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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헤더 Aug 20. 2019

내가 좋아한 피팅룸

피팅룸에서의 경험이 좋았던 COS

옷은 꼭 입어보고 사야 하는 나에게 피팅룸은 굉장히 익숙한 공간이다. 작은 공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나올 때 번호표 가지고 나와주세요'라고 말하지만 바깥에 걸려있는 번호표를 까먹어 다시 돌아가는 일.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옷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몇 개는 직원에게 맡겨두는 일. 칸 내부에 거울이 없어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거울을 보는 일. 이 경우 줄을 서는 사람들이 옷을 입고 나온 나를 볼 수 있어 조금 민망하다. 사실 이런 경험들 자체가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COS의 피팅룸을 보면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불편한 경험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뒷모습 보기

피팅룸에서 옷을 입어보는 이유는 입었을 때 핏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사이즈를 체크하기 위해서이다. 옷을 입었을 때 앞모습은 물론 뒷모습까지 살펴야 하는데 뒷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 앞에서 뒤돌아 목을 돌린다든지 거울을 등지고 셀카를 찍는다. COS 피팅룸에는 각 칸마다 접이식 후면 거울이 있다. 후면 거울을 펼치면 정면 거울을 통해서 뒷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옷은 안 샀다

같이 온 사람의 자리

쇼핑할 때 경우는 딱 두 가지이다. 혼자 거가나 누군가와 같이 가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쇼핑을 간 상황을 생각해보자. 보통 피팅룸에서 옷을 입어보고 일행에게 어떤지 물어본다. 이 때도 매장마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같이 온 사람이 칸막이 밖에 서서 기다리거나, 어떤 곳은 같이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어 피팅룸 입구에서 지인을 기다린다. 나도 몇 번 그런 적이 있는데 보여줄 수 없는 경우는 그냥 사진을 찍고 나와서 보여주는 식이었다. COS 매장 피팅룸은 내부에 앉을자리를 제공한다. 옷을 입으러 온 사람 그곳에 앉을 일은 없으니 그 자리는 누가 봐도 '같이 온 사람들'의 자리다. 안에서는 편하게 내 모습을 보고 나오고, 피팅룸에 나와서는 함께 온 사람에게 옷을 입은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늘 피팅룸 앞에는 앉는 자리가 있다.

위의 두 가지 인사이트를 모두 활용한 과거의 사례가 있다. 2012년 뉴욕 프라다 에피센터의 인터렉티브 피팅룸이다. 이 피팅룸은 몇 가지 기술을 도입하며 보다 편리한 공간이 될 수 있었다. 피팅룸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으며 특정 버튼을 누르면 불투명한 상태로 변한다. 옷을 다 입은 뒤 피팅룸에서 나오지 않아도 같이 온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했다. 또한 피팅룸 안에는 '매직미러'라 불리는 전신 거울이 있다. 이 거울은 비디오카메라를 달고 있어 그 앞에서 뒤를 돌면 3초간의 시간 차를 두고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기존 피팅룸의 뒷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점을 파악하여 만든 것이다. 7년 전 사례지만 앞서 얘기한 피팅룸의 사소한 불편함을 기술로 해결했다.


문구

말이 주는 힘은 크다. 이 때문에 많은 브랜드에서 UX라이팅의 일환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아래 사진은 삼성 ONE UI에서 어조의 변화이다.

우) 기존 말투 좌) 새롭게 바뀐 말투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언어보다는 미묘한 어조의 변화, 어투에 담긴 감정의 흐름에 더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대화하듯 친근한 언어로 디바이스의 사용이 쉽고 편안해졌습니다.

COS도 이런 부분을 잘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데, 피팅룸의 문구가 참 좋게 느껴졌다.


모든 의상을 입어보셨으면 합니다만,
피팅룸에 들어가실 때에는 한 번에
최대 7벌까지만 가지고 가시겠어요?


'한 번에 7벌까지 피팅 가능합니다.'라는 문구보다, 들어갈 때 '몇 벌이세요?'라고 물어보는 그 상황보다 두 줄의 문장이 더 친절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옷을 많이 입어볼수록 직원들은 구매로 이어지지 않은 옷들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옷을 정리하는 직원에게 사지 않을 옷을 또 건네며 가끔 미안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스의 모든 의상을 입어보셨으면 한다는 말이 작은 안심을 준다. '우리는 너네가 옷을 원하는 만큼 입어봤으면 좋겠어'라는 느낌을 무의식 중에 전달해준다. 사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려다.

피팅룸의 문구
진열대에 새로운 상품을 올려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거기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던 것, 그런 것들을 눈에 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감각.
<넨도의 문제해결연구소> 21p


단순히 피팅룸을 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불편한 점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수요를 찾아 그 틈을 메우는 것. 화려한 마케팅들보다도 이런 것들이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넷플릭스의 스마트 다운로드 기능은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을 때 다음 화를 미리 다운로드하여주고 다 본 영상은 자동으로 삭제해준다. 덕분에 '아, 까먹고 다음 화 다운 안 받아왔네'하며 이탈하는 사용자들을 더 오랜 시간 넷플릭스에 머물 수 있게 했다. 사용자의 '맥락'을 좀만 더 생각하면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만족감의 정도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피팅룸을 떠올렸을 때 있으면 좋을 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우리는 피팅룸에서 서있을 때의 모습만 보지만 일상생활에서 그 옷을 입고 걸어 다니며, 장시간 앉아 있기도 하고, 높이 있는 물건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기도 한다. 실제로 매장에서 입어봤을 때 캐치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입고 생활하며 나오기도 한다. 피팅룸 내부에서 일상생활에서의 그런 포즈를 제안해줘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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