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끼엔미 (Hokkien mee, 福建面)는 2차 대전 후 푸젠 성에서 온 중국인들이 싱가포르 공장에서 일하면서 큰 웍을 숯불 위에 올려 볶아먹던 국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도 같은 이름의 국수 요리가 있으나 나라와 지역마다 요리법과 재료가 달라 맛과 모양에도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 호끼엔미는 희고 둥근 쌀국수와 계란을 넣어 만든 노란 국수를 적당히 섞어 계란, 돼지고기, 오징어, 새우와 함께 볶다가 새우머리와 돼지 뼈를 고아서 우려낸 진한 국물을 넣고 끓여 낸다. 호끼엔미 만으로 미슐랭 가이드 북에 오른 호커 스톨 (Hawker Stall)이 있는데 맛의 비법은 이 국물에 있다고 한다.
유명한 호끼엔미 스톨에 가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어느 정도 길어진 후에야 뜨거운 숯불 위에 큰 웍을 걸고 많은 양의 국수를 한꺼번에 볶아 1인분씩 소분해서 담아 준다. 돼지비계 튀긴 것과 계란, 해산물이 들어가 다소 비릿한 냄새가 날 수 있어 달콤하고 새콤한 깔라만씨를 국수 위에 뿌리고 삼발 소스(새우젓과 타마린을 넣은 칠리소스)를 함께 곁들여 먹는다. 삼발 소스는 가자미 같은 흰 살 생선이나 깡꽁(미나리과)이라고 하는 야채와도 잘 어울리는 데 젓갈 특유의 꿈꿈한 냄새와 굵게 간 매운 고추가 들어 있어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할 만한 맛의 페이스트다.
싱가포르 친구 실라가 이번 주 수요일에 'Justin Quek (저스틴 퀙)'이 Gastro Cafe를 오차드 Tang Plaza에 오픈한다며 목요일에 시그너처 디쉬인 랍스터 호끼엔미를 먹으러 가자 한다.
저스틴 퀙은 싱가포르 전 수상인 '이 광요' 수상의 생일파티를 비롯해 중국의 장쩌민,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이 싱가포르에 왔을 때 요리를 도맡아 했다고 알려진 스타 셰프다.
프렌치와 아시안을 접목한 퓨전 개스트로 카페 바 저스트인, 어제 오픈했다니 많이 복잡할 것 같아 점심 시간 전인 11시 30분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끼아수(과한 경쟁심)'기질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바로 테이블을 잡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랍스터 호끼엔미를 먹으러 왔는데 메뉴에 적힌 'Korean' 이란 단어가 눈에 먼저 띄었다.
소고기 불고기, 한국산 멸치 볶음밥, 한국 당면을 넣은 게 요리
저스틴 퀙이 만든 한국 음식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멸치 볶음밥 1인분과 시그니처 디쉬라는 랍스터 호끼엔미를 주문했다.
멸치 볶음밥과 랍스타 호끼엔미, 디저트로 먹은 Crepe Suzette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멸치 볶음밥은 찰기 없는 태국쌀로 만든 동남아시아식 볶음밥에 반숙 계란과 삼발 소스를 곁들여 맛은 있었지만 메뉴에 쓰인 'Myeolchi'라는 단어에 꽂혀 한국적인 맛을 기대했던 우리는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맛에 다소 실망했다. 메뉴를 펼쳐 다시 읽어보니 '한국산 멸치를 넣은 볶음밥'이라 했지 '한국식 볶음밥'이라 되어 있지 않았는데 우리가 잘못 본 것이다. 그렇지만 뭔가 좀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Ikan Bilis (멸치)
랍스터 호끼엔미에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국수 위에 랍스터 반 마리가 올려져 있고 삼겹살 볶은 것과 돼지비계 튀김이 적당하게 어울려 먹을만 했다.
싱가포르 음식 맛을 잘 몰랐을 때는 롤스로이스 같은 고급차를 타고 호끼엔미를 먹기 위해 허름한 호커 센터(야외 푸드 코트)에 있는 맛집에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싱가포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정도면 상당한 재력가일 텐데 왜 굳이 이런 허름한 곳까지 와서 값싼 음식을 먹을까?'
싱가포르 음식의 '찐(authentic)맛'을 알게 된 지금은 아무리 유명한 셰프라고 해도 한 가지 음식만 수십 년 해 온 맛집 만의 손맛을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잘 알기에 그 모습이 이해가 된다.
스타 셰프라는 명성과 랍스터 반마리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에어컨과 고급진 인테리어가 된 개스트로 카페에서 먹은 호끼엔미는 '호커 스톨'의 호끼엔미를 생각나게 했다.
커다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연신 땀을 닦아 내며 만든 국수의 짭조름한 '땀 맛'이 빠져서 일까?
저스틴 카페가 서울 롯데 백화점 명동 지점에 곧 오픈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