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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May 13. 2017

6년간의 ‘연애불황’ 후 ‘제대로 된 연애’를 원한다면

전략적 모호성과 전략적 인내

6년간의 ‘연애불황’ 후 ‘제대로 된 연애’를 원했던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전략적 모호성과 전략적 인내


그녀는 꽤나 유명한 학교를 졸업했다. 재계 순위를 셀 때 손가락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기업을 다니고 있다. 나이에 비해 아주 빠르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느리다고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속도로 하루하루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학부 시절에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지난 2년여간 그 바쁘다는 대기업 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 과정을 성실히 병행하여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 물론 입사 전 대학생 시절에.

인기도 꽤 있(었)다. 예쁘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이는 그녀는 입사 후 무던히도 많은 소개팅을 했지만, 지난 6년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애’는 그녀의 워딩이다. 


그녀는 지금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실익 없는 ‘썸’에 심신이 지쳐버렸다.  


아주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것도 아닌 그녀. 

대학생 때는 남들만큼은 연애를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연애불능’ 상태가 되었다.
이유를 모르겠단다.
소개팅을 하고, 그 남성과 3~4차례까지 만남이 이어진 경우는 적잖았다. 그런데 남자가 고백을 안 하네.
그녀와 만난 남자들이 유독 소심해서였을까? 그녀에게만 그런 남자들이 걸렸던 것일까? 

아닐 듯하다. 


그러면 여자가 고백을 먼저 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가능하다. 


그런데 그녀가 용기백배하여 남자 측에 확실한 스탠스를 취할 것을 요청하면, 남자는 “이제 자기는 결혼도 생각해야 되고, 연애를 가볍게 할 수 없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따위의 답변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누가 “연애를 가볍게” 하자고 했나. 
의도적인 오독.


그녀보다 딱히 더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는 많은 선후배들이 ‘제대로 된 연애’를 알콩달콩 하고 있다. 


이럴 때 보통 문제를 자기에게 돌리곤 한다. 

내가 매력이 없나? 대화 스타일이 별로인가? 비호감인가? 등등 불필요한 자기비하다.


연애라는 것이 일반화할 수도 없고, 어떤 법칙이나 명제 아래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일진대, 내게 자신의 ‘실패’를 분석해달란다. 

‘실패’라는 차가운 단어 역시 애석하게도 그녀가 선택한 워딩.


매우 원론적인 문장으로 그녀의 ‘실패’를 위무해보려 했다.


석혜탁: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어. 아직 인연이 안 온 거겠지” 
(말을 내뱉자마자 정말 뻔한 소리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녀: “그놈의 인연이 뭐 대단하다고 나한테만 몇 년째 안 오는 건지…”


‘분석을 위한 분석’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3류 정치평론가처럼 억지 해석을 시도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 하자가 있다고 보이지 않았으나, 어찌 됐건 본인의 경험을 실패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조언이 필요해 보였다.


대화를 좀 더 해보니, 그녀는 본인이 고백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던 스타일...

은 원래 전혀 아니었는데 지난 몇 년의 ‘연애불황’이 그녀를 적극적인 스타일로 변모시켰다고.


고백의 형식을 취하지 않아도, 어정쩡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Yes or No’를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처럼 물은 적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남자가 고백을 한 적도 있으나, 그때는 또 하필 정말 100번을 고심해도 그 상대는 자기 기준에 아니었다고.


매우 맘에 드는 상대가 있었을 때는, 

상대가 고백하기를 정권교체(그녀는 민주당 지지자다)를 염원하듯 기다리고 기다려봐도 그 남자의 입은 열리지 않았단다.


대학생 때는 많았던 인연이 멀쩡히 대기업 잘 다니는 지금은 왜 이렇게 자신만 야속하게 빗겨 나가는지.  


“남자가 자연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틈’을 안 주는 것 같아. 청문회 스타처럼 즉답을 갑자기 요구하면 남자가 당황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다. 


연애를 잘하는 여자사람친구들은 보면, 고백할 여지를 던지는 것에 매우 능하다.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훈훈한 남정네의 고백을 매우 쉽게 받아낸다.

 

“정말 상대가 마음에 들면, 그가 알듯 말 듯 모르게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한 채 고백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지를 좀 만들어봐.”


“귀찮게 뭐 하러 고백해. 고백받자, 남자 놈한테.” 

라는 의미 없는 코치를 해주고 헤어졌다.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연애는 구체적일 수 없다. 처방전도 없고,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진단’이라는 것도 내릴 수 없다.



그러다 다음 소개팅에서 남자인 내가 봐도 훈남인 상대를 천운으로 만났다. 

통계학을 전공했는데 가방 안에 부르디외의 책이 있어서 매력이 한층 배가됐다고.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며 이번에는 사태를 관망하며 기다려봤다. 그리고 본인도 자기 언어로 설명을 명료히 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남자가 고백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여기저기 흩뿌렸단다.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도 병행하며.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



결과는 그녀가 그토록 희원(希願)하던 정권교체보다 2주 빨리 받아낸 ‘당선 확실’, 아니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는 설레는 고백!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요즘 딱히 유의미한 조언을 해주지 못한 내게 황송하게도 모바일 커피쿠폰을 자주 보낸다. 고맙단다. (난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할 따름인데)


싱글벙글 웃으며 주변 후배들에게도 포퓰리즘 언사를 마구 내뱉는 그녀. 


오랜만의 연애가 그녀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가 보다.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제대로 된 연애’에 행운을 바란다.


* <문제없는 사람들의 연애문제>는 ‘연애상담 팩션’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정 사람을 유추할 수 없게 신상 관련 팩트를 변경을 하곤 합니다. 물론 이 글을 쓴다고 당사자에게 허락도 받고 있고요. ^^;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듣는 것도 좋아해서인지 뭔 놈의 상담을 해달라는 사람이 주변에 늘 많았습니다. 상담의 대표 분야로 ‘연애’가 빠질 수 없겠지요? 케이스집을 발간해도 될 정도로 사례가 쌓이다 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절거림 스토리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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