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4구, 프랑스, 2018년 겨울
원래도 별다른 편식 없이 음악을 듣는 편이지만 이 시기에는 특히 이디엠에 빠져있었다.
여름이면 페스티벌에 가고, 전일권을 끊어 이틀이나 삼일 내내 갈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이디엠의 터지는 부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간질거리는 벅참이 좋았고, 페스티벌은 그런 사람들만 한 공간에 가둔 셈인데 그 폭발적인 열기와 에너지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카이고나 발매 당시 한국인들의 심장을 두드린 체인스모커스 같은 감성 한 스푼 섞인 계열을 제일 선호했다.
체인스모커스는 한국에 내한을 하면서 영접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카이고는 내가 찾아 나서는 것이 빠를 판이었다.
2018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열심히 여행을 계획하던 당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소식을 접하게 되니 당시 하루 골백번을 듣던 카이고와 갈란티스의 공연이 며칠의 차이를 두고 파리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인지 찾아보려고 내가 자주 쓰는 아티스트 공연 일정을 알려주는 어플을 켜서 날짜를 입력하고 공연 가수 목록을 찬찬히 내려보았다.
아예 쐐기를 박아버린 것은 그 당시 막 뜨고 있었던 신예인 칼리드까지 그 주간에 공연을 한다고 화면 가득히 뜨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운명이고 계시다.
카이고, 갈란티스, 칼리드까지 일주일이면 볼 수 있는데 이걸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하는 착잡한 마음에서 오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바라보자면 나는 극명한 희비를 동시에 겪고 있었으니 그게 무엇인고 하니 기뻐 마지않았던 것은 공연 일자에 파리 내 있기만 하면 이 모든 공연을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날 시린 참담함에 몰아넣었던 것은 이미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것이다.
이 슬픔을 더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출발지가 파리, 도착지가 마드리드였는데 이게 딱 반대로만 된다면 콘서트 일정까지 딱딱 아다리가 맞는다는 점이었다.
애 진작에 이 귀중한 정보를 왜 몰랐을까 이마를 빡 빡 때리며 자책해도 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들숨에 쏘리아에인갓노머니 날숨에 잇에인미 타령을 하던 나는 페널티를 물고서라도 반드시 기한 내 파리에 가고야 말겠다는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고 그 자리에서 바로 티켓 취소 절차를 밟았다.
우유부단함의 인간화라는 말을 귀에 피딱지가 얹히도록 듣고, 그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은 시간 없어, 빨리 결정해, 인데 그 와중에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하면 나로서는 사생결단인 셈이었다.
결국 50만 원을 더 얹고 새로운 비행기표를 손에 거머쥘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두 개의 콘서트 표도 함께 구매했으므로 아까울 건 하나도 없었다.
탈탈 털린 지갑을 바닥에 내던지며 하하, 이제 누가 승자지, 속으로 외칠 지경에 이르렀으니 후회는 단 한 톨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고 자부한다.
그다음 날부터는 특훈에 들어갔으니 콘서트를 백배 즐기기 위해 모든 가사와 코러스를 숙지함은 물론이요, 현장감을 익히기 위한 과정으로 라이브 버전 영상도 꼼꼼하게 돌려보았다.
당장 플레이리스트에만 카이고와 갈란티스, 칼리드의 노래로만 도배를 해놓은 것은 물론이오, 노래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알기 위해 다큐멘터리까지 찾아보는 등 해병대 캠프에 버금가는 혹독한 청음 과정과 이론 숙지 기간을 거쳤다.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노래를 듣고, 0.5 초만 듣고도 무슨 노래인지 알게 될 쯤에 출국 날짜가 다다랐다.
물론 비행기가 이륙장을 풀 맥스로 밟아 바퀴가 허공을 뜨는 순간에도 내 귀는 카이고의 sunrise를 듣고 있었다.
2월 10일 토요일, 갈란티스
Élysée Montmartre, Paris
갈란티스가 공연하는 엘리제 몽마르트 콘서트 홀은 2호선 라인에 있는 Anvers 역으로부터 도보 3분도 채 안 되는 기가 막히게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덕분에 접근성이 매우 용이했다.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자주 가긴 했어도 해외에 직접 콘서트장을 찾아 나서본 적은 없어서 조바심을 내며 위치와 이동 경로를 이미 찾아본 바였다.
평소 별 다른 계획이나 조심성 없이 움직이는데 비해선 노력을 꽤나 기울인 셈이다.
토요일 저녁 표는 온라인 티켓으로 저장해놔서 그걸 보여줘도 되지만 혹시나 해서 종이 프린트로도 준비해 갔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선 줄은 의외로 빠르게 줄었고, 오랜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큰 공연 장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니 갈란티스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도 확실했다.
라이브 공연이나 콘서트의 묘미는 확실히 음향과 조명이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조명이 꺼지고 깜깜하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시야가 익숙해지려는 와중에 증폭된 음향의 진동이 느껴질 때면 나는 혼자 서 있을 뿐인데도 문자 그대로 가슴이 웅장해지고 만다.
거기다 본격적으로 세트리스트가 시작되기 전 나오는 전주의 첫 비트는 심장을 거의 후벼 파다시피 하는데 그때만큼은 심장이 터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해지는 바람에 과연 내 나약한 몸이 혈관의 팽창 속도를 견딜 수 있을까, 진지하게 속에서 되뇌고야 마는 것이다.
갈란티스 이름이 적힌 네온사인이 무대 중앙에서 번쩍임과 동시에 갈란티스가 요란법석을 떨며 등장했고,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된 듯 주변 사람들의 환호가 더욱더 거세어졌다.
갈란티스가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디제잉 데스크를 박차고 나와 무대 앞에서 방방 뛰는 모습이 눈에 담기자 내가 파리에서 갈란티스를 보고 있다니, 참 희한한 일이네, 막연하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 역 앞에 있는 서브웨이에서 15센티 섭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낮에 시내에 갔을 때 들린 러쉬에서 산 배쓰밤을 욕조에 풀고 거품 목욕을 하며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으니 노곤함이 밀려들어왔다.
갈란티스 공연만 하더라도 이 기간에 맞춰서 파리 오길 잘했다 백번이고 스스로를 칭찬했지만 이제 두 공연이나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밀려들었다.
2월 13일 화요일, 칼리드
Le Trianon, Paris
바로 그다음 주에 칼리드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칼리드는 딱 그 해 겨울을 접어든 때에 푹 빠지게 된 가수였고, 그 당시에는 신예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가진 특유의 아메리칸 틴 감성이 참 나도 모르게 트랜스 캘리포니안으로 만드는 바람에 한창 듣고 다녔었다.
꼭 칼리드 노래를 들으면 내가 다니지도 않은 노던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11학년이 된 기분이더라고.
아니, 깔 별로 바인더 정갈하게 꽂힌 락커룸 닫고 스케이트 보드 타고 집으로 가야 될 것 같더라니까.
가는 길에 가로수는 야자수고, 주홍빛 주택들이 줄 지어 서있는 도로변에 꼭 인앤아웃 가서 밀크셰이크랑 햄버거 세트 시켜서 먹고 말이야.
이제 집에 왔어, 와서 스티커 덕지덕지 붙은 맥북 열어서 왓츠앱 확인하면 꼭 프리칼 수업 같이 듣는 애가 나랑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 하는데 나는 얘 좋아하고, 얘도 나 좀 좋아하는 거 같고, 우리 서로 약간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막 서로 자존심 세운다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 뭔지 알지?
아, 진짜 칼리드 노래 들으면 그냥 아메리칸 틴 감수성 터져버리는 거다. 그냥 내 길 잃은 영혼이 미국 국적 따는 거란 말이다.
특히 OTW, 8Teen, Keep me, American teen, Another sad love song, Let’s go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또 뻐렁치는데 연속으로 계속 들으면 가슴 뚜껑이 남아나질 않고 발사될지도 몰라서 조심해야 된다, 정말.
한 가지 웃겼던 건, 아니 좀 믿을 수가 없었던 건 그날이 칼리드의 생일이었는데 짧게 소감을 말하길 20살을 파리에서 공연을 하는 이 날에 맞이하는 게 아티스트로서 무한한 영광이라고 했다.
난 칼리드의 노래를 무척 좋아하긴 했어도 나이는 몰랐는데 본인 입으로 스무 살이라길래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노래를 들으며 만든 머릿속 칼리드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중년으로 본인의 하이틴 라이프를 회상하며 하나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풀어내려 가는 줄로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고, 그 인파에 낀 나는 엉겁결에 그 틈에서 박수를 짝짝 치면서 아, 그래서 98년생 찐 감성으로 아메리칸 틴을 노래할 수 있었던 거구나, 하고 깊은 깨달음을 그날 밤 얻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트랜스 캘리포니안이 되어 두 시간을 신명 나게 즐겼던 콘서트장의 위치는 공교롭게도 갈란티스가 공연하는 장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있었다.
최신식 스태디움이나 공연장이 아닌 것은 확실했지만 유려한 선으로 장식된 외관과 세로로 긴 창은 파리 특유의 도시 경관과 잘 어울리는 건물이었다.
돌계단을 올라가 들어간 공연장은 마치 옛날 유럽 사교회나 무도회장을 입장하는 길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입장문이 있었다.
1층에서 공연이 이루어져 관객은 번호순대로 입장을 차례차례 하는 중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나무 바닥으로 된 1층은 사람들로 메꿔져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관객에게 개방되지 않은 공간인 2층과 3층이었다.
나무 난간은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어 그곳에서 서서 공연을 관람을 할 수 있는 듯 하니 연극이나 오페라 극장을 연상시키는 구조였다.
콘서트가 끝난 뒤, 공연장에 대해 더 알아보니 지어진 연도가 1894년도였다.
그 이후로 여러 번의 재건축 공사와 함께 몇 번 건물의 용도가 바뀌긴 했어도 그 시초가 파리의 최초 뮤직홀 중 하나인만큼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현재의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로부터도 느낄 수가 있었다.
공연이 아니었다면 들어가기는커녕 쉽게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건 정말이지 황홀한 경험임에 틀림이 없었다.
파리를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더없이 경쾌하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