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의 클래식이야기 2] 브람스피아노협주곡2번

피아노 협주곡 2번 op.83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뮤직&스토리텔러 이미선 (방송인, 전 KBS 아나운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틈틈이 써내는 에세이 역시 매력적입니다. 에세이에는 그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죠. 고양이를 좋아하고 달리기에 집착하며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친근합니다. 그에게 음악은 외아들로 자라면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을 덜어준 좋은 친구였죠.

2007년 문학사상에서 나온 <비밀의 숲>이라는 제목의 수필집 중에 ‘음악의 효용’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스비야토슬라브

20대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몹시 지친 날, 망설임 끝에 찾아 간 음악회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스비야토슬라브 리흐테르의 연주를 감상한 이야기입니다.


한 20년쯤 전인 것 같은데, 시부야의 NHK홀에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를 들으러 갔다. 아직 소설가가 되기 전의 일이다.


그날은 나나 아내나 뼛속까지 녹초가 될 정도로 지쳐있던 터라 도저히 음악을 듣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자세한 것은 잊어버렸지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싼 티켓이라 아까워서 우리는 무거운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콘서트에 갔다.


마지막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연주되었다. 첫머리에 호른의 잔잔한 인트로가 흐르고 나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웬일인지 몸속의 피로가 쑥 빠져나가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포의 구석구석에 찌들어 붙어 있던 피폐함이 하나씩 씻겨지듯 사라져 갔다. 나는 거의 꿈꾸는 듯한 기분으로 음악을 들었다.


브람스의 협주곡 2번은 옛날부터 좋아해서 여러 사람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곡이 끝난 후,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얼마나 근사한 체험인가 하고 나는 감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 역시 그날 밤 나와 똑같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녀의 피폐함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네 개의 악장이 연주되는 동안에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한다.


연주회장에서 나왔을 때 봄날의 밤은 따스하고 친밀하게만 느껴졌고 우리의 눈앞에 세계와 인생이 다시금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리히터의 콘서트에 여러 번 갔다. 네 번인가 다섯 번쯤 갔던 것 같다. 매번 연주는 훌륭했다. 그러나 ‘치유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웬일인지 처음의 한 번 뿐이었다.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하루키는 이렇게 글을 마치고 있는데 — 과연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추측해 보게 됩니다. 훌륭한 연주, 치유하는 연주의 사이에는 우선 듣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몸과 마음에 힘이 빠진 상태, 즉 그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잡다한 고민과 생각에서 벗어난 상태랄까? 또 작곡가의 작품과, 그 음악을 전달하는 연주자와의 교류와 소통, 그 외의 여러 필연과 우연의 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성악가 마티아스 괴르네가 처음 한국을 찾아 세종 챔버 홀에서 노래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의 소리는 둥그스름하다 할까? 뭔가 울림이 있는 어두운듯하면서도 풍성한 저음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고음의 매력이 있어 좋아하는 성악가입니다. 첫 공연이니 기대와 설렘으로 마주했었지요.

무대에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를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노래가 입술사이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과 코와 피부 세포 사이사이로 넘쳐흘러 나오는 것 같은 독특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 날의 강한 인상은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제가 진행하던 <당신의 밤과 음악>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의 정경영 교수(한화 음악회의 해설자)를 초대해 다양한 음악이야기를 나누는 코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마티아스 괴르네의 노래를 소개하면서 마침 제가 보았던 세종 챔버홀에서의 첫 공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습니다. 정 교수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 그대로 집으로 가지 못하고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에 한참을 앉아있으면서 “인생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하루키 부부가 얻은 치유와는 좀 다른 느낌이지만 음악은 이렇게 우리에게 감동을 통해 위로와 새로운 마음과 정신, 공감의 세계로 데려가 잊히지 않는 시간을 선물합니다.

하루키 부부가 만난 이 날의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브 리흐테르,

저도 무척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피아니즘, 피아니스트로 그리고 음악가로 그가 추구했던 세계, 더불어 그가 겪어야 했던 러시아이에서의 가족사가 가슴이 아프지요. 브뤼노 몽생종이 쓴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 수첩> (이세욱 옮김, 정원 출판사 2005년)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 1960년 첫 연주를 갖는데 그의 어머니가 멀리 독일에서 두 번째 남편과 함께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동요가 심해 연주회 전에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고 연주회가 끝나고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 이튿날이 되어서야 감시원을 따돌리고 어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19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이때 에리히 라인스도르프와 브람스의 2번 협주곡을 녹음했는데 이것은 내가 녹음한 가장 나쁜 음반들 중 하나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음반을 칭찬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도 뭔가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 들어보고 또 들어보았지만 매번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땅, 빠랑, 따랑, 빠랑 하고 알레그레토의 빠르기로 가야 하는데 라인스도르프는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이끌어갔다. 그는 줄곧 서두르고 있었다.


미국에서 나에게 쏟아부어졌던 그 모든 찬사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와 청중의 관계를 해치고 있을 뿐이다.


연주회는 청중에게 뜻밖의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청중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라고 알려주게 되면 연주회는 일체의 신선함을 잃게 된다. 청중이 듣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제 어둠 속에서 연주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 머릿속에 음악과 상관없는 잡념이 끼어들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청중으로 하여금 연주자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피아니스트의 손이나 얼굴을 바라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의 손이나 얼굴은 그저 어떤 작품을 연주하는데 들이는 정성과 노력을 표현하고 았을 뿐이지 않은가?

리히터 연주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레코드 재킷

오래전 예술의 전당을 찾은 리흐테르 역시 피아노 건반 위에 작은 조명만 비춘 채 어둠 속에서 연주했습니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도 싶은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그의 독특한 태도가 아쉽기도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음악에 집중하게 해 주었지요.

몽생종이 만든 영화 ‘불복종자 리흐테르’에서 그의 천재성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그의 연주는 어떤 점에서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구별되는가? 의 질문에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히터와 루빈슈타인


“ 나는 리흐테르의 연주를 듣기 위해 일부러 유럽에서 미국으로 왔다. 그는 뜻밖에도 라벨의 세 작품을 연주했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기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찍이 피아노가 그렇게 울리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건 또 다른 악기였다.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리흐테르는 위대한 지성을 지닌 어마 어마한 음악가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면 , 피아노가 그에게 화답한다. 그는 피아노로 노래를 부른다.”

최고의 찬사지요?

그런가 하면 글렌 굴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 리흐테르는 자신의 강력한 개성을 매개로 청중과 작곡가를 연결시킵니다. 그리하여 청중은 대개의 경우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람스는 1878년 4월 이탈리아를 여행합니다. 뜨거운 태양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오랫동안 책으로만 보던 역사적인 장소와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죠. 그는 클라라 슈만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탈리아 전체가 아주 아름다운 하나의 정원이라고 생각하며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절경은 내게 천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브람스는 그 강렬한 느낌 때문인지 곧이어 1881년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뒤 같은 해 3월 빈 근교에 있는 프레스바움에 머물면서 오랫동안 구상해 온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에서 받은 인상과 솟아오르는 영감을 토대로 석 달 정도가 지난 뒤에 피아노 협주곡의 대부분을 완성했고, 그 해 여름 완성했지요. 그가 좋아하는 호른과 첼로를 독주로 세우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루게 하고 중후하면서도 장대한, 그러면서도 곳곳에 아름다운 서정성이 돋보이는 대작으로 사람들은 피아노로 연주하는 교향곡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음악학자들은 북부 독일인 브람스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밝은 인상과 햇살, 풍경의 영향이 나타난다고도 말합니다.

이 작품의 초연은 1881년 11월 9일 부다페스트에서 이루어졌는데 브람스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늦가을 부다페스트의 풍경은 어땠을까? 그 날의 청중들은 연주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가을날의 풍경이 그대로 가슴으로 스며들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저는 이 작품의 3악장을 들을 때마다 단풍이 한창 들어 숨 막히게 아름다운 가을 산을 떠 올리게 됩니다. 가을의 정점,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지요.

부다페스트의 가을

부다페스트 필하모니

이 작품은 초연에 이어 취리히와 바젤, 빈, 그 이듬해는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며 순회연주를 가졌습니다. 함부르크 연주 때는 객석에 그의 스승이었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에두아르드 마르크첸Eduardo Marxen이 앉아 있었지요. 연주를 마친 브람스는 1882년 5월 마르크젠에게 자신의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피아노와 작곡, 이론 등을 배우며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바흐와 베토벤 음악의 탄탄한 구성을 가르쳐준 스승이지요.

왠지 이 작품의 작곡 과정에서 무척 여유 있고 자신감에 넘치는 그리고 유머가 있는 브람스의 표정을 떠 올리게 됩니다

낭만주의 시대 사람들은 혁명을 거치면서 겪어야 했던 철학과 삶의 변화 속에서 갈등하며 새로 구성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야 했지요. 브람스는 20대 초반 슈만 부부를 만나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음악계에 소개된 이후 꾸준하고 성실한 음악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성공한 부르주아 시민으로 살아갔습니다. 그의 피아노 소품을 비롯한 피아노 2중주 작품들이 일반교양 있는 가정에 널리 보급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적 이상은 개인적인 순간적인 감정,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는 곡들이 많았고요, 또 이러한 순간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특별한 장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성격적 소품이라고 하는 것들이죠. 연습곡, 녹턴, 발라드, 이런 이름들이 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생겨난 장르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교향시나 광시곡 같은 형식을 만들고 환상과 상상의 날개를 펼쳐 무궁무진한 세계를 만들어갔죠. 음악으로 표현하는 세계가 더 확장됐다고 할 수 있지요.

고전주의를 지향하는 브람스 역시 2번 피아노 협주곡에서 2악장에 스케르초를 넣으면서 그로서는 드물게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펼쳐나갑니다.

그는 제자이며 친구로 지내는 여성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켄베르크 (Elisabeth von Herzogenberg)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매우 사랑스럽고도 여린 스케르초를 가진 작은 피아노 협주곡 하나를 작곡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브람스 식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는 2악장에서 거장의 솜씨를 한껏 발휘하며 서사적인 1악장과 화려한 3악장 안단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듯한데 첼로 독주로 시작하는 3악장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평소 어떻게 하면 클래식 음악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클래식 음악을 만나는 지름길은 감동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이 그 규모에 있어서 가까이하기에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대개는 아름다운 2악장에 끌려 반복해 듣다가 충분히 만끽해 내 것이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앞, 뒤의 악장이 궁금해지고 그 구조와 연결이 알고 싶어 전곡 감상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 실제 연주회장을 찾아가 한 공간에서 연주자들과 호흡하며 바라보며 감상하는 것이 좋겠지요.

젊은 날의 하루키처럼, 음악의 힘, 음악이 주는 치유를 통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체험, 영원히 기억되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 작품은 많은 피아니스트가 음반으로 남겨놓고 있는데요.

마침 실황을 담은 연주가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연결합니다. 1991년 뮌헨의 가슈타이그 홀에서의 연주(Recorded live at the Gasteig, Munich 1991,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40대의 피아니스트 바렌보임과 80을 앞둔 지휘자 첼리비다케가 만나 중후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줍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Op.83

1.Allegro non troppo
2.Allegro appassionato
3.Andante
4.Allegr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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