧붙인 젊은 엄마의 말은 곧 이사를 가려고 집을 내 놓은 상태인데 누군가 집을 보러 왔을 때 12층 복도에 세발자전거와 번개 카가 나와 있는 것을 그 손님이 보기라도 한다면...... 하고는 정말로 끔찍하다는 표현까지 했었다. 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지만 참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개구쟁이 사내 녀석을 키우는 엄마로서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 했었던 그 젊은 엄마를 만나면 다시 한 번 더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가정교육을 잘 못 시킨 엄마라니......’


눈물까지 나왔다. 그러나 내가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자존심을 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나서 집 밖에 있는 자전거와 번개 카를 모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그러면서 2년 전 그 집 앞에서 출근 날 아침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던 젊은 엄마의 모습과 뛰쳐나와 우리 꼬마들을 위협하던 강아지, 집 앞에 하나 둘 나붙던 조심하라던 경고장들이 하나씩 스쳐지나갔다. 조용히 잠 든 아이들을 한 번씩 쓰다듬어 주는데 그냥 나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슬픔도 아닌 그렇다고 불쾌한 감정도 아닌 조금은 답답하고 복잡함으로 마치 엉킨 실타래를 앞에다 두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싶은 걱정스러운 한숨이었다.


‘그래, 젊은 엄마 입장에서는 내 아이들이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그런 천박하고 잘 못사는 그런 꼬마들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것이 잘 모르는데서 오는 오해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변명의 여지는 없다.’


아이들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더 바르게 처음부터 더 세심하게 주의를 주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늦게 잠이 드는 큰 아이에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정우야! 우리 옆집, 아니면 저 계단 쪽 끝 집에 살고 계시는 분들, 아니면 우리 바로 밑 층에 살고 계시는 분들처럼 세상에는 남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런데 있잖아. 아무리 사소한 잘못도 용납이 안 되고 오히려 실제 행동보다 더 큰 잘못으로 오해 받는 경우도 아주 많이 있단다. 물론 세상에 우리 이웃들처럼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선량한 사람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런데 세상은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몰라. 정우는 아직 열 살밖에는 안되었고 이제까지는 착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면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항상 겸손하고 친절하게 인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폐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돼.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너의 그 당당함은 잊으면 안 돼. 그렇게 당당함을 갖고 살아가려면 사람은 언제나 배우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돼. 엄마 말 명심해! 알았지? 그런데 정우야! 엄마는 정우를 믿어. 지금까지도 믿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믿을 거야. 그리고 정우도 엄마를 믿고 의지하면서 따라오면 돼!”


큰 아이는 졸리고 피곤한 상태를 겨우 이겨내면서 마지막 잠들기 전까지 언제나 아이만의 레퍼토리 ‘사랑해요, 오늘 하루도 고마웠어요, 좋은 꿈꾸세요.’라고 인사했고 내가 ‘엄마도 사랑해, 고마워 정우야.’ 대답하면 아이는 또 다시 ‘저도 사랑해요.’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몇 번을 서로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면서 거의 나란히 동시에 잠이 들었다.


그날 늦은 밤, 앞 동의 불이 모두 꺼진 시각, 나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작은 등불 하나를 밝혀두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누구보다도 더 겸손하고 친절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며 착한 마음씨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노트에 적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살면서 그 보다 더 심한 말들로 내 마음에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 아이가 크는 미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도 그때마나 그날 저녁 내가 들었던 그 비난의 말들을 떠올리며 또 다시 머리를 수그리고 반성할 것이다. 그것이 내 아이를 바르게 키워내야 하는 엄마로서의 막중한 의무를 지켜내고 책임감을 완수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리라.



2018. 8. 14. 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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