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세븐키

일곱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미술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미술이 현대로 올수록 표현방식과 주제가 점점 더 복잡해 졌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을 보는 관람객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작품의 레이블을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음에 절망하곤 한다. 고전미술이나 19세기의 리얼리즘 그리고 인상파 작품을 보면 성경이나 신화 속 이야기 혹은 일상의 풍경이 그림의 주제였다. 표현 방식 또한 회화나 조각 이외의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술가들은 인간의 무의식과 같은 심오한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러한 욕구와 더불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매체를 작업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거나 의미를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관람객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일곱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미술’이라는 부제를 단 사이먼 몰리의 ‘세븐키’는 구분하자면 현대미술 작가론이다. 사이먼 몰리는 미술가이자 작가이다. 2010년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단국대학교 미술대학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에 오기 전 수년에 걸쳐 영국의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와 테이트(Tate), 화이트채플갤러리(Whitechapel Gallery) 등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강의와 투어 가이드를 했다. 일반 관람객들은 무엇이 궁금한지, 어떻게 설명을 풀어나가야 할지를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그는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을 일곱가지 열쇠를 가지고 정리했다.

그는 한 작가의 한 가지 작품을 놓고 일곱가지의 관점을 통해 현대 미술의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려준다. 저자는 전기적(BIOGRAPHICAL), 역사적(HISTORICAL), 미학적(AESTHETIC), 경험적(EXPERIENTIAL), 이론적(THEORETICAL), 회의적(SCEPTICAL), 경제적(MARKET) 관점에서 우리에게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법을 설명한다. 작가의 살아온 인생과 영향을 주었던 역사적 배경과 미학적, 이론적인 가치, 감상하는 사람으로서 눈여겨 볼 부분, 그럼에도 비판할 점 그리고 모두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경제적인 가치까지 간명하게 정리했다.

책은 앙리 마티스부터 파블로 피카소, 카지미르 말레비치, 마르셀 뒤샹, 르네 마그리트, 에드워드 호퍼, 프리다 칼로, 프랜시스 베이컨,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구사마 야요이, 요제프 보이스, 로버트 스미스슨, 안젤름 키퍼, 바버라 크루거, 쉬빙, 빌 비올라, 루이즈 부르주아, 이우환, 도리스 살세도 등 20명의 작가를 다룬다. 각각의 미술가들을 설명할 때 일곱 가지 시선의 순서는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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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양상에 개인사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프리다 칼로의 경우 ‘짧은 머리의 자화상’(1940년 작)을 놓고 보면서 전기적 이해를 가장 앞에 내세웠다. 마르셀 뒤샹은 그가 레디메이드의 세계로 들어선 당시의 예술이론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적 이해가 첫 번째로 등장한다.

유일하게 다루고 있는 한국 작가인 이우환은 전기적 이해와 역사적 이해를 앞에 내세웠다. 이후환이 고유한 화풍을 발전시키던 시기의 동아시아는 문화적 부흥기를 누리는 한편 서양과의 접촉으로 위협받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우환의 작품은 동서양의 문화담론이 일어나고, 다양한 전통이 서로 비판적으로 만나는 와중에 탄생했다. 책은 ‘조응'(2001년 작)을 다룬다. 여백에 가운데 큰 붓 자국을 그려넣은 것으로 미학적 이해에는 이렇게 분석했다. “작품 속의 붓 자국은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심 끝에 나온 것이다. 이우환은 동아시아 회화의 전통 방식대로 바닥에 캔버스를 눕힌 다음, 머릿속에 생각한 붓 자국 크기에 맞춰 잘라놓은 종잇조각을 여기저기 시험 삼아 갖다 대본다. 그런 다음 물감을 묻힌 커다란 붓을 들고 느리고 신중하게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다시 캔버스를 수직으로 세우고 더 세밀한 붓으로 붓 자국을 정연하게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이우환은 비교적 계획적이면서 사유적 차원의 작품을 그려나간다. 자연스러운 단순함이 인상적인 완성작과는 대위를 이루는 방식이다.” 회의적 시각에선 ” ‘조응’ 같은 작품은 반복성을 근거로 일관성 있게 만들어내는 실용적 전략의 산물로만 보일 뿐”이라고 했다. 말미에 이우환 작품의 위작사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일곱 가지 시선의 순서만 봐도 지은이가 각각의 미술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눈여겨 볼 부분은 미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이다. 바버라 크루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신화된 상품과 그것을 소비한다는 것의 의미를 표현했다. 로버트 스미스슨의 대지 미술(Land Art)은 작품이 탄생한 그 순간의 의미를 넘어 환경의 변화로 작품까지 변화하는 과정까지 작품으로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입문자에게 친절하기도 하고, 깊이도 있어서 미술 전문가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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