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영혼을 새긴 도시
나르본
샤토 드 캬라귈에 사흘간 머물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의 나르본과 캬르카손에도 나들이를 갔습니다. 나르본은 랑그독 루시용 지방의 포도 재배지 중심부에 위치한 중간 규모의 도시입니다. 나르본으로 가는 길에 퐁프루아 수도원을 들렀다는 얘기는 9회에서 했습니다.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계곡에 웅장한 중세의 수도원과 정원, 그리고 김인중 신부님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을 보고 나르본으로 향했습니다.
로마인들이 통치하던 시절 프랑스는 스페인과 함께 로마제국의 곡물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나르본은 BC1세기에 갈리아 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로마로 실어 나르는 중요한 항구였고 이후 가장 번창한 때는 아마도 13~14세기였던 것 같습니다. 나르본에서는 1272년에 처음 지어진 고딕 성당이 유명합니다. 생쥐스트 에 생파스퇴르 대성당인데 성당에 갔을 때 마침 파이프 오르간을 누군가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미사 시간이 아닌데 연주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18세기에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제작자가 만든 것으로 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정확하면서도 중후한 소리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공간에 충만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 성당은 14세기의 조각과 함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벽장식용 태피스트리가 유명합니다. 마들렌 예배당은 14세기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나르본의 성당 주변을 돌아보다가 오래된 창고 건물 벽에 시가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벽에 ‘시인들의 영혼’(l’Ame des Poetes)이라고 쓰고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셔터만 눌러도 그림 같고 한 장의 포스터 같지요? 파리에서 생쉴피스 성당 근처 건물 벽에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적어놓은 것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말이죠. 나르본에도 이처럼 벽에 시를 써놓은 것을 보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한데 지나가는 나그네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긴 시간, 긴 시간, 긴 시간이 흘러
시인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들이 지은 시는 여전히 거리에 흐르고
사람들은 조금은 그 시를 즐기겠지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들의 심장이 누구를 위해 뛰었는지도 모르는 채
때로는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바꾸기도 하겠지
불현듯 떠오르는 대로말이지
사람들은 노래하겠지
라 라 라 라 라....이렇게 말이야
제가 1절을 번역해 봤습니다. 멋지네요.
이제 나르본은 ‘시인들의 영혼을 새겨 놓은 도시’로 나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화려한 , 고색창연한 것만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아니라는 것을 나르본에서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시인의 고향에 가 보면 시비를 만들어 세워 놓은 것을 많이 봅니다만 나르본에서처럼 멋진 것을 보진 못한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