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Yard (뒤뜰) 화단에 알록달록한 봄꽃을 심어 볼까 하고 내 눈에 예쁜 화초들을 몇 개 샀다. 집에 와서 화초를 심으려고 땅을 파보니 화단처럼 보이지만 콘크리트 위에 얕게 흙을 뿌려 놓은 정도의 깊이라 화초들을 화단에 심으면 뿌리를 깊게 내리진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초들의 숫자를 세서 그 수에 맞게 화분을 사러 다시 나갔다.
집에 와서 화초와 화분을 짝지어 보니 화분 중 몇 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어울리지 않고 화분의 크기도 애매하다.
하려고 맘먹은 것을 하루에 해치우고 싶어 흙으로 빚은 무거운 화분 여러 개를 차에 싣고 다시 집을 나섰다.
집에서 찍어온 화초들의 사진을 진열된 화분에 대어보며 열심히 화분을 고르는데 플라스틱 라벨에 '건조하면 건조한 대로 습하면 습한 대로 잘 자란다'는 Platinum Beaut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잎을 늘어뜨리고 있는 녀석들이 눈에 띄었다.
Excuse me? Your Name is... Platinum Beauty???
이게 너의 이름?
본명 아니고 가명이지?
이름과 실제 모습이 매칭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주책맞게 발산하는 상상력으로 혼자 빵 터졌다.
"혹시 성함이 '김 꽃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어디서나 잘 자라고 관리가 쉽다고 하는 것조차 'Beauty'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자고로 사람이건 동식물이건 '아름다운 것'들은 관리가 힘든 법인데 말이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Lomandra 속이고 호주가 원산지로 Mat Rush라 부른다고 한다.
호주 원주민들이 바구니를 만들 때 엮어 쓰던 데에서 유래했단다.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용암으로 만들어진 길에 무성하게 자라던 'Breeze'도 Lomandra 속이다.
Platinum Beauty
마치 풀 같이 무성하지만 따로 손질을 해 주지 않아도 둥글고 예쁜 모양으로 잘 자라서 그렇다는 설도 있지만 이 것도 누군가 만들어 낸 말인 듯하다.
어쨌든 바다에서 퍼온 짠물만 주지 않으면 잘 자란다고 하는 화초들도 죄다 죽이는 '화초 킬러'인 나한테는 딱인 듯해서 여러 개 사들고 왔다.
화단에 심어 놓고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개성으로 꽃이 핀 다른 화초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잘 어울린다.
화초 몇 개 심는다고 집과 마트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는 말을 생중계처럼 전해 들은 동생이 화단이 얼마나 예뻐졌나 보겠다며 집에 들렀다.
"괜찮네."
동생의 미지근한 한마디.
"보라색 큰 키는 Sage, 꽃에 벌이 꼬여있는 저 아이는 Lavender... ㅋㅋㅋ 얘들 이름이 뭔지 알아? ㅋㅋㅋ Platinum Beauty래. 생긴 건 전혀 안 그런데."
"그래?"
동생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넘긴다.
싱겁다.
식물 이름 하나에 궁금증이 생겨 찾아보고 유래를 생각해 보는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런가 보다.
빅 아일랜드 용암 위에 핀 Breeze. 뒤뜰에 humming bird (벌새) 먹이를 놓아주었더니 가끔 들러준다. 딸기를 좋아하는 조카를 위해서 산 딸기 화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