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불청객
마치 진흙 속에 빠진 듯 침대 위에서 꼼짝 못 했다. 몇 가닥 남은 이성이 침대를 벗어나 책상 위에 앉아야 한다고, 아니 현관문을 열고 나서야 한다고 명령했지만 진흙에 깊게 빠진 몸을 일으킬 또 다른 명령어가 내 안에 없었다.
세상이 나만 빼고 웃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만 빼고 달리고 있었다.
세상이 나만, 나만 뺐다.
세상이 웃든 울든, 달리든 걷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를 뺐다는 것.
젖을 찾아 품으로 기어드는 갓난애처럼 몇 년을 내게 붙어 자랐던 소외감과 우울감이 어제 다시 나를 방문했다. 이사할 때 그 아이를 분명 떼어놓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성장한 그 아이는 더 강력한 힘으로 나를 조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것의 정체가 무언지 알아챌 틈도 없이, 그만 그것에 무력하게 당했다. 침대에 갇혀 있는 동안 가끔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고, 나갈 수 있다고 나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러다 저항의 방식을 포기하고 순응의 방식을 택하면서 나는 내게 말했다.
“오늘은 오늘로 놓아두자. 내일 눈 뜨는 시간부터 너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알람 소리에 번득 눈을 뜨면서 직감했다. 어제와 그리 다른 상태는 아니라고. 비슷한 상태를 타개할 방법은 어제와 달리 몸을 움직이는 길밖에 없다고. 몸을 움직였다.
싱크대 앞에 섰다. 싱크대는 한 가족이 어제 먹은 흔적을 투명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싱크대의 안쪽이 조금 더 깊다면 흔적의 산이 이리 높아 보이지 않았으련만. 얼른 싱크대 물을 틀었다. 호시탐탐 내게 달라붙어 목을 조일 기회만 노리는 그 녀석에게 적절한 기회를 주지 않겠다 몸부림쳤다. 싱크대 산이 분해되어 식기세척기로 옮겨졌다.
이번엔 청소기를 손에 들었다. 식탁 밑을, 싱크대 아래 바닥을, 머리카락 가득한 화장대 주위를, 지우개 가루가 떨어진 아이들 책상 밑을 청소기 흡입구로 빨아들였다. 머리카락 몇 가닥은 세기를 높여도 흡입구 속으로 빨려들어 가지 않았다.
그 녀석인가, 우울증이라는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