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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Apr 26. 2020

[남프랑스 기행 #8] 랑그독 와인으로의 초대

   Chateau de Caragulhes에서 머물다

프랑스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입니다.  우리가 이번 여행을 시작한 보르도가 가장 널리 알려진 프랑스 와인 산지이고, 부르고뉴와 루아르 그리고 알자스 까지 정말 다양하고 좋은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지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랑그독 루시용 (Languedoc-Roussillon) 지방에서도 매우 좋은 와인이 아주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이곳에서 프랑스 와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고 하고, 오늘날에도 프랑스 와인의 3분의 1 이상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랑그독 와인은 보르도처럼 세련되게 멋을 부리지도, 부르고뉴처럼 예민하지도  않아요. 와인 그 자체의 강직함과 자연스러움 지니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가성비도 매우 좋습니다.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중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프랑스인 피에르가 랑그독 지방에 와이너리를 갖고 있는데 이 지역을 여행한다고 하니까 본인의 와이너리에 있는 숙소를 이용하게 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랑그독에서 '와이너리 스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르본(Narbonne)이라는 도시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시골에 있는 샤토 드 캬라귈( Chateau de  Caragulhes)인데, 랑그독 지역에 머물면서 이 지역의 와인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분간 해외여행을 꿈도 꿀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생각하니 '좋은'이라는 표현은 너무 약한 듯하네요. '꿈같은' 시간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3층 건물은 대부분 비어있고 도마뱀이 가끔 나타난다.


프랑스에서 와인 생산자의 메인 건물을 샤토라고 하는데, 여기는 3층 건물에 1층에는 에 부엌과 식당, 테이스팅 룸이 있고 2층과 3층에 방이  있는 그런 구조입니다. 이웃이라고는 관리를 맡고 있는 부부가 사는 집이 전부이고 주변은  사방천지가 포도밭 입이다.

첫날밤 도착했을 때는 적막함이 너무 삭막하고 어색했지요. 장시간 운전한 뒤라서 몸도 피곤했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햇살이 밝게 비치고 맑고 건조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옵니다. 평화로움 그 자체입니다. 여행의 참맛이 이런 것이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늘 가슴 설레는 순간이 바로 '낯선 곳에서의 아침'인데요. 오늘은 어떤 새로운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지 기대하면서 먹는 아침식사를 하는 순간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약간 높은 지대에 펼치젼 샤토드 캬라귈 포도밭 (왼쪽).피에르와 함께 포도 재배와 양질의 포도주 생산에 열정을 쏟고 있는 세바스티앙이  시음을 위해 포도주를 따르고 있다.
샤토 카리귈의 시그니쳐 와인들. 전량 유기농 기법으로 생산되고 있어 북미지역에서 매우 인기가 있다고 한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오전 시간에 포도재배와 포도주 품질을 총괄하는 세바스티앙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나오는 와인을 시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풍부한 햇살과 맑은 공기를 품은 포도를 일일이 손을 따고 그것을 숙성시켜 만든 포도 주는 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균형이 잘 맞춰진 훌륭한 와인이었습니다. 로제 와인 Cara, 각각 특성이 다른 토양에서 수확한 레드와인 솔루스와 샤토드캬라귈이 생산되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수입하는 업체가 없다고 합니다.

랑그독 루시용은 프로방스의 서쪽에 위치합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지중해가 나옵니다. 랑그독 와인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초승달 모양의 드넓은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랑그독의 토질은 매우 다양합니다. 해안 가까운 곳은 충적토, 내륙으로 들어가면 백악질과 자갈, 석회질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기 때문에 남부 론 Rhone  와인과 프로방스 와인의 형제 같은 와인입니다.

지중해에서 가까운 이곳은 로마인들이 정착해 포도재배를 시작했지요. 프랑스에서도 초기에 포도나무가 재배된 지역입니다.  너무 양이 많다 보니 20세기 초까지 랑그독 와인은 그저 평범한  대량 생산 와인으로 분류되고 심지어 물보다 싸게 팔리기도 했답니다. 랑그독 와인 생산자들은 품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었고,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너무 낮은 포도 대신 다른 농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와인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포도 재배자 수도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지요.

그러나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겠다는 철학과 전문 양조기술을 갖춘 소규모 생산자들이 구원투수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높은 지대에 위치한 뛰어난 포도밭에서 특징이 강한 와인을 만드는데 주력합니다. 특히 이들 생산자들은 화학적 약제를 재배과정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은 바이오 농법으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실천합니다. 샤토드캬라귈의 와인들은 이런 변화의 산물입니다. 과일향과 태양의 기운을 담은 순수하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와인이지요.

소규모 생산자들은 병입시설을 설치할 여력이 없겠지요. 어떻게 하나 했는데 이동식 시설을 이용하고 있더랍니다. 덤프트럭 한대로 병입부터 포장까지  뚝딱!

샤토드캬라귈에서 머물면서 주변 도시들로 나들이도 했습니다. 수도원 구경도 하고, 나르본이라는 곳에 가서 오래된 성당 구경도 하고.. 긴 여행 중 휴식과도 같은 평화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이어서 주변 지역 나들이 얘기도 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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