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재단 미술관 '엘리워스 켈리'전 _형태와 색채의 향연
파리 16구 불로뉴숲에 위치한 루이뷔통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이 화제 속에 개관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미술관의 화려한 외관이 볼 때마다 경이로운 이곳은 개관 이래 늘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기 때문에 파리에 가면 반드시 들러보는 미술관 리스트에 올라있다. 올해는 미니멀 추상미술의 대가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1923~2015)의 회고전 ‘엘스워스 켈리 : 형태와 색채, 1949-2015(Ellsworth Kelly Formes et Coueurs, 1949-2015)’를 5월 5일부터 9월 9일까지 열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지만 켈리는 70년에 걸친 경력과 작품 활동 등으로만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당대 최고의 추상예술가 중 한 명이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글렌스톤 박물관 및 엘스워스 켈리 스튜디오와 협력하여 루이 뷔통 재단에서 주최하는 이번 회고전에서는 추상 표현주의가 주도하는 20세기 후반의 미술 지형에서 꿋꿋하게 모노크롬 회화와 조각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의 갤러리 1~4에는 100점이 넘는 색면 회화와 드로잉, 조각, 사진, 콜라주 작품이 전시되어 엘스워스 켈리 예술의 풍부함과 깊이 있는 예술적 성찰의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추상 및 미니멀리즘 운동의 거장으로 꼽히는 켈리의 작품은 밝은 색상, 단순한 모양, 대비, 신중한 조합 등 어떤 트렌드와도 무관한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회화든, 입체든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색채 덩어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는 단순한 형태와 순수한 색채로 형태를 강조하는 회화와 조각으로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과감한 미니멀한 추상미술을 추구하며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이끌어낸다. 엘스워스 켈리는 일찍이 캔버스를 벗어난 회화를 추구하며 도형, 색상, 공간, 선 등의 연관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루이뷔통재단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작가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물게 공개되는 사진, 드로잉 시리즈, 초기 회화, 콜라주, 단색화 작품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갤러리 1,2에서는 초기 작품 중 벽을 위한 색면회화들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보스턴미술관 부설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8년 파리로 떠나 6년간 체류했다. 1950년대부터 그림의 일반적인 형식을 넘어서고 싶다고 마음먹은 그는 파리 체류 기간 중 오브제인 동시에 회화라는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냈다. 파리에서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켈리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모노크롬 회화 타블로 베르 ( Tableau Vert, 1952)를 제작했다.
전시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갤러리 2에서 볼 수 있는 엘스워스 켈리의 선구적인 장소특정적 회화 작품인 ‘Yellow Curve’(1960)다. 60m²가 넘는 크기의 노란색 커브가 특별히 마련된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은 처음에 프랑크푸르트의 포르티쿠스 아트센터를 위해 고안되었고 이후 미국 메릴랜드주의 글렌스톤미술관에 재설치됐다. 앞서 노란색 커브는 벽에 설치되어 있지만 켈리는 작품의 개념을 지시하면서 관람객과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형태와 색채에 의해 유발되는 감각을 배가시키도록 공간과 작품의 차원을 모두 재창조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켈리가 남긴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라 벽이 아닌 바닥에 노란 커브가 설치됐다.
1954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형태와 색채가 조화를 이룬 그의 작업은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미술관의 이스트 빌딩 아트리움과 같은 중요한 장소특정적 벽화작업 등으로 이어졌다. 건축물의 벽과 공간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구성작품을 선보인 그는 조각 혹은 공간으로 작품의 영역을 확장했다.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내부 벽화(1999), 로스앤젤레스 매튜 마크스 갤러리 외벽(2011), 텍사스주 오스틴의 텍사스대학 블랜턴 미술관(2015) 등 주요 작품들은 모형 혹은 사진들로 갤러리 3에서 선보이고 있다.
켈리가 생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제작한 장소특정적 벽화 작품은 루이뷔통 재단의 강당(오디토리움)을 장식하기 위해 2014년 커미션 한 기념비적인 작품 ‘스펙트럼 Ⅷ’이다. ‘스펙트럼 Ⅷ’은 강당의 층고와 같은 길이로 된 세로 패널 12개를 연결한 것으로 노랑부터 시작해 연두 초록 파랑 보라 빨강 오렌지에서 다시 노랑으로 끝난다. 오디토리엄의 벽에는 ‘색 패널(Colored Panels)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보라’가 함께 설치돼 ‘스펙트럼 Ⅷ’과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켈리의 원색에 가까운 산뜻하고 강렬한 색채 패널들이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오브제와 같은 건물의 흰색 벽과 어우러진 모습은 거대한 색종이를 무심하게 오려내어 벽에 붙여 놓은 것 같아서 관람객에게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를 보는 내내 색채의 놀이터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전시는 9월 9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