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의 실험실 02
9월 달에 지도 교수님과의 첫 미팅 이후 두 차례의 미팅을 더 가졌다. 두 번째 미팅에서는 석사 때 지도 교수님이셨던 코르도바 대학의 엘레나 고메즈 교수님과도 함께 해 진척 상황과 나아갈 방향성을 논의했다. 11월 말에 있었던 미팅에서는 그때까지 했던 작업 결과물을 세부적으로 따져 보고, 수정해야 할 곳을 드러냈다. 그리고, 전반적인 타임라인을 보았을 때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는 동시에 주제범위 문헌고찰(Scoping Review) 작업을 시작할 토대를 마련해 보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즉, 9월에는 내가 그려나갈 향후 연구의 전반적 청사진을 교수님께 설명하는 시간이었고, 미팅 이후에 내가 가진 비전에 따라 연구 계획서 초안을 작성했다. 10월은 UAB 에밀리 드 무어 교수님(이하 에밀리), UCO 엘레나 고메즈 교수님(이하 엘레나)과 함께 초안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에밀리 교수님은 작업을 받치는 더 큰 범위의 연구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대해 Design-based Research를 추천해 주셨다. 10월 달은 이 방법론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연구 방법론은 너무나 당연한 작업의 과정을 깨작깨작 하나씩 뜯어보는 것만 같아서 연구방법론을 공부하는 내내 ‘이걸 대체 왜 글로 읽어야 하지?‘, ’이게 도대체 왜 400쪽짜리 책이냐.‘ 등등의 한탄을 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본다.‘를 열 쪽에 걸쳐 설명을 한다. 또는, ‘밥 먹는다’라는 단도직입적이며 명확한 사실 열거 방식을 택하는 대신 ‘쌀, 벼, 보리 등의 작물을 전기밥솥, 찜기, 냄비 등과 같은 주방 기구를 이용해 요리한 음식을 섭취한다. 이때, 주식인 밥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반찬을 만들어 함께 곁들여 먹는다. 이는 주로 동아시아 문화에서 기반한 식문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러니까 한 마디면 될 걸 한 바닥을 들여다봐야 되지. 난 사실 아직도 사회과학적 연구의 현학성에 의문을 품고는 있으나 이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스며든 영역이어서 학문적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영역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어 어느 정도 (체념에 가까운) 납득한 상태다. 11월 달에는 수정한 연구 계획서와 함께 첫 번째로 작성할 논문 주제로 문헌 고찰을 하되, 여러 리뷰 방법 중 Scoping Review(이하 ScR)를 선택해하기로 했다. 이때부터는 하염없이 ScR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다.
매 회의 때마다 하던 작업을 도려내고 쳐내는 작업이 필수불가결적으로 따르는 데다가 새로운 과제물이 얹어져서 1학기는 전반적으로 느리게 나아가고 있다. 솔직히 매일 공부하거나 자료 조사할 때마다 이전에 작업했던 결과물을 배반하는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흐린 눈 하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 시력이 마이너스 8에다 고도 난시인데 이만하면 그냥 안경 벗거나 렌즈 빼면 흐린 눈 쌉 가능인데 말이다. 하지만 짧은 3개월 차 박사 경력으로 겪어보자니, 지금 흐린 눈 해봤자 더 조사가 진척된 상황에서 다시 발목 붙잡힐 뿐이니 이제는 순순히 학문의 잔혹함에 굴복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사를 재미로 두세 번 하는 미치갱이는 없겠지만(있을지도, 하지만 난 아니겠지.) 처음 하는 거라서 그런지 모든 게 너무나 막막하다. 뭐 하나 검색하려고 치면 오조오억 개의 자료가 뜨고, 그걸 추려내는 사이에 강산이 수십 번도 더 변해있을 것만 같다. 그나마 내 친구 지순이(내가 사용하는 GPT 별명)가 정보 수집이나 요약 과정에서 큰 공로를 매일 같이 세우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순이 하나가 백 명의 나보다 똑똑한 것 같다. 씁, 과연 백 명뿐이려나, 그 뒤에 0을 몇 개 더 붙여야 될지도.
아무튼 12월이다. 2024년의 마지막 달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박사 과정의 1학기도 중반을 넘어섰다. 12월 말까지 열심히 달려야겠다, 그래야 방학 때 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