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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ul 10. 2024

태초의 빛으로 초대_ 퐁피두센터 방혜자 특별전

2024.6.25~2025.3.10,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 5층

한국 추상미술 1세대 작가 고(故) 방혜자 화백(1937~2022)은 ‘빛의 화가’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어릴 적 맑은 개울물이 비친 영롱한 빛을 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방 화백은 생명과 우주를 상징하는 빛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해 내는데 일관했다. 한지와 부직포(지오 텍스타일)를 접고 구기고 펴가면서 앞뒤에 광물성 천연안료와 식물성 염료로 여러 차례의 붓질을 하면 어느 사이 깊은 색들이 배어나고 우러나며 신비로운 빛의 세계가 완성된다. 자그마한 몸집으로 숨을 모아 붓질을 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난 2022년 빛의 세계로 떠난 고 방혜자 화백의 회고전이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지난달 25일 개막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리 방문길에 퐁피두센터를 찾았다. 그 전날에도 갔다가 노조파업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헛걸음을 했던 터였다. 저녁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만약 파업이 이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오픈 시간(오전 11시)에 맞춰 갔다. 다행히 문을 열고 있었다.

퐁피두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방혜자 특별전 전경 (사진 함혜리)

안내데스크에서 전시장소를 물으니 현대미술관이 있는 5층 39번과 40번 방이라고 알려준다. 퐁피두센터는 종합 문화센터로 극장과 공연장, 도서관이 있고 4층과 5층에 국립현대미술관(Musee National d’art modern)이 위치한다. 5층에는 1905년부터 1960~70년대의 미술 사조와 주요 작가들의 회화 작품과 건축, 디자인, 사진, 필름과 비디오 등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4층에는 20세기와 21세기의 중요한 미술 흐름을 테마별로 전시한다. 퐁피두센터는 유럽 유수의 미술관 중에서도 가장 방대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데 여기에 지속적으로 구입을 하기도 하고 기증(도네이션)이 이뤄지면서 전시 작품들이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방혜자기금에서 작가의 작품 13점을 미술관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열리게 됐다.  

피카소, 칸딘스키, 미로, 브라크, 피카비아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 눈도장을 찍으며 39번과 40번 방으로 왔다. 화백의 생전에 익숙하게 보아 온 작품들을 다른 서양의 거장들이 남긴 마스터피스들과 같은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퐁피두센터 방혜자 특별전 전시장에 부착된 방 화백의 작업 모습  

전시에는 생루이성당의 살 페트리에르에서 선보였던 매달린 실린더 모양의 설치작품 ‘지구의 빛’ (2009) 3점을 포함해 30점이 선보이고 있다. 기증받은 작품 13점, 미술관 구입작품 1점 외에 나머지는 개인 소장인 작가의 초기 작품이 회고전을 위해 출품됐다. 이외에 작가의 드로잉 노트, 영상 인터뷰 등이 함께 선보이고 있다. 

올리브색 바탕에 빛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빛의 환희’(2020)와 나란히 걸린 작품은 미술관에서 구입한 작품은 2020년 작 ‘빛의 탄생’이다. 화백 작품의 대표성을 띠는 작품으로 하늘의 파란색과 땅의 붉은색, 초목의 연두색이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빛이 있다. 한지에 광물성 천연안료를 사용한 작품이다. 

구긴 한지에 순수한 안료와 금박을 결합한 시리즈 작품 ‘빛에서 빛으로’(2014)는 물질과 빛의 동등성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종이의 다양한 강도에 따라 주름의 질감이 미묘한 그러데이션을 보여주며 색조의 대조가 드러나는 효과를 낸다. 이 모티프는 원의 모티브와 함께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위한 작품에도 들어가 있다. 

방혜자, ‘무제’(1987), 퐁피두센터 소장

40번 방에서는 화백의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961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파리의 외국인화가들’ 전에 출품했던 ‘지구의 중심에서 2’(1960)는 화백의 초기 추상작품으로 한국 전통문화와 유럽 아방가르드의 만남을 묘사한다. 어둡고 신비로운 동굴을 표현한 서정적 추상화로  화백이 도불 전에 방문했던 경주의 석굴암에서 느낀 영적인 분위기를 담은 작품이다. 화백은 1968~1976년 한국에서 지내면서 프랑스 응용미술학교( Ecole des Arts et Metiers)의 스테인드글라스 수업을 받았다. 물질에 의해 형성된 색과 그 효과를 접하면서 재료가 가죽, 사포, 유리 등으로 확장되고 작품은 훨씬 명상적인 추상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방혜자,‘부활의 찬가’(1972)

‘부활의 찬가’ (1972)는 평화와 지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영적인 발전을 수반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2폭을 이어놓은 ‘무제’(1987)는 한지에 천연 안료를 칠해 빛의 번짐으로 우주의 신비를 표현한 작품이며 3폭이 이어지는 작품 ‘무제’(1988)는 대지의 평화를 노래한다. 1987년부터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는 작품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빛에 대한 작업을 통해 과학적 영상에 의존하지 않은 채 천문학적 풍경을 창조해 낸 작품에 대해 미술평론가 피에르 카반은 “상상된 우주에 대한 제안과 진동을 묘사한다”는 평을 했다. ‘우주’ 시리즈 중에서 빅뱅을 그린 것 같은 작품 ‘우주’(1989)를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방혜자,  ‘빛의 탄생’, 2020

방 화백의 오랜 벗이자 미술평론가인 샤를르 쥘리에는 ‘방혜자 예술의 정신적 차원’이라는 평론에서 ‘고요한 침묵의 작품은 우리에게 단순함과 더불어 충만하게 성취한 자에게만 다가오는 빛을 추구하며 정진한 고행자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퐁피두센터에 전시된 화가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강렬함은 없으나 은은하고 고요한 태초의 우주와 같은 화가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듯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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