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끼아수'라고 부른다.
영어나 한국어로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 것도 있고 싱가포르 사람 외에는 알아 듣는 사람이 없어서 시댁식구들과 있거나 미국 친구들과 있을 때 남편이 지나치게 안달이거나 유난을 떨면 나는 '끼아수'하고 명령어를 쳐내듯 한마디 해서 남편에게 나의 인내 게이지가 폭발에 임박 했음을 표현한다.
끼아수는 싱가포르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싱글리쉬로 호끼엔 방언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이런 상황에 쓴다.
운전하면서 급하게 끼어드는 차 운전자에게,
다른 사람을 밀치면서 먼저 지하철에 올라 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Don't be Kiasu',
'Kiasu Ah'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아줌마들'이 마트에서 '생선 세일' 한다고 하면 달려가 다른 사람을 밀쳐서 생선을 낚아 채는 모습이 바로 '끼아수'의 모습이다.
남편의 끼아수 기질은 집안 내력이다 (시아버지를 닮았다 ).
예를 들어 극팬(fan)인 Syracuse 대학 농구팀 경기를 보러 갈 때,
1. 수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해서 경기 후 혼잡한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주차한다.
2. 끝까지 승자를 알 수 없는 치열한 경기일 지라도, 10분 정도 먼저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 나간다.
* 어쨌든 결과야 뉴스에 나올 거니까, 그보다는 혼잡해 지기 전에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 함께 간 아내와 자식들이 불만을 표하면, 심장이 약해서 파이널을 보다가 심장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댄다.
젊었을 때는 잘 몰랐다. 남편이 아버님의 이런 기질을 똑 닮았는 지.
나이가 들어 갈 수록 심해진다. '끼아수'기질
두비 브라더스
솔직히 나는 잘 모르는 록밴드다.
내가 태어난 1971년에 결성되어 70년대에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니, 내가 모를 수 밖에
사실 남편도 8살 많은 큰 형이 듣던 윗 세대 음악이고 자기도 잘 아는 밴드는 아니라고 한다.
내가 그나마 아는 곡은 72년에 발표된 'Listen to the music' 한 곡 뿐이다.
남편은 뉴욕에 사는 큰 형이 '두비 브라더스 콘서트'를 다녀 왔다는 얘기를 듣고 '밴드의 투어 일정'을 보니 마침 우리가 마우이에 있을 때 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티켓을 예매했단다. 우리는 음악 콘서트나 전시회를 좋아해서 여행이나 출장 중에도 스케줄이 맞으면 미리 예약해서 가보는 편이다.
공연 당일 우리는 12AM에 깼다.
우리는 출장이 아닌 휴가로 여행을 할 때는 굳이 시차에 적응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눈이 떠지면 일상을 시작한다. 저녁 시간에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자고 싶은 시간에 잔다.
다행이 같이 깨고 같이 자는 거라, 심심하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지구의 시간이 아닌 우리의 시간대로 움직인다.
아, 그런데 공연이 저녁 6시 30분이라니, 깨어 있고자 하면 깨어 있는 훈련된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보자.
"허니, 그런데 우리 좀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아. 공연장 주차장 티켓이 다 팔렸대. 공연장 건너편에 있는 대학 캠퍼스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는 데, 늦게 가면 거기에도 자리가 없을 거 같애."
"알았어. 그럼 몇 시 출발 할까?"
"5시에 공연장 오픈한다니까, 3시에 출발하자."
"어? 공연이 6시 30분 시작이니까, 본 공연은 7시 30분 되야 시작할텐데."
"갔는데, 주차할 데 없으면 끝장이야. 빨리 준비해."
구글맵을 확인해 보니 호텔에서 공연장까지 40분 정도 걸리는 데, 공연장 오픈은 5시라 해도 공연 시작 몇 시간 전에 도착한다는 건. 더구나 밤 12시에 깨서 돌아다니다 이제 노곤해질 시간이다.
"가방 검사 철저하다니까 큰 가방 가져가지 말고 빈손으로 가자."
"그래도 최소한 폰하고, 해지면 썰렁해질텐데 옷이라도 가져가야지."
"아니야, 다 두고 가."
"챙겨서 차에 두면 되지."
"아, 딴 소리 말고 빨리 준비해 늦었어. 구글맵은 40분이라 하지만 차 엄청 막힐거야. 빨리 빨리 서둘러. "
하도 설쳐대는 바람에 작은 가방에 폰하고 손세정제만 달랑 넣고 호텔을 나섰다.
이것 봐, 벌써 이렇게 차가 막히잖아.
공연장으로 가는 길 중간 중간 정체가 되었다. 사실 정체도 아니다. 신호등에 걸려서 몇 분 정도 '대기하는'거라 하는 게 맞다.
"이것 봐, 벌써 이렇게 차가 막히잖아. 내가 맞지?"
"그런가, 이 차들이 다 공연장 가는 차라고?"
"당연하지."
"그런데, 왼쪽으로 가는데? 공연장은 직진해야 되는 걸로 나오는데."
"아마, 우리가 모르는 다른 지름길이 있을 거야. 빨리 가자."
아무도 없는 걸?
공연장 주차장은 주차 티켓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걸로 이미 알고 왔으니 길 건너편 하와이 대학 마우이 캠퍼스 주차장으로 갔다. 도착 시간 오후 4시
텅빈 주차장. 행사 요원 차량만 몇 대 보인다.
사진 찍지 말고 빨리 오라고 핀잔을 주다가 몇몇 사람들이 공연장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바쁘게 걸어간다. 이유는 '남들보다 먼저 입구에 도착하려고.'
해가 너무 뜨겁게 내리 쬐는데 설쳐대는 남편 '덕분'에 모자도 썬글라스도 아무 것도 안 들고 왔다.
텅빈 주차장. 행사 진행 요원들만 보이는데 빨리 공연장으로 가서 줄 서자고 사진 찍는 나에게 핀잔을 주는 남편. 땡볕 아래 서 있자니 오븐 안의 통닭이 된 듯 머리와 얼굴이 타는 것 같다.
왜 이리 일찍 와서 이 고생이냐고 내가 한마디 하기 전에 남편이 선수치 듯,
"뜨겁지? 저 쪽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다려."
"아직 줄 서지 않아도 되는 데 그럼 같이 그늘로 가 있자. 어짜피 좌석도 다 정해져 있잖아."
"아니야, 그래도 줄 서야 돼."
"그럼 나도 같이 줄 서서 기다릴게."
하나 둘 사람이 모였다.
콘서트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비 브라더스' 찐팬인지 셔츠를 갖춰 입고 삼삼오오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한껏 들뜬 평균 나이 60대 후반들이다.
"우리 젊게 느껴지지 않아?"
"응"
5시에 입장 팔찌를 끼고 들어가서, 공연장을 우선 돌아 보고
푸드 트럭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핫도그를 첫번째 손님으로 주문하고 서두른 덕분에 꽤 괜찮은 자리를 잡고 앉아 먹었다. 간이로 설치해 놓은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은 매우 뿌듯한 표정으로
"내가 화장실 제일 먼저 사용했다. 1등 ㅋㅋ"
"어? 그걸 어떻게 알아?"
"ㅋㅋㅋ 내가 화장실 문에 끼워 둔 종이 테이프 끊고 들어 갔어."
'으이구, 잘났다.'
민낯에 피로와 땀이 범벅 되어 잔뜩 달아 올랐다가 해가 지니 한결 살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돈 조금 더 내고 VIP 석을 샀던 지라 입장하려고 굳이 줄을 설 필요도 없었고 간이가 아닌 건물 안의 제대로 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이 있었으며 플라스틱이 아닌 식당 안의 나무 식탁에서 편하게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1등으로 입장해서
푸드트럭을 보자 마자 다른 사람들이 줄 서기 전에 달려가 주문을 하고
남들이 사용하기 전에 깨끗한 화장실을 '1등'으로 사용하는
이런 거에만 집중하다가 우리가 지불한 특혜를 누리는 걸 놓쳐 버렸다.
휴,, 뭐 어쩌겠나 그러려니 해야지. 이미 지난 일인 걸
6시 30분, 공연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좌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원래 공연 전엔 게스트가 나와서 시간을 메꾸다가 본공연은 한시간은 지나야 시작된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안다.
해가 지고 선선해지는 듯 하더니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허니, 춥지? 자켓 따로 가져 온 거 있어?"
"아무것도 들고 가지 말라며. 웬 자켓? 입구에서 보니까 '외부 음식'이나 '무기 소지 하지 말라'고 되 있는 거 외엔 아무 제한 없던데..."
괜히 미안했던지,
"내가 가서 옷 입을 만한 거 있나 보고 올게"
"됐어, 팬도 아니고 아까 보니까 말도 안되게 비싸게 팔던데."
"아니야, 아무래도 너무 추울 거 같애."
남편은 공연 상품 파는 곳에서 '두비 브라더스' 공연 홍보 문구가 적힌 후디 두 개를 사왔다.
내 눈치를 보며 한마디 한다.
"어때? Korean Honeymooners 같고 좋지?"
춥다가 따뜻한 걸 걸치니 잠이 솔솔 온다.
땡볕 아래서 한참 동안 땀을 흘리고 싸늘한 밤 공기에 따뜻한 후디를 입었더니 잠이 솔솔 온다. 눈도 무겁고 빡빡하다. 겨우 눈을 부릅뜨고 오늘의 주인공 락밴드 두비 브라더스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놀라서 눈을 떠보니 내 머리는 뒤로 30도 정도 넘어가 있고 이마와 턱은 하늘로 향하고 있다.
'어머나, 잠이 들었었네.'
남편은 내 오른편에 앉아서 얌전하게 공연을 보고 있고 내 옆에 앉은 관객, 내 앞 줄과 뒤줄 모두 일어서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른다.
분명 후디 입고 눈이 뻑뻑해서 기다렸을 때는 관객석이 텅 비어 있었는데 어느 새 꽉 차서 다들 흥이 났다.
나는 본 콘서트를 기다리다 지쳐서 잠이 들었었다.
관객들이 언제 와서 자리를 채웠는지, 언제 부터 열광하기 시작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노래하는 밴드도 관객도 머리가 허연 노인들이다.
우리는 열광하는 관중들 사이에 얌전히 앉아서 콘서트를 관망했다.
콘서트는 막바지로 접어 들었고 밴드는 앵콜송으로 'Listen to the music'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밴드가 부른 노래 중 내가 유일하게 아는 곡이다.
남편은 연주 시작하자 마자
"Let's go" 하며 재촉한다.
"사람들 너무 취했고 더 기다리면 험한 것만 보게 돼. 위험하기 전에 빨리 나가자."
내가 볼 때 여기 있는 노인네들이 그다지 험해 질 것 같지 않은데 남편은 또 재촉하기 시작한다.
"빨리!"
이런,
몇 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아는 노래 한 곡 나왔는데,
둘이 같은 후디를 입고 관중석을 빠져 나오니, 거나하게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한 노인네들이
"Cool!" 하며 하이파이브를 요청한다.
비교적 젊은 우리가 입은 후디만 보고 '두비 브라더스'의 광팬인지 알았던지,
"You guys are so Cute!" 하며 관객석을 빠져나가는 우리에게 줄 지어 하이파이브하자고 손을 올려 들이 민다.
"Ahh,, Whatever~" 하이파이브를 해 주며 콘서트장을 빠져 나왔다.
호텔에 도착해서 후디를 벗어 놓고 보니 조잡하기 짝이 없다.
다음에 또 입게 될까 싶은 후디.
"이거 얼마야?"
"모르는 게 좋을걸? 그냥 허니문 셔츠라 생각해."
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