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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Jul 26. 2021

아비뇽을 좋아하세요?

아비뇽, 프랑스, 2017년 여름

평소 여행을 다녀오면 열정 쏟아부어가면서 사진을 남기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 앞에만 서는 얼어붙는 몸을 타고난 덕분에 카메라를 멀리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그 이후부터는 누가 끌어서 가져다 놓지 않으면 굳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 타입으로 굳어져버렸다.

무던한 노력 끝에 건진 사진들마저도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까먹기 마련이라 언제부턴가는 아예 구글에서 제공하는 구글 포토에 연동시켜 자동으로 다운로드가 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진들이 결국에는 앨범 용량만 잡아먹는다고 지워버리기라도 하는 날이 오면 그 사진들은 그 모습 그대로 영영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다음 주 논문 디펜스를 준비하던 중에 잠깐 쉰답시고 구글 포토를 열었다.

명목이라고 한다면야 구글 포토를 채우는 사진들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2017년 구글 포토 어플을 깔고나서부터 자동 연동된 앨범은 사진이며 영상이 어느 것 하나 정리된 기미 없이 쌓여있었다.

아무리 어플에 담긴 사진들이라지만 그 속에 담긴 사진들을 스크롤하는 느낌은 마치 장롱 속에 앉아 먼지만 앉아 내린 두꺼운 앨범을 꺼내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이었다.

달라붙은 앨범 코팅지들 사이사이를 떼어내며 쩌억, 거리면서 입을 벌리는 앨범은 넘기는 장마다 새로운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처럼 핸드폰 화면 안에 산재한 과거의 유물들은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어제에서 엊그제로, 전 날에서 또 그 전의 날들로 향하고 있었다.

몇 년이 이미 지났지만 과거를 곱씹는 것은, 특히 코로나 이전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것이지만 기억을 반추하며 지금에서야 덧씌우는 또 다른 한 겹의 생각들이 있을 수도 있다.

사진이 꺼낼 수 없는 그 당시의 분위기, 느낌, 내가 가졌던 생각들을 글로써 풀어내 보고자 한다.

그 첫걸음을 2017년의 프랑스, 파리에서 떼어보려고 한다.

프랑스는 홀로 여행이든, 같이 여행이든, 친구들과 함께든지, 아님 가족들과 같이 갔든지 간에 내가 가장 여러 번 찾은 곳이며 가장 오래 머문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는 내게 좋고 나쁜 의미로 특별한 곳이다.

아직도 한 편으로는 환상에 가득 찼으면서도 또 그 이면에는 그 어떤 환상조차 한 톨도 남지 않은 곳이기도 하며 궁금한 것들 투성이어서 알고 싶은 게 한 트럭으로 쌓여있으면서도 돌아서면 거들떠도 안 보는 곳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머릿속에도 프랑스를 일구는 생각들이 저런 모순들에 가득 차있어서 자꾸만 돌아보게 되고 어떻게 서든지 발걸음이 향하게 되는 곳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지금까지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아도 열 손가락을 채울까 말까 하는 횟수로 파리행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학교를 다니며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때는 빠짐없이 나갔는데 프랑스는 꼭 빠지지 않고 있었고, 각 잡고 짐을 바리바리 챙겨 프랑스에만 최소 일주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머무르기도 했다.

2017년을 기점으로 잡은 것은 그 전에는 학생의 신분으로 다녀왔다면 이제는 직장인의 신분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나름의 변화라면 변화였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여행지가 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니 비행기표야 그다지 어려울 것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계획도 숙소이나 교통편도 다 그 이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표를 산 이후에 시간을 천천히 가지며 생각해도 될 일이고 말이다.

사실 워낙 무계획성과 충동성을 겸비한 성격인지라 여행을 감에 있어서도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이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훌쩍 다녀오는 편이다.

그래선지 조금 망해버린 적도 없잖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또한 지나가 보면 추억이 된다, 이야깃거리가 된다 하며 넘기다 보니 바뀔 의지도, 바꿀 수 있는 계기도 딱히 없이 그 버릇은 영영 남아버렸다.

파리에서 대충 몇 주일을 지내다가 남부 도시를 좀 내려가 볼까, 날씨도 좋으니까 해수욕도 좀 하고. 잠깐, 근데 그 가는 길에 반 고흐가 살았다는 그 무슨 도시더라. 라일락 그 무슨 어디 많이 폈다는데도 그쪽 동네던가. 아, 그러면 들릴 데가 너무 많아지려나.

대충 머릿속으로 화살표를 연결해가며 오각형 안에 선분들이 갖가지 방향으로 그어졌는데 결국 남은 건 두 개였다.

파리에서 아비뇽, 아비뇽에서 니스로.

다시 말끔해진 오각형 안에 들이차는 생각들은 마구잡이로 물음표를 그려댔다.

숙소는 어떻게 할 거야? 그 안에서는 어떻게 돌아다닐 거야? 이 날은 뭐 할 거야, 저 날은 뭐 먹을 거야. 하다못해 환전은 해가야 되지 않겠니?

아무리 그래도 복닥거리며 쌓여가는 물음들에 눈썹 하나 찡그릴 일 없는 유일한 이유는 태생적으로 계획을 세우는데, 더 정확히는 계획을 지키는데 소질이 없는 탓이다.

역시 여행은 게으를수록 다이내믹해진다고, 쫓기는듯한 스릴이 바로 나태한 여행의 묘미다.

2017년 여름의 날씨는 어땠던가.

여름답게 더웠는지, 그래도 나름 서늘했는지, 어쩌면 기록적인 무더위가 연일 뉴스를 장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차적인 요소들은 당사자의 허가를 받지 않았음에도 이미 기억 저장소에서 영구 삭제된 지 오래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은 언제나 다른 감각과 맞물려 머릿속 저 편에 잠들어 있는데 그건 아마 내게 특정 느낌이나 분위기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습관적으로 오르세 박물관을 들렸던 날, 아침부터 비가 푸슬푸슬 내려서 그런지 옅은 비 냄새가 기억 속에 도사린다.

박물관의 가장 꼭대기 층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강물은 흐릿하게 낀 안개 때문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고, 그 풍경의 전체적인 프레임에 은은한 흙내와 비 냄새가 곁들여 뿌려져 있던 그날.

아니면 아비뇽에서 편도염을 앓아 열이 끓던 오후, 온 정신이 가파른 사막에 맨 몸으로 던져진 듯 온몸이 활활 벌겋게 익어버리고 목구멍이 새빨갛게 찢어질 듯 숨통을 옥죄던 기억.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어도 모든 처리 과정을 거치고도 남는 일말의 기억에 남는 조각들이 있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단순히 하나의 감각이 아닌 두 개 이상의 복합적인 감각 기관들을 동원해서 구성되어 만들어진 전체적인 그림이라면 그 풍경은 머릿속에 그려보더라도 당장이라도 뛰어들 수 있을 정도의 생생한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사모님과 미국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어떤 특정 냄새만 맡으면 “음, 미국 냄새난다!”라고 소리를 치며 한동안은 그 냄새의 정체를 찾기 몰두해있었다는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미국 냄새는 정체불명의 뜬 구름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공기 중을 떠돌고 말뿐인 모든 소재와 원인이 분명한 화합물의 결정체일 것이다.

하지만 왜 굳이 미국 냄새인 것이냐 생각을 해보면 미국에서만 맛보았던, 맡았던, 보았던, 들었던, 느꼈던 그런 특별한 느낌들의 결합체로 인식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럼 이 공간에서 모든 체들과 필터들에 거르고 걸러지는 사소하고 별 거 아닌 일들을 짚고 가보자.

파리에선 갈 때마다 들리는 곳이 정해져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오르세 박물관이다.

참고로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해 파리 내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이건 추측하건대 국가 국적 불문일 것이다.

조금 늦은 시각에 입장해 들어간 그날은 아마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직행했던 것 같다.

꼭대기 층부터는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많은 데다가 바깥에 나가면 바로 센 강과 그 건너편까지 볼 수 있기도 해서다.

물론, 그날은 아까 말했다시피 스산하기 짝이 없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탓에 강은 무슨, 사방이 잿빛에 감겨 있었고 휘날리는 바람에 사선으로 내리던 비는 튀기는 침방울 마냥 얼굴을 겨냥해 달려들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음산한 분위기의 주중에 미술관까지 발걸음을 옮길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건지, 거의 문 닫을 시간에 내가 발걸음을 해서인지 그 층에 사람은 휑하리만큼 없었다.

그래, 돌이켜보건대 그 널찍한 공간과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들어오던 비 냄새와 흙내가 여태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아비뇽은 어땠더라.

불타는 고구마 신세로 며칠을 내리 앓아눕기만 했던 그 도시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가 어려울 텐데 이상하게 아직도 아비뇽을 생각하면 끔찍했던 급성 편도염의 고통을 넘겨보면 그 뒷면에는 머물렀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가 떠오른다.

낌새가 심상찮았던 그날 저녁부터 할머니는 내내 걱정을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느닷없이 치솟는 열과 온몸에서 쭉 빠져버린 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가 끓는 것만 같은 그 기분은 정말이지 너무나 생경해서 몸이 붕 뜨는 희한한 느낌까지 받았던 날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날은 주말, 근처에 모든 병원들이 문을 닫았으니 이를 어쩌면 좋냐 싶었다.

잔뜩 쉰 목소리로 가족한테 전화를 하고 나니 기진맥진 모든 힘이 다 빠졌는데 이 와중에 주인 부부 내외와는 소통이 어려웠던 게 내가 그만큼의 불어를, 그분들이 그만큼의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얼굴을 보고 얘가 어지간히 아프구나 하는 건 그 전날부터 눈치는 채셨던 것 같은데 아마 간밤 새에 더 끔찍한 몰골로 나타날 줄은 모르셨을 거다.

당시 원활한 대화를 하고자 불어를 할 줄 아는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언니가 주인 부부와 통화를 마치고 내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러주었던 것 같다.

그중 하나가 할아버지 차를 같이 타고 근처 응급 센터로 가는 것이었는데 그건 약사였던 할아버지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연식이 꽤 된 빨간 자동차를 타고 응급 센터로 간 그날 오후는 유독 햇볕이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정도로 따사롭게 내리쬐었다.

의사의 처방을 기다리며 대기석에서 기다리는 와중에 할아버지가 햇빛을 많이 받으면 더 빨리 나을 거야,라고 해주셨던 말씀이 그 풍경 위로 덧대어져 들리는 것 같다.

니스는, 글쎄, 놀고먹고 잔 기억밖에 없기는 한데 굳이 하나로 압축해보자면, 케밥의 재발견이다.

니스의 특산물은 뭐고, 니스는 해안가랍시고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하며,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케밥이 최고 맛있었다는 말이다.

거짓 하나 보태지 않은 순도 100프로의 진심이다.

물론 케밥에 대한 충성도가 남다르게 높긴 하지만 이때만 해도 케밥이라고는 내 돈 주고는 사 먹지 않는 강경함을 보였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니스에서 지내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 내내 반나절을 해수욕하며 보내다 보니 물놀이 푸드로 매번 바로 앞에 있는 케밥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케밥집주인이 무슨 음료를 시킬지도 알아서 내가 멀리서 보이면 음료수 냉장고에서 제로 콜라를 미리 꺼내 들고 기다렸다면 말 다했지.

니스에서 머물렀던 에어비앤비는 해변가에서 도보로 10여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 안쪽에 위치한 집이었다.

주인은 낮에는 일을 나갔는데 아침에 집주인이 근무 준비를 하는 동안에 나는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고 나서 브런치를 먹고 느지막이 해변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신선놀음 그 자체였는데 그게 여행의 재미 아닌가 싶다.

남들의 일상이 내게는 일탈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느낄 수 있는 묘하게 들뜨는 기분 있지 않은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과 이방인으로써 쌓아나갈 수 있는 생각들이 결국 여행의 정체성이 아닐까?

2017년 프랑스의 여름은 이 외에는 더 건질만한 건더기들이 없지만, 손 틈새로 빠져버린 기억들마저 완전히 버려진 것만은 아니다.

그때의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가치관이 빚어졌을 것이고, 내 일부를 꾸리는데 어느 정도 녹아들었겠지 생각해본다면 그다지 아까울 것도 없다.

시시때때로 그날의 기억으로 휩쓸려 돌아갈 때면 아무래도 기억의 형상이 지금은 다른 모습과 다른 형태로 온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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