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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Nov 30. 2020

[석혜탁' 글] 군 입대를 앞둔 ‘그놈’이 죽었다.

- 하늘에서는 새벽에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기를

[석혜탁' 글] 군 입대를 앞둔 ‘그놈’이 죽었다.

- 하늘에서는 새벽에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기를


군 입대를 앞둔 ‘그놈’이 죽었다. 


아침 일찍 문자를 받았다. 회사에서 밀린 메일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문자였다.


아들 
세훈이 죽었다.
교통사고란다...로 시작하는 메시지였다. 


그 아래에는 지금 병원을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놀란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이름은 편의상 세훈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죽었다.
나는 살면서 이런 문장을 처음 봤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끼리 “죽을래”라고 말하며 짓궂게 장난친 것 제외하고, 딱히 저 문장을 쓰거나 읽을 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대개 어르신들인 경우가 많았으니 돌아가셨다거나 눈을 감으셨다 등등으로 썼을 게다.


그런데

죽었다니.


‘하늘나라로 갔다’와 같은 표현을 쓰기도 좀 그랬다. 어머니도 그 소식을 받은 지 얼마 안됐고, 아직 그의 영정사진을 보기 전이니 말이다. 또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비보를 전하기에 저 표현은 무언가 안 맞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대안이 없었다.


어머니는 엉엉 울고 계셨다. 아들처럼 여기셨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조카 같이 생각했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한 표현이다. 어머니가 정말 귀여워했던 놈이었다. 


아이라는 표현이 이상한가. 20대 초반이니 어머니 눈에는 아직 아이였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나는 그 친구가 열한 살 때 처음 봤다. 아이, 그놈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배경이다.


장례식장으로 갔다. 가는 내내 화가 났다. 내년에 군대 간다는 놈이 죽긴 왜 죽어.

의미 없는 가정도 되풀이했다. 군대를 빨리 보냈어야 했는데.


그리고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뭐가 자꾸 미안했다. 열 살이나 넘게 차이가 나는 친구가 죽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서 미치겠을 정도로 미안했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다. 나중에 그놈 축의금이나 많이 줘야지 했는데, 조의금이라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사진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셀카 비슷한 사진과 나는 마주했다. 통통하고 순수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모라고 부르고 실제로도 이모보다 더 이모같이 지내고 있는 그의 어머니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쳐다보기 힘들었다.


어린 사람에게는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적당치 않다 하여, 고개를 숙이는 수준으로 어설프게 그와 인사를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함께 식사를 하고, 점퍼와 전자사전을 사다 줬던 기억이 스쳤다. 어머니에게 유독 곰살맞았던 모습도. 그놈은 정말 너무 꽃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그의 휴대폰을 보니 온몸이 뜨거워졌다. 


교우관계가 얼마나 좋았는지 끊임없이 친구들이 몰려왔다. 그 친구들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급하게 오느라 검은색 니트, 검은색 후드티 등을 입고 온 아이들이 많았다. 하긴 그 나이에 검은색 정장이 왜 필요하겠는가. 최대한 예를 갖추려고 검은색으로 상하의를 맞췄지만, 어딘가 모두 어설펐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였다. 내 눈엔 그저 예전 동네에서 보던 세훈의 중고등학생 친구들일뿐. 아직 장례식장 같은 공간에 와서는 안 될, 조의금이 뭔지도 몰라야 할 나이의 청춘들이었던 것이다.


여덟 아홉 명쯤 되는 남자 놈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절을 해야 하는지, 인사를 해야 하는지 다들 경황이 없다. 제일 앞에 서있던 친구가 절을 하니 따라서 절을 한다. 아홉 명의 검은색 덩치들이 절을 하고, 일어나서 다시 그의 어머니에게 절을 한다.


아이고.

세훈이도 어렸을 때부터 통통했고, 스무 살 넘어서는 덩치가 꽤나 좋아져 같이 다니기만 해도 듬직했다. 


입에 들어가지도 않은 장례식장 밥을 앞에 두고, 이 황망한 상황에서 정신을 차려보고자 애를 써본다. 다시 고개를 뒤로 돌리니, 검은색 옷을 각기 다른 스타일로 입은 친구들 20여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정갈하지 않은,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은, 씩씩한 어른인 척을 하며 앉아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퍼진다.


그렇다. 이렇게 떠나면 절대 안 될 나이다. 죽음에 합당한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한 청년은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통장에 적지 않은 월급을 저축해둔 채 그렇게 떠났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세훈이의 얼굴이, 그리고 검은색의 어린 덩치들이 내 눈앞을 왔다 갔다 한다.


갑자기 피자를 가지고 온 분도 있었다. 세훈이가 이걸 좋아했다고 말하는 피자집 사장님이었다.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는 짧지만 잘살았던 친구였다.


세훈의 곁을 함께 지켜준 그의 친구들은 장례기간 내내 어머니와 친척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아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세훈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됐다. 파도 파도 미담이었다. 왕따 당한 친구들을 도와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의 장례식장에 친구들을 불러 친구의 곁을 지키기도 했다.


다시 어머니의 문자를 읽어본다.


세훈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남겨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하늘에서는 새벽에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보다 평화롭고 건강하게 휴식을 취하기를.


미안하다. 

보고싶다.


석혜탁

sbizconom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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