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세한도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의사 손창근 선생 “심사숙고 끝에 내어놓았다.”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조선 후기의 학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제180호입니다. 전문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선비가 그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린 연유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스승 추사를 위해 그의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이 새롭게 들어온 중국의 금석문 등 문물 자료를 모아 스승에게 보내 주자 이를 고맙게 여긴 추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리고 글을 지어 선물한 것입니다. 그 화격이나 고고한 필의로 보나 조선왕조 500년의 걸작으로 꼽힐만합니다.

금석문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청나라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김정희는 1840년 윤상도의 투옥 사건에 관련되어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상적은 청의 연경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추사를 멀리하고, 떠나갔지만 이상적은 권세를 따르는 세속과 달리 문하의 구의를 잊지 않고 궁색하고 위태로운 경지의 완당(阮堂, 김정희 자신)에게 정의를 다했습니다.

몹시 추운 날 추사는 붓을 듭니다. 논어의 구절 중 '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름이 돋보인다'는 구절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오래도록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 적힌 인장을 찍었습니다. 이 그림을 받은 제자 이상적은 청나라 문인 16인에게 선보이고 그 작품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도 오세창, 이시영 등 여러 주요 인물들이 감상글을 적었습니다. 세한도는 폭 23cm, 너비 약 70cm인데 왼쪽에 붙은 발문은 13m나 됩니다. 추사의 고귀한 정신이 응축된 세한도를 통해 그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후대의 마음과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59세의 환갑을 넘긴 추사가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달픔과 메마름을 건조한 먹과 거친 필선(갈필)으로 엉성하게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담긴 의미 있는 주제와 어우러져 고도의 예술적 에너지를 함축하게 한 걸작입니다. 고고된 유배생활을 근근이 버티던 그에게 세한도 속의 소나무는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는 추사 본인이었으며 잣나무는 그럼에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선비정신, 그 기개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이 귀한 문화유산을 대를 이어 소장해 온 손창근(91)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의사를 밝혔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세한도를 기증 의사를 전달하시며 "심사숙고 끝에 내어 놓았다"라고 간결하면서도 확고하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이로서 세한도는 국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금전으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무가지보, '김정희 필 세한도'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와 뜻을 보고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손창근 선생의 ‘세한도’ 기증 의사는 2018년 11월 ‘손세기ㆍ손창근 컬렉션 202건 304점 기증’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손창근 선생은 200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한 문화재는 203건 305점에 이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창근 선생의 기증의사를 존중해 세한도 기증과 관련된 모든 제반 업무절차를 진행 중이며 공식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세한도를 언론에 공개하고 , 이어 11월에 특별전시를 연다는 계획입니다.

선친 손세기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고귀한 나눔의 정신을 높이 사야 할 것입니다.

손창근 선생은 그동안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 1억 원 기부, 2012년 경기도 용인 소재 200만 평 산림 국가 기부(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7년 KAIST 건물 및 연구기금 총 51억 원 기부 등 끊임없는 기부 활동으로 사회 공익에 이바지해왔습니다. 2代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사재를 국가와 교육기관에 기증하며 그동안 보여준 故 손세기·손창근 선생의 그 큰 뜻이‘세한도’를 통해 다시 한번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평소 근검절약하며 수집한 문화재들을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기증하겠다는 손창근 선생의 결단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후손에게 다시 돌려주는 소임을 맡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지중지했던 세한도는 개인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건한 마음, 정신적 고달픔 속에 선비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추사의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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