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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 Dec 01. 2021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

늙음, 병듬, 죽음에 대하여.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를 읽고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이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라는 책은 우리 삶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요양보호사로 100여 명의 치매 노인들을 떠나보내며 의미 없는 삶은 없다고, 삶과 죽음, 희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 구조적인 민낯을 직면하게 하는 인문 사회 서로 읽을 수도 있으며 '요양 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직업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에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궁금하지 않은가?



저자가 처음부터 요양보호사로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요양원의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특별하듯 작가의 삶도 한 편의 소설 같다. 작가는 유년시절이 평탄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한다. 어머니는 홀로 두 아이를 낳고 키웠어야 했고 삶이 벅찼단 그녀는 아들을 자신의 엄마에게 맡기게 된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지내다가 엄마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양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고 다소 폭력적인 성향의 양아버지 아래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다소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성인이 되어 사업을 하고 실패하게 되면서 유년시절부터 쌓아왔던 무력감과 우울감에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모든 것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노숙인 센터에서 섞여서 지내게 되고, '쓰면 써지는 게 글인 것처럼 살면 살아지는 게 삶이었다(p. 57)'는 책 속의 구절처럼 하루하루  흘러가며 살아가던 중 우연히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덕분에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시절 보내게 된 저자는 요양원의 어르신들의 냄새가, 삶이 낯설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어르신들은 돌보면서 어느 순간 유년시절의 자신이 치유받는 기분이 들었고 한 분 한 분에 대한 기록을 글로 쓰게 되었다.(바로 이 브런치에서!) 어느 날 출판사의 연락이 와서 저자의 글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던 시기는 2019년 12월 24일. 어르신들에게 치유받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았다고 말하는 그의 책은 우리에게도 선물처럼 다가온다.







어르신들을 돌보며 삶의 의미를 찾고 다소 느리게 흘러가는 요양원의 시간이지만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사연을 듣고 바라보면 이상행동이 모두 이해가 된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따뜻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은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차갑고 때로는 무례할 때도 있다. 




요양원에 찾아온 보호자들은 그를 보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지만 뒤돌아서 자신의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끌고 말하고는 한다. 

"너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런 일이나 하게 된다."

세상의 수많은 '저런 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저자는 담담히 말한다. 





앞에서 그 여성분이 말한 ‘저런 일’은 대소변을 치우는 일이나 괴팍하고 느리고 냄새나는 노인을 상대하는 우리의 일이 쉽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더라도 나는 그런 말에 마음을 다치지는 않는다. ‘저런 일’이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거니와 치매 환자에게 ‘저런 일’은 꼭 필요한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배설을 원활하게 하는 일은 건강과 생명 유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수분 섭취를 잘하지 않는 노인은 더욱 그렇다. 수천 년 전, 어느 구도자의 말처럼 뒤로 나오는 것보다 입으로 나오는 것이 더 더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내 직업은 ‘저런 일’입니다. p. 56'-


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우리 또한 병듦을 피할 수 없고 보살핌을 받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누군가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내가 일하는 까닭이다.      

그저 살아온 삶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일, 이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때로는 무시받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저런 일’을 하는 모든 무명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 직업은 '저런 일'입니다. p.61-62'-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조각난 기억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존중하며 죽음에까지 이르는 시간을 살펴봐주는 그의 눈에 의미 없는 삶은 없다. 더불어 태어날 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죽음에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인간의 삶에 늙고 병약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더라도 존중받아야 하고 이해받아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때로는 힘 있고, 때로는 부드럽게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가 늙는다. 병약해지고, 정신도 육체적 힘도 예전만 하지 못할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단 이유로 사회와 격리되고 조용히 죽어줄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시대.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대를 위하여.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데 용기가 필요하다니. 아이러니한 현실이지만 책에서 말하는 요양원의 현실적인 처우와 법적 제도, 옆 나라와 비교하였을 때 사회 적으로 인식되는 치매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 단순히 개인의 용기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제도, 법적 제도의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도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할아버지는 군에 징집되고 단 2주의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전장에 투입되기 위한 준비는 그게 다였다. 할아버지의 나이 열여덟 살의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전투에서 청력을 잃고 두 무릎이 부서졌다. 할아버지 허리에는 쇳조각을 제거한 흔적이 여러 군데 있다. 하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았다. 반백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할아버지 몸에는 당시의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를 떠올릴 때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쟁을 끝없이 소환하는 할아버지의 치매는 악몽 같은 기억을 끝없이 반복하게 하는 도돌이표였다.      


...

"에이 할아버지, 그렇게 겨누시면 제가 맞기나 하겠어요? 백발백중이라 하시더니 순 엉터리네요."

할아버지의 주름이 동 그렇게 웃었다.

“다 같은 조선 사람끼리 총을 제대로 쏘면 죽을 텐데 어떻게 맞히나? 사람 없는 땅에다 쏘는 거지. 백발백중으로 땅에다가.”     



                                                                          -'백발백중 명사수의 비밀  p. 33, p. 35-




우리가 글로, 영상으로 접하는 살아있는 역사가, 옛이야기가 바로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간이고 현실이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왔으면 좋겠다’의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으면 하나의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는 말을 믿는다는 저자는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흔들리는 기억 속에서 한국 전쟁의 흔적을 찾고,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 시절을 극복해낸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금 빛나는 찰나를 잡기 위해 지나온 시간을 놓치고 있는 우리들에게 뜨거운 물음표를 던지는 책. 



당장 포털 사이트에 '치매'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치매 예방에 좋은 음식, 치매 조기 진단을 권유하는 기사들, 치매 노인들을 위한 공공기관의 행사와 활동 등에 대한 기사가 가득하다. 그러나 예방에 좋은 음식이라 하지만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치매에 걸리는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치매 조기 진단을 권유하지만 그 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진단받은 후에 어떤 절차로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야 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료 기관이나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왜일까? 우리는 '치매'라는 질병에 대하여 그 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후는? 조기 진단 후 치매 판정 난 이후에 대한 논의가 없다.      

우리 사회에 치매라는 질병은 늙은 노인이 걸리는 병, 간병 부담, 회피하고 격리하고 싶은 두려운 무엇인가로 자리 잡은 듯하다.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치매는 노화와 함께 자연 발생하는 질병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발병률도 꾸준히 늘고 있다. 치매는 일상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초기단계부터 중기, 말기로 단계가 나뉘어 있으며 각 단계에 맞게 자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나 요양 보호사가 돌봐야 하는 환자의 수는 한 명당 2.5명. 24시간 요양원에서 8시간 3교대로 나누면 1명이 7.5명을 돌보게 된다. 일상생활의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 요양 보호사라고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선 그 누구의 존엄성도 지켜지지 않는다. 치매 환자의 폭력적인 행동에 그저 참고 맞아야 하며,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안고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허리 디스크와 같은 질병이 생겨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 보장 제도로서 요양보호 시스템이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삶과 어르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참 따뜻한 책이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존엄함을 지켜주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저자의 삶이 전해지면서 치열하게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흔들리고 있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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