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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라이스

Singapore National Dish

by 리나

싱가포리안들의 국민 푸드 '치킨라이스'는

19세기 후반, 싱가포르에 정착한 하이난 이민자들의 하이난식 Wenchang Chicken 조리법에서 유래했다. 원조 하이난 식에 광동식 요리법과 소스가 가미된 '싱가포르화된 치킨 라이스'는 호커센터 (야외 푸드 코트)라면 반드시 있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진열대 유리 뒤에 꼬챙이에 찍혀 대롱대롱 매달려 기름을 뚝뚝 흘리고 있는 닭이 보이는 스톨(stall, 가판대)을 찾아가면 먹을 수 있다. 가끔 구운 오리도 옆에 걸어 놓고 'duck rice'를 함께 파는 곳도 있지만 치킨라이스 맛집에서 오리까지 취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곁들여 먹는 소스가 다르고 같은 조류여도 특유의 향이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주문과 동시에 손님이 보는 앞에서 근육질의 남자 사장님은 손님이 선택한 종류의 닭과 부위를 꼬챙이에 걸려 있는 진열대에서 도마로 내려 놓고 직사각형의 큰 칼로 탕탕 소리를 내며 뼈까지 말끔하고 능숙하게 한 입 크기로 토막을 낸다.


치킨라이스를 주문할 때는


steamed or roasted

white meat (가슴살) or dark meat (날개, 다리)

를 선택해야 한다.


steamed

조리법: Boiled or Blanched

steamed chicken을 요리할 때는 생강과 판단잎을 닭의 불쾌한 냄새는 제거하되 닭의 좋은 냄새까지 제거하지 않도록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히만 넣어 조리한다. 닭을 솥에 넣고 닭이 잠길 만큼 넉넉한 양의 물을 넣고 푹 끓이는 방법(boiled)도 있지만 물을 솥의 반만큼만 채운 후 끓는 물을 닭에 끼얹어 가며 익히는 방법(blanched)으로 만들기도 한다.

요리를 마친 닭의 껍질은 깨끗한 흰색이 유지되어야 하고 꾹 눌렀을 때 즉시 튀어나올 수 있을 만큼 탄력이 있어야 하고 무거운 칼을 내려 치며 토막을 낼 때에도, 먹을 때도 살과 분리되지 않고 밀착되어서 살과 껍질을 동시에 씹을 수 있어야 한다. 닭 껍질은 푹 고아진 물컹한 맛이 아닌 한국의 족발 껍질처럼 쫄깃해야 하는 데, 닭을 익인 후에 뜨거울 때 건져서 바로 얼음물에 첨벙 입수시키는 게 그 비결이라고 한다.


roasted

조리법: Deep Fried

로스트라면 오븐에 넣고 기름을 쪽 빠지게 조리하는 방법을 말하지만 치킨라이스의 로스트는 치킨을 통째로 끓는 기름에 전체를 담가 튀겨서 건져내는 튀긴 닭 (deep fried chicken)이다.

오향, 꿀, 엿당, 간장, 라임, 생강을 물에 넣어 끓인 후 뜨거운 액체 (그래야 닭껍질이 쫄깃하다고 한다)를 손질한 닭의 표면에 골고루 발라 준다. S자 모양의 갈고리를 닭 목이나 날개에 단단히 끼워 고정한 후 수분이 제거되도록 두 시간 정도 실온에 걸어 두었다가 뜨거운 기름에 튀겨낸다.


스팀이건 로스트이건

맛있고 부드러운 맛을 유지하려면 절대 '오래 조리'하면 안 된다.

살이 잘 익을 만큼만 조리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큰 관건이다.

그래서일까, 토막 낸 치킨라이스의 닭뼈에는 붉은 피가 그대로인 경우가 흔하다.



닭을 끓여 낸 국물에 쌀을 넣고 지은 기름진 밥 한 공기를 접시에 올린 후 닭 몇 점, 오이 몇 조각. 그리고 파를 올린 닭국물 한 그릇.

기호에 따라 마늘을 넣은 매콤한 칠리소스와 생강소스 그리고 중국식 찐득한 간장을 곁들여 먹는다.


나에게 치킨라이스 한 접시는 한 끼의 식사로 충분하지 않다.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느낌보다는 밥 한 공기 간장에 비벼 먹고 한 끼니를 때운 듯한 허전함이 남는다. 그래서 몇 푼 더 보태서 데친 청경채를 함께 주문한다. 그래야 기름진 음식에 야채가 포함된 발란스가 맞춰진 한 끼니를 제대로 먹은 느낌이 든다.


호커 센터에서 파는 치킨라이스 한 접시는 결코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지만, 한 접시를 비우면 하루 권장량의 지방을 충족할만한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이다. 거기에 치킨라이스를 먹을 때 없어서는 안 될 세 가지 소스까지 곁들이면 한 끼에 1000mg이 넘는 나트륨을 섭취하게 된다.


싱가포리안들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치킨라이스를 먹을까

적어도 세 번. 많으면 일곱 번에서 열 번?


'왜 점심시간에 늘 치킨라이스를 먹느냐'라고 싱가포리안 동료들에게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 흔하니까

- 주문하면 빨리 나오고, 빨리 먹을 수 있어서

- 그냥 늘 먹는 거라

- 저렴해도 닭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 치킨 라이스니까


결국은 치킨이라서 먹는다.



싱가포리안들의 치킨 사랑.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던 닭의 수입이 제한되면서 닭고기 가격이 두 배 가깝게 올랐지만 치킨라이스 가격은 많이 오르지 않았다. 대신 밥 위에 올라오는 닭고기의 양은 훅 줄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제한된 양만으로는 소비를 충당할 수 없어 브라질과 태국에서도 닭고기를 수입하고는 있지만 익숙한 맛과는 다른 맛이 난다는 이유로 호커센터 치킨라이스 스톨에서는 동일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레이시아 닭을 구하지 못한 날엔 대부분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닭이라지만 단백질이 풍부한 살코기만 먹는 게 아닌 지방 덩어리인 껍데기와 기름으로 지은 밥. 거기에 나트륨이 잔뜩 들어있는 소스까지. 건강식과는 거리가 먼 치킨라이스는 왜 싱가포리안들의 국민 푸드일까.


아마도 그들의 comfort food 이기 때문 일거다.


한국 사람들이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 '맛있겠다' 입맛을 다시며 나물을 무쳐서 차려낸 엄마의 밥상을 생각하 듯, 싱가포리안들은 비릿한 치킨 국물 냄새에 가족과 따뜻한 집 생각이 난다고 한다.



치킨 라이스 맛집 위남키가 롯데 백화점 명동 지점 지하에 있다고 하네요.

Wee Nam Kee Chicken Rice – Wee Nam Kee Chicken Rice (wnk.co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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