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과 인문학의 로맨스2]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커버이미지 : 고상우 작 '운명' (사비나미술관 제공)


글 황헌 (방송인, 시사평론가)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셰익스피어

서양의 대표적 경구로 알려진 이 말은 바로 영국과도 바꿀 수 없다는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문장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비롯해 “브루투스 너마저!”, “눈이여! 손이 하는 일을 보지 말라.” 등 수많은 경구나 명언이 될 표현을 후세 인류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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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의 명언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가 어떤 문맥과 배경에서 나온 건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 원전인 <베니스의 상인>이 어떤 작품이고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쓰였는지를 알아보자.

<베니스의 상인> 하면 누구나 유대인 수전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떠올릴 것이다. 특히 샤일록이 돈을 기한 안에 갚지 않은 채무자에게 가한 가혹에 대한 앙갚음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살만 베어 가고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하라는 통쾌한 판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던 우리들 아니었던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은 1596년경에 집필되었다.

줄거리를 요약해본다.

이야기의 무대는 16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근처 벨몬트. 주요 등장인물은 미모를 자랑하는 부유한 상속녀 포샤와 그녀에게 구혼을 하게 되는 바사니오라는 청년, 그의 친구이자 해상무역 사업가인 안토니오, 그리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유태인 샤일록 등이다.

수전노처럼 고리로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는 서민들을 착취하는 유태인 샤일록을 평소 못마땅해한 게 안토니오였다. 그래서 그 자신은 늘 싼 이자로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을 해줬다. 샤일록의 입장에선 안토니오는 눈엣가시였다. 그런데 포샤에게 구혼을 하려던 바사니오는 돈이 모자라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3천 두캇의 급전을 요구했다. 두캇은 금화의 단위이다. 따라서 3천 두캇은 요즘으로 치면 적어도 수억 원 이상의 거액이다. 하지만 평소 여유가 있던 안토니오도 그 시기엔 돈이 모자랐다. 해상 무역선이 두 달 뒤에 귀항하고 그때까지는 자금이 없었던 터라 궁여지책으로 샤일록을 찾아가게 된다. 샤일록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3천 두캇을 빌려준다. 단, 석 달 동안 이자는 한 푼도 받지 않겠지만 차용증에 명기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위약금으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베어낸다는 조건을 달았다. 안토니오는 두 달 뒤 상선이 돌아오니 큰 문제없겠다 싶어 그 계약에 서명을 하고 돈을 빌린 것이다.

친구의 목숨 건 보증 덕분에 바사니오는 벨몬트로 포샤에 대한 구혼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포샤의 아버지는 함 고르기를 통해 딸의 신랑감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신랑이 되려는 청년은 누구나 금,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함 가운데 포샤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함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금으로 된 함 겉에는 ‘택하는 자는 만인이 소망하는 것을 얻으리라.’라는 문구가 있었다. 은함에는 ‘택하는 자는 그 신분에 합당한 것을 얻으리라.’라고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납으로 된 함에는 ‘모든 것을 내놓고 모험을 해야 하느니라.’라는 문구가 있었다. 후보들은 대개 금이나 은으로 된 함을 열었다. 모든 것을 내놓고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만인이 소망하는 것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모로코의 영주는 금으로 된 함을 열었다. 그러자 그 함 속에는 해골과 함께 ‘반짝이는 것은 다 금이 아니다.’라는 쪽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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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Testament.jpg?zoom=1.5&amp;w=1080&amp;ssl=1 셰익스피어의 친필원고

셰익스피어의 원문은 이렇다.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 그대는 이 말을 자주 들었으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내 겉모양에 홀려 그 숱한 생명을 팔았다. 황금으로 도금된 무덤 속엔 구더기가 우글댄다.” (베니스의 상인 2막 7장 65-69)

이렇게 모두가 금함이나 은함을 열었다가 포샤의 짝이 되는 데 실패했고 마침내 바사니오의 차례가 되었다. 바사니오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험을 선택했다. 세상만사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일찍부터 터득해온 결과였다. 그리고 마침내 납으로 된 함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아름다운 포샤의 초상화와 함께 ‘겉모양만 보고 선택하지 않은 자여, 그대는 운이 좋았다. 잘 선택했노라.’라는 문구가 적힌 쪽지가 나왔다. 포샤 역시 바사니오를 맘에 두고 있던 터라 너무나 잘 된 선택의 결과를 보고는 바사니오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이 반지를 버리거나 남에게 주지 말라고 하면서 혹여 반지를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순간 사랑이 변한 걸로 알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바사니오는 미모의 상속녀를 배필로 맞게 되었다. 그런데 일은 늘 꼬이는 법. 바사니오에게 거액을 빌려준 안토니오가 고난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두 달 후 오기로 했던 그의 상선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샤일록과 약조한 기일이 당도했다. 안토니오는 파산을 하고 만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파산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복수의 칼을 간다. 베니스에서는 샤일록의 요청에 의해 개최된 법정에서 계약서에 명시된 안토니오의 살 1 파운드를 요구한 상태였다. 안토니오는 꼼짝없이 살 1 파운드를 베어내는 극형에 처하게 된 셈이었다.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때 재판관으로 포샤가 남장을 하고 등장했다. 재판 심리 과정에서 포샤는 여러 차례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샤일록은 계약서대로만 하라며 거부했다. 결국 포샤는 판결을 내린다.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잘라가라고 허락을 한다. 샤일록은 기대했던 판결이라며 좋아한다. 그러나 판결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포샤는 “살 1파운드를 잘라가되 계약서에는 피에 대한 권리는 없으므로 피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베어 가야 하며 1 파운드의 살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당황한 샤일록은 그냥 원금의 3배만 받겠다고 했다. 포샤는 그러나 계약서대로 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이 멋진 판결에 힘입어 수전노 샤일록은 살인 기도의 혐의로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에 처한다. 위기에 처한 샤일록을 구해준 사람은 안토니오. 그는 두 가지 조건을 법정에 제시했다. 샤일록이 기독교도로 개종하고 재산 절반을 딸에게 양도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조건은 받아들여졌고 모두가 행복하게 결말이 나는 것으로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을 닫는다.

그런데 포샤는 남편을 시험하고 싶었다. 앞서 바사니오가 자신을 선택한 날 끼워준 반지를 주며 그 누구에게도 줘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약속을 시험한 것이다. 포샤는 바사니오에게 재판의 대가로 자신이 준 반지를 판사인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포샤는 고민 끝에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준 안토니오의 우정을 생각해 반지를 넘겨주게 된다. 판사이자 부인인 포샤는 남편에게 크게 실망한다. 먼저 벨몬트로 돌아온 포샤는 반지 관련 일을 핑계로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만 이내 용서한다. 젊은 연인들은 모두 사랑의 노래를 즐겁게 합창하면서 포샤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이 유쾌한 작품을 통해 표리부동한 세상을 풍자하는 동시에 기독교가 지배한 서유럽 사회에서 유태인의 의미를 아울러 기록하였다.

옛 <정통종합영어(후에 ‘성문종합영어’)>에는 바로 이 표현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의 원문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라는 문장 외웠던 기억들 독자 여러분들도 어렴풋하게나마 있을 줄로 안다. 이 평범하고 유명한 격언의 뿌리에 바로 셰익스피어의 겉과 속이 다른 세상에 대한 풍자의 희곡 줄거리가 숨어있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이 글 읽는 재미는 충분하리라 본다.

또 한 가지 유태인을 바라보는 유럽 사람들의 생각을 셰익스피어의 설정으로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아시다시피 유태인들은 구약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서 예언된 메시아는 아직 재림하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다. 예수가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메시아로 와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신 것임을 믿는 기독교의 입장에선 유태인들은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미 16세기부터 유태인들은 제도권에서 통치자의 반열에 들어갈 수 없었고 그래서 사채업자나 유리나 금속 세공업, 여관업 등에 종사했다. 샤일록도 바로 그런 사람으로 설정되었고 그의 죄악을 갚는 조건으로 기독교도로 개종하게 만든 것의 배경에 서유럽 사람들의 유태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녹아져 있는 것이다. 그 유태인들에 대한 그 뿌리 깊은 부정적 이미지 속에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 같은 비뚤어진 혐오도 나왔고 ‘드레퓌스 대위 사건’ 같은 어른스럽지 못한 치부도 드러났다. 그리고 오늘날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의 건국을 가능케 한 것도 미국과 유럽에서 군수업체와 금융재벌을 장악한 유태인의 역할이 커튼 뒤에서 있었다. 쑹홍빙의 <화폐전쟁>에 나오는 유태인 거대 금융재벌의 이야기와도 이어지는 대목이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문장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후세 사람들에게 겉이 번지르르한 사람, 언변이 화려하거나 말만 앞세우는 사람보다는 납처럼 입이 무겁고 당장의 이익보다는 진중한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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