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전시] 금기숙, '패션아트'의 세계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2025. 12. 23~2026. 3. 15. 서울공예박물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가장 조명받았던 것은 피켓요원의 의상이었다. 흰 눈을 타고 내려온 요정이 입었을 법한 환상적인 의상은 하얀 철사에 비즈, 구슬을 엮고 꿰어 만들어 걸음을 걸을 때마다 영롱한 빛을 발했다. 한복의 구조와 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존에 반사체로 사용했던 노방과 스팽글을 떨림의 주체로 삼아 눈을 형상화 한 '눈꽃요정' 의상은 한국미의 정체성을 세계 무대에서 새롭게 시각화했을 뿐 아니라 금기숙 작가가 매진해 온 '패션 아트(Fashion Art)' 장르가 순수 조형으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입을 수는 없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미적 감동을 안겨주는 '패션 아트' 의 개념을 정립하고 예술활동을 이어 온 작가 금기숙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기증 특별전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이 12월 23일부터 내년 3월 15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다. 철사와 알록달록한 비즈, 구슬 등을 엮어 만든 작품들이 조명을 받아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심지어 알미늄 호일이나 스펀지, 버려진 천으로 만든 작품도 '아름다움'에서는 빠지지않는다.

작가는 총 55건 56점, 약 13억 1천만 원 상당의 작품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했다. 초기 패션아트 실험작부터 대표적인 와이어 드레스와 한복 조형 작품, 최근의 업사이클링 작업, 아카이브 자료 등이 포함됐다. 기증작품을 중심으로 공예와 아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패션아트가 한국 공예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2022년 故유리지 작가의 기증특별전에 이어,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대규모 기증전이다.

KakaoTalk_20251222_234525279.jpg 금기숙의 기증 특별전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전시전경 (사진 함혜리)

금기숙 작가는 전시 개막에 앞서 22일 열린 프레스 프리뷰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많은 관심을 받았고 예술장르로서 패션아트가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면서 기록으로 남겨야할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공예에서 출발한 패션아트를 예술로 인정해 주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줄 수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 자식같은 작품들을 떠나보내는 건 섭섭한 면도 있지만 기증이 ‘단순히 작품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창작의 시간과 사유를 다음 세대에 건네는 가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한다"며 "기증된 작품들이 체계적으로 연구·보존되어 한국 공예의 역사와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금기숙은 한국에서 개념을 정립한 ‘패션아트(Fashion Art)’ 예술활동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킨 선구적 작가이다. 1990년대 초 ‘미술의상’ 개념을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의상을 예술로 확장시키는 가운데, 철사·구슬·노방·스팽글·폐소재 등 비전통적 재료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작가는 의상을 ‘입는 예술(Art to Wear)’에서 패션아트(Fashion Art)로 확장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조형 예술로 전개하며 패션 아트의 지평을 넓혔다. 한국패션문화협회 회장, 국제패션아트연맹(IFAA)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패션아트’의 장르 안착과 국제교류 및 세계화를 이끌었고, 오늘날까지도 연구와 창작을 아우르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P1077882.jpg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피켓요원 의상 '눈꽃요정'(2018) 앞에서 선 작가 금기숙 (사진 함혜리)

한국의 패션아트는 1960년대 미국의 ‘Art to Wear’ 운동에서 출발해, 복식을 착용 여부를 넘어선 예술 표현으로 확장해 온 흐름이다. 이 개념은 1980년대 중반 한국에 ‘미술의상’으로 소개된 이후 의상을 중심으로 퍼포먼스·무대의상·일러스트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포괄하는 장르로 재정립되어 발전해 왔다.

작가가 자주 사용해 온 키워드를 조합해 제목을 단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의상에서 조형으로’, ‘조형에서 공간으로’ 확장되는 금기숙의 40여 년에 걸친 창작 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작가가 어떻게 꿈꾸고 실험하며 마침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이다.

1부 'Dreaming'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손의 감각에서 출발한 작업의 원형을 금기숙의 자전적 언어로 소개한다. 어린 시절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던 놀이가 철사와 구슬을 엮는 행위가 이후 어떻게 철사와 구슬, 리본을 엮는 패션아트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대표작 '백매'(2024)를 소개한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공중에 떠있는 작품이 마치 한마리 우아한 백조같다. 빛의 방향에 따라 표면이 미세하게 반짝인다. 작가는 "봄마다 하얀 꽃을 피우던 우리집 정원의 백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매화의 생명력과 시간의 흐름을 함께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백매, 2024, 철사, 비즈.jpg '백매'(2024)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2부 'Dancing'은 재료와 형식, 개념을 끊임없이 확장해 온 금기숙 작가의 작업 스펙트럼을 본격적으로 펼쳐보이는 공간이다. 철사, 구슬, 노방 등 비전통적 재료를 활용한 대표적인 패션아트 작품들을 통해, ‘의상이 조형으로’, ‘조형이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90년대 후반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많은 사회적 우려와 불안감이 팽배하던 시기였어요. 어느날 거미줄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데 햇빛이 비치면서 프리즘 효과로 무지개가 보였어요. '희망'이라는 의미가 떠올랐고 철사에 구슬이나 비즈를 꿰고 엮어 만드는 작품을 시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1995년 제 1회 광주비엔날레 국제미술의상전 《경계를 넘어》에 출품됐던 '진사 연화청자 드레스'(1995)부터 직물, 철사, 비즈 등을 활용해 '입는 예술'을 개척하던 초기의 실험작과 다양한 표정의 드레스와 재킷, 부조와 설치 작업이 그림자와 어우러져 마치 춤을 추듯 배치되어 금기숙 패션아트의 정수를 보여준다. 검은색 철사와 비즈로 만든 'Flying Up'은 목 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해 마치 글래머러스한 여인이 서있는 것 같다. 철사와 구슬, 노방을 활용해 제작한 '연화드레스'(2025)는 진흙속에서 피어나지만 고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연꽃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금기숙 기증특별전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포스터 2.jpg

'Enlightment' 연작은 단일 의상 형식을 넘어 작업을 공간과 벽으로 확장한 작가의 부조설치작업이다. 철사와 비즈로 형성된 선과 조명이 만나 벽과 바닥에 또 다른 그림자와 반사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구슬과 스팽글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리듬을 만들어 낸다. 버려진 철사, 은박 포장지, 빨대와 스펀지, 단추 등 폐재료로 만든 작품들을 통해, 패션아트가 환경과 생태, 새활용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소개한다.

3부 'Enlightening'에서는 한복의 선과 색, 흔들림과 여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소개한다. 금기숙은 학부에서 의류직물학을, 석박사 과정에선 복식미학을 전공하고 박사논문으로 '조선시대 복식에 표현된 한국인의 미의식 연구'를 썼다. 한국미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몰두해 온 작가는 한복이 지닌 유려한 곡선과 색채, 고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복식의 조형적 특성을 탐구해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변환한다.

여인의 저고리와 당의, 직령, 사대부의 학창의까지 전통 복식에서 발견되는 한국적 미감을 철사와 비즈, 구슬로 지은 작품들은 독창적이고 조형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철사의 유려한 곡선은 곡선미와 여백의 미를 구현하며 전통의 선을 시각화했고 구슬과 스팽글은 그 면을 채우면서 색으로 빛을 발한다.

한국미의 재해석에 주목한 3부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 피켓요원의 의상 '눈꽃요정'(2018)들을 만날 수 있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적 조형 언어가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시각화되고 기억되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의미도 지닌다.

4부 '아카이브' 코너는 패션아트가 단순히 예술적 의상 제작을 넘어 퍼포먼스, 무대, 이미지까지 포함된다는 확장적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섹션이다. 작가의 드로잉, 작업 노트, 스티치 작업 등을 통해 작가의 사유 과정과 다양한 디자인 연구·디자인 활동을 소개한다.

박물관 1층에 꾸며진 5부 '공간을 향한'에서는 유람선, 건축물의 로비 공간 등으로 확장된 금기숙 작가의 설치 작업을 전시한다. 이를 통해 패션아트가 신체를 넘어 공간과 환경을 구성하는 공공 조형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물고기, 물방울 작품 설치 전경.jpg 물고기, 물방울 작품 설치 전경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금기숙 작가의 작업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026년 1월 6일(화)~3월 12일(목)까지 총 16회의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1회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워크숍 8회는 작가가 직접 참여해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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