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파리 Jun 25. 2024

따라큐의 삶

혜이드가 씁니다

 나는 아무래도 창작자는 아니다. 아주 적은 사람들한테만 이야기 한 혼자만의 비밀이지만, 어릴 때부터 뭔가 예술 비슷한 걸 하고 싶어 하긴 했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내가 잘하는 것은, 따라 하는 것. 포켓몬 중에는 따라큐라는 몬스터가 있다. 그는 귀엽고 인기 많은 피카츄를 질투해 피카츄와 비슷한 모양의 천을 뒤집 쓰고 살아간다.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한다. 그 모양이 왠지 나랑 비슷하다. 나조차도 내가 무슨 모양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노래를 부른 가수의 창법을, 좋아하는 화가의 화풍을, 좋아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어 억양을, 좋아하는 연예인의 스타일을 흉내 냈다. 때론 훔쳐 오기도 했다. 좋아하는 시, 소설, 노랫말의 단어와 문장들을 훔쳤고, 친구가 스쳐가듯이 한 말들을 훔치고, 인터넷에 떠도는 익명의 누군가가 남긴 글들을 훔쳤다.


 흉내 내기가 익숙해지면 훔쳐 온 모든 것들로 남자 가수의 노래를 내 방식으로 부르고, 각종 억양을 섞어 특이한 말투로 말하고, 좋아하는 철학자의 이념을 내 생각에 일부 끼워 맞춰 대화에 써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재해석이고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매일 하는 것들이 창작의 영역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연기를 배워 본 적이 있다. 남의 인생과 성격을 흉내 내고 훔쳐 내 방식대로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연기는 구렸다. '척'을 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가짜 같아 혜원아, 상황에 좀 더 집중하고 감정에 몰두해 봐." 그러지 못했다. 나의 피부를 떠난 모든 부산물들이 허접한 모작이 되지 않으려면, 심도 있는 재해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공부가 필요했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 텐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않았다고 해야 할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그랬다. 집중이 안되고 몰두가 안 됐다. 깊이가 없었다. 말 그대로 겉핥기의 장인이랄까.


 모임 사람들에게 앞으로 뭘 하고 살면 좋을지 푸념하듯이 물어봤다. 나는 이상한 완벽주의가 있다. 이상하다고 하는 이유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데 실제로 그다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게 좋으면 쓰면서 살아~ 너는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 같아. 엄청난 글이 아니더라도 먹고는 살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창작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무언가 만들어내려 하면 더욱더 가짜 같아진다.


 연기를 했을 때, 국문학과에서 어쭙잖은 글을 썼을 때, 의류학과에서 창작 디자인을 그릴 때, 욕심 내서 꾸며내면 꾸며낼수록 클리셰 범벅의 형이상학적인 무언가가 탄생한다. 인정 욕구가 뭔지. 그래서 나는 내가 남긴 자취를 돌아보는 걸 싫어했고 싫어한다. 실눈을 뜨고 봐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무해도 그럼 그때가 끝이다. 안녕~ 내 길이 아니구나. 예술가들은 보통 외길 인생을 살지 않나?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 내가 인생에 대해 품고 싶은 생각들을 적는다. 몇 자 없는 글 한 편을 쓰는 데 최소 3일이 걸린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척하는 글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글을 쓰는 건 재밌지만 그렇다고 온 마음을 바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초급자 수준에서는 노래와 노래를 잇는 정도가 당연한 것이겠지만, 고작 수업 3번에 내 마음은 벌써 월디페 무대에 가있다. 선생님처럼 편곡을 하는 수준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등장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때릴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든 깊이 공부하기를 싫어한다. 현재 상태와 동경하는 내 모습의 간극이 큰 만큼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하기가 싫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거지만 감히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허름해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인정받는 삶을 질투하기만 하는 삶이라니 조금 슬프다.


 이 글도 마침 기회가 생겨서 꾸역꾸역 쓰고 있다. 절대로 이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는 아닐, 몇 편의 글 모음집이 종이에 인쇄되었을 때 과연 내가 부끄럽지 않게 읽고 당당하게 남에게 선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득 명리학 공부하던 친구가 나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누구야 내가 이걸 해도 될까?"라고 물어봤었는데, 친구 왈, 사주에 없으면 욕망조차 하지 않으니, 그냥 해보란다. 나는 운명 맹신론자이다. 따라큐도 팬덤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부유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