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4구, 프랑스, 2018년 겨울
Le Zenith-La villete, Paris, France
카이고가 공연하는 콘서트장은 파리 외곽지역인 19구에 위치해있는 제니스 공연장에서 이루어졌는데 아무래도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는지라 밤늦게 끝난 후 어떻게 다시 도심으로 돌아올 건지가 문제였다.
아예 도심을 포기하고 근처에 숙소를 잡기로 결정하고 드나들 일도 그다지 많지 않았던 낯선 동네에 숙소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큰 이점은 아무래도 관광지나 도시 중심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에어 비앤비로 집 전체를 빌렸는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심지에서는 지하철로도 거진 40분 가까이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도착하고 나서 첫 하루 이틀은 한 번 지하철을 타고 나가면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한 번 숙소에 들어오면 두 번은 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것도 잠시지, 귀찮아져서 사나흘 때부터는 모든 물욕과 여행 욕심을 버리고 동네 마실이나 잠깐 나가는 정도였다.
지하철 삼사십 분이면 숙련된 통근러로써는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틀 전에 콘서트 스탠딩을 두 탕을 뛴 몸으로서는 아무래도 기동성이 영 시원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잠자코 집에 드러누워 이제 곧 카이고를 영접할 날이 오겠지, 하며 동네 빵집에서 쟁여온 사과 파이를 먹고는 했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빵이 진짜 미친 듯이 맛있다는 것인데 이건 빵순이와 막입이라는 환상의 조합을 가진 내가 갈 때마다 감탄하고 오는 점이기도 하다.
어디 갈 것도 없이 근처 동네 빵집은 다 맛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심금 울리는 포인트다.
개인적으로 빵집을 들를 때마다 꼭 고르는 것은 아몬드 크로와상과 사과파이, 까눌레인데 각자의 매력이 너무나 색다른 빵들이라서 빵집에 갈 때마다 얼마나 맛있는지를 재단하는 개별 빵슐랭 척도로 쓰기도 한다.
특히나 프랑스에서 먹는다면 크로와상은 결대로 찢어지는 그 부드러움, 애플파이 안의 진한 사과 퓌레, 그리고 까눌레의 진정한 겉바속촉을 그대로 혀 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요점은 뭐냐면 굳이 중심지까지 부러 나가지 않더라도 동네 주변을 나다니며 콘서트 일정을 기다렸다는 점과 그 기간 동안 빵은 빠지지 않고 하루 일과의 중요한 부분으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카이고 콘서트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콘서트인 데다가 카이고는 정말 고대해오던 아티스트였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기 짝이 없게도 카이고의 몇몇 노래들을 정말 골백번이 넘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트로피컬 이디엠의 청량한 사이다 맛을 보자마자 거의 탄산광인이 되어 매일 아침 출근과 저녁 퇴근길은 폭죽 같은 이디엠으로 가득 찼었는데 플리의 대주주가 카이고 님이셨다.
그야말로 자동적으로 카이고의 이 노래를 들으면 운동회가 생각나고, 저 노래를 들으면 1학기 현장체험학습이 생각나는 기이한 공감각적 현상에 시달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만큼 생활밀접형 아티스트 카이고였으며, 몽환적인 비트와 환상적인 가사, 말해 뭐해 청량의 끝을 달려 귀를 샤워시켜주는 멜로디 덕분에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은 현세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진 관념의 공간을 산책할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짤막한 10여분의 여유가 얼만큼 귀중한지는 아는 사람은 안다.
직장이 싫다,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런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와중에 더없이 큰 보람과 어디서도 누릴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종종 위험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를 테면, 일상에서 오는 규모는 작지만 잔잔하게 여파가 오래가는 스트레스들 말이다.
당장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너무나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일 때가 있음에도 그런 성가신 것들이야 말로 그때그때 제거해줘야 하는 게 이치이거늘, 그걸 숙변이나 잔병처럼 달고 다니면 나중에 큰 화를 면치 못한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용도로 나라에서 유일하게 허락한 마약이라는 음악을 찾았고 그 안에서 심적인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힘든 시간에 듣는 꿀 같은 음악일수록 더 기억에 오래가고, 마음에 오래 남는 법이다.
stargazing을 들으면서 밤하늘을 봤던 그날, 교실에서 있었던 아이들의 싸움이 불러온 결과가 하루 이틀을 지나도 걷히지 않아 까맣게 떼처럼 몰려든 걱정덩어리들이 뿌옇게 마음속을 가리고 있었다.
잔업을 처리하느라 남은 어느 평일 오후, stranger things를 들으며 이 일상의 틀을 깨고 도망가고 싶은 생뚱맞은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눈을 다시 뜨면 어느 인적 드문 해변에 접이식 의자에 앉아 마시던 칵테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파도가 치는 해변으로 달려가는 거다.
this town은 과거로 회귀하는 타임머신이었다.
잠들기 전 이 노래를 들으면 집에 돌아가는 길 떡꼬치를 사 먹는 초딩이었다 다시 시간 사이를 건너뛰어 교복을 입은 학생이 되었다가 학사모를 던지는 졸업반 대학생으로 변했다.
그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런 순간들이 연이어 지나갔다.
선택과 후회, 평행 세계로 찢어지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놓인 갈림길로 다시 날 데려다 놓았다.
잠을 깨고 일어나면 그 이후로 이어지는 출근 준비는 뇌 주름 사이사이에 마저 촘촘하게 입력된 코드다.
현관문을 나서면 riding shotgun을 볼륨을 높이고 왕왕 울리는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는다, 오늘 하루도 가보자고.
말하자면, 카이고는 2017년 하반기와 18년도의 상반기를 책임진 장본인이시란 말이다.
그러니 콘서트가 하루씩, 한 시간씩 당겨질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무조건 반사일 수밖에 없다.
카이고의 공연장은 숙소로부터도 지하철 몇 정거장을 더 타서 파리의 외곽지로 나갔어야 했는데 세 번의 파리 콘서트홀 중에서 가장 큼직한 곳이었다.
무대 장치도 돌출 무대도 있는가 하면 경사진 곳이나 이동식 무대도 마련되어 있었고, 공연 후반부에 가서는 폭죽도 터트렸으니 물리적 크기만큼이나 더 스펙터클한 무대 효과까지 보장하는 콘서트홀이구나 싶었다.
카이고의 경쾌한 사운드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리는 콘서트 홀에서 들으니 더욱더 가슴 뻐렁치게 감격스러웠다.
카이고는 프로듀서이자 디제이인 만큼 노래를 부르진 않았으나 피처링하는 가수들이 연이어 등장해 느슨해질 틈이 없이 축제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라이브로 이 노래를 듣는다는 게 실화인가, 하며 언뜻 언감생심 해지는 순간들이 번개처럼 지나간 것이 여러 번이었고 끝에는 이 자리에 서있는 나 자신이 별 논리적 이유 없이 기특해지는 지경까지 이르렀을 즘, 콘서트는 마지막 폭죽을 터트리며 막을 내렸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며 정말 시시하면서도 뜬금없는 생각에 다다랐다.
신도림까지 어느 세월에 가냐.
7시간 느린 시간을 보내며 세 번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파리의 겨울은 추웠지만 콘서트의 열기는 더없이 뜨거웠으며, 그 가운데 겨울은 찬란하게 지고 있었다.
겨울은 모두가 생명이 잠드는 때, 잠자코 기다리는 때라고들 하지만 이 때는 고작 2월이었다.
새 해, 새 동이 이제 막 틀 무렵, 폭발적인 에너지가 맴도는 파리에서 나는 봄을 준비한 셈이다.
새 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2월의 느지막한 시점에 서 있던 나는 다가오는 18년도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