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그리기

꺼끌하고 미끄덩한

by hyesae

붉은 상처의 색과 꺼끌꺼끌하고 미끄덩한 질감은 내 기억 전체에 필터처럼 껴있다.

내가 느낀 모든 감정과 기억들은 모두 이 질감 위에 기록된다.

이는 아토피를 설명하지 않고는 나를 온전히 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부드러운 텍스처 위에 매끈한 피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만 그리고 싶은 나의 욕망은 배경을 칠함과 동시에 실패한다.


<상처들 The wounds>, Oil painting on canvas, 2024


잠깐 멈추고 그려진 상처를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한 번 보고, 캔버스에서 멀리 떨어져서 한참을 또 바라본다.

몸의 상처와 얼마나 비슷하게 그렸는지, 어느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할지 체크한다.

그리고 다가가 수정한다.

여러 번 반복한다.


나는 나의 상처를 묘사한다.

그것은 사실적일수록 마주하기 힘들다.

그러나 작품으로서, 그 아픔이 제대로 전달된다면 성공한다는 아이러니에 놓인다.


또한 내 몸에 새겨진 붉은 얼룩들이 캔버스로 옮겨지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아트웍이 된다.

내 몸을 그려 보여주는 것이지만 진짜 내 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며, 그림 속 나의 몸은 타인의 몸이 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그림을 보는 사람(관람자)에 따라 상처 난 몸은 누구의 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관람자는 그림 속 인물에 자신을 대입할 수도, 닮은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그림의 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입힐 수도 있다.

나의 상처들이 내 몸 밖을 벗어나 다른 형태와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것 - 이 효과에 기대어 나를 보여줄 용기를 조금씩 얻는다.

캔버스를 앞세워 나를 조금씩 드러내는 연습을 한다.


이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아토피 위에 컴플렉스가 아닌 다른 의미가 덧씌워질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이 그림들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게 될지 궁금하다.


버겁고 더디지만, 오늘도 몸의 상처를 옮겨 그린다.

얼룩덜룩하고 미끄덩한 이야기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